“희망이 보이십니까?”
북한해방과 자유통일의 거룩한 행진(grand march)을 시작할 때

金成昱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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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성욱 기자님, 희망이 보이십니까. 전 안보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희망을 가졌으나, 이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기자님 같은 분이 있어서 잘못되어도 무엇 때문에 잘못되었는지 깨닫게 되겠죠. 한반도에 한바탕 큰 난리가 난 후에 말입니다.(記者의 기사에 달린 어느 회원의 댓글)”
  
  4·27 재·보궐 선거 이후 보수층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져 버렸다. 어딜 가나 듣게 되는 비관적 예측들. ‘중도실용’ 아래 죽도 밥도 아닌 4년을 만들어 낸 MB에 대한 분노와 갈수록 左傾(좌경)으로 치닫는 여당에 대한 불만도 커간다.
  
  左派와 중간층, 이제 右派마저 한나라당을 버리면 총선은 여소야대로 갈 것이다. 총선이 끝나고 ‘박근혜 대세론’ 거품이 빠져나가면 대선의 향방은 누구도 모른다. 좌파 再집권, 또 다시 어두운 5년이 시작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렇게 시작될 새로운 5년은 대한민국이라는 가치가 뿌리째 뽑히는 섬뜩한 기간이 될 것이다.
  
  미국 중심의 해양문명, 자유주의, 기독교적 가치가 약화되고 從北주의·親北주의가 대세로 굳혀지는 것은 물론 팽배한 사회주의·集産主義(집산주의) 분위기와 남미式 포퓰리즘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한국은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보수층은 벌써부터 재앙의 쓰나미가 몰려온다며 공포를 감추지 못한다.
  
  2.
  나는 서울과 지방, 해외를 넘나들며 한민족에게 희망과 비전(vision)을 전하고 있다. 지난 일 주일간은 미국 LA 베델 한인교회에서 열린 지저스아미(Jesus Army) ‘북한구원 컨퍼런스’에 강사로 참가했다. 한국이 처한 危機(위기)를 정확히 알려주는 것도 필요한 일이나 더욱 중요한 작업은 희망과 비전 그리고 이것을 이뤄낼 전략의 선포다. 포기하고 낙심하고 낙담하기 좋아하는 대중을 復興(부흥)시키는 일이다.
  
  강력한 부흥은 언제는 침체 속에서 자란다. 일제시대 이후 이승만의 건국 革命(혁명)이 그랬고 보릿고개를 넘어선 박정희의 산업화 革命(혁명)이 그랬다. 보통의 사람이 포기해 버릴 때 낙관적 믿음을 버리지 않는 지도자는 희망을 말했고 그것을 이뤘다.
  
  종교적 부흥도 마찬가지다. 18C 중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자, 런던은 여섯 집 중 한 곳이 술집이 되고 死刑(사형)이 축제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로 음탕하고 살벌한 사회가 돼 갔다. 영국의 이른바 ‘大각성 운동’의 시작이 이때였다.
  
  요한 웨슬레(1703~1791)는 36세부터 88세까지 5만 번의 설교를 하고 233권의 저술을 통해 영국인의 도덕적 각성과 영혼의 淨化(정화)를 외쳤다. 그는 하루 평균 2.63건의 설교를 했고 영국과 미국에 각각 750명, 350명의 제자를 키웠다.
  
  같은 시대 조지 휫필드(1714~1770)도 불을 뿜는 獅子吼(사자후) 설교로 영국을 깨웠다. 당시 영국의 大각성 운동은 수십만 단위의 결신과 부흥을 불렀고 이것은 막스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멸망이 아니라 갱신을 가져온 동력이 되었다.
  
  3.
  내가 절대로 절망할 수 없는 이유는 서울과 부산, 광주, 광양, 대구, 대전, 원주 오클랜드와 LA, 곳곳서 만나는 청년들 탓이다. 無기력·無감각·無감각한 것처럼 보이는 그들이지만 북한해방과 자유통일의 ‘거룩한 충격’ 앞에서 새로운 영혼으로 거듭난다.
  
  요한 웨슬레가 하루 2.63건의 설교를 했듯 나 역시 때론 군인과 경찰을 상대로 때론 대학생을, 때론 초등학생까지 붙잡고 대한민국의 위대한 가치를 말한다. LA에서 예정된 2번의 강연은 현지 교포들의 요청으로 7번으로 늘었다. 풍요롭고 자유로운 곳이지만 희망과 비전에 목말라 하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거친 시대’가 오고 있다. 분석과 논평만 일삼는 북한학자나 정치인이 아니라 양심이 말하는 정의를 실천할 勇士(용사)가 필요한 시대다. 1989년 5월6일, 100여 명이 모이던 동독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예배당의 월요예배는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50만 규모로 늘었고 같은 해 11월9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이어졌다. 모두가 포기한 것 같아도 끝까지 포기치 않는 소수의 義人(의인)이 역사를 흐름을 바꾸어 낸 것이다.
  
  나는 믿는다. 이 땅의 낙심한 청년과 절망한 청춘, 전 세계 흩어진 동포들이 조국에 모여 부산에서, 목포에서, 대구에서, 대전에서, 강릉에서 판문점을 향해 북한해방과 자유통일의 거룩한 행진(grand march)을 시작할 때 지금의 절망은 아라사 옛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세상을 앞두고 있다.
  
  
[ 2011-06-04, 05:0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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