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지휘체제개편, 바로 가고 있는가?
軍에 대한 문민통제 체제가 이완되면 그것은 곧 정치체제의 불안으로 연결되기 쉽다. 독재형 권력자가 軍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 쉽고, 특정한 계기가 주어지면 군이 스스로 권력지향적인 욕망에 빠지기 쉽다.

曺永吉 전 국방장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근간에 보도되고 있는 군 지휘체제 개편 내용을 살펴보면 혼란스럽고 우려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얼마 전 ‘군선진화위원회’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국방부에 ‘합동군사령부’를 설치하고 육.해.공군본부를 작전사령부로 개편해서 그 밑에 예속시키는 한편 합참의장을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에 대한 자문역할로 전환하는 방안과, 합참의장이 합동군사령관의 임무를 겸직하는 방안 중 하나를 택일할 것이라고 하더니, 그 후에 발표된 내용을 보면 이번에는 각 군의 작전사령부를 해체하고 그 대신 참모총장에게 작전지휘권을 부여해서 합참의장의 작전지휘를 받도록 바꾼다고 한다. 과연 군제(軍制)에 관한 진지하고 전문성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것저것 살피면서 임기응변을 하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군제란 한 나라의 국방체제의 골간이며 군사력 운용의 효율성과 전투준비태세 유지에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또한 하나의 군제가 정착되고 그 기능을 발휘하는 데는 오랜 기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군제를 변경할 때는 현재의 군제가 지니고 있는 취약점과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진단하고 그것을 어떻게 개선하고 보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리적인 방향이 설정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군제를 선택할 때는 그 나라의 정치체제와 법으로 규정된 문민통제의 원칙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한 사고의 과정을 뛰어넘어서 단순히 ‘합동성 강화’라는 애매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내세워 성급하고 빈번하게 군제를 바꾸는 것은 군의 대비태세에 혼란을 야기하고, 안정적이고 지속성 있는 군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이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통합군제(統合軍制)에 대한 그릇된 인식
  
   국방부에 ‘합동군사령부’를 설치하고 육.해.공군본부를 사령부로 개편해서 그 밑에 예속시키는 방안은 군제이론상으로 ‘총사령관제도’를 의미한다. 이 제도를 한국군 내에서는 ‘통합군제도’라고 불러 왔는데, 이것은 중동전쟁(6일전쟁) 이후 잘 못 전파된 개념이다.
   당시 이스라엘군의 기적 같은 승리에 심취한 일부 젊은 장교들이 전승의 원인을 이스라엘군의 군제에서 찾으려고 했고, 그것을 이른바 ‘통합군제’라는 이름으로 부각시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신정권 초기에 ‘군특명검열단’을 중심으로 전반적인 군제개편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기도 했다.
   당시 이스라엘 국방군은 10여 개의 지상군 여단과 약 200여 대의 전폭기, 수척의 미사일 경비정을 보유한 소규모의 군대로 육,해,공군의 군종(軍種 : Branch of Military Service)개념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채 국방상의 지휘 하에 한 사람의 ‘총참모장’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그것이 연구과정에서 ‘통합군사령관제도’로 바뀌었던 것이다. 즉 한 사람의 ‘총사령관’ 밑에 육,해,공군의 모든 요소를 예속시켜서 일원적으로 군을 통제하는 개념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권한집중적인 군제였다. 군 내부에서 많은 반대의견이 제기되었고, 결국 대통령 재가과정에서 문제점이 확인되어 백지화되고 말았다.
   이 제도가 안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은 군에 대한 ‘문민통제(文民統制)의 원칙’이 지켜지기 어렵다는 데 있다. 군대라고 하는 양날의 칼과도 같은 국가의 무장력은 戰平時를 막론하고 문민정부의 엄격한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근대국가에 있어서는 내각의 일원인 국방부장관이 軍政權(養兵기능)과 軍令權(用兵기능)을 통합해서 관장하고 군사에 관한 주요사항은 반드시 내각(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치도록 법제화하고 있다.
   그러나 총사령관제 하에서는 총사령관의 권한과 기능, 지휘의 폭이 문민장관의 그것과 중복(Overlap)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권력은 총사령관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군대조직의 특성이고 체질이다.
   軍에 대한 문민통제 체제가 이완되면 그것은 곧 정치체제의 불안으로 연결되기 쉽다. 독재형 권력자가 軍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 쉽고, 특정한 계기가 주어지면 군이 스스로 권력지향적인 욕망에 빠지기 쉽다. 20세기 초부터 2차대전 말까지 주로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된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의 수많은 신생독립국가들이 끊임없는 군사정변으로 진통을 겪어 왔고 아직도 그 잔재들이 남아 있는 역사적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총사령관(CINC : Commander in Chief)이라는 용어는 17세기에 영국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로마시대의 Imperator(황제-최고사령관)에서 유래된 것으로 절대왕정시대의 국왕을 의미한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민주공화정을 실시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국왕, 대통령 또는 내각총리를 군의 총사령관으로 헌법상에 명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헌법 74조에 대통령의 군통수권을 포괄적으로 명기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헌법 2조 2항에 ‘대통령은 미합중국군대의 총사령관(CINC)이다’고 명문화하고 있기 때문에 군대 내에서는 다만 전구급 사령부 이하의 야전부대나 기능사령부에서만 총사령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으나 럼스펠드장관 시절부터 사용이 금지되었다. 한 사람의 총사령관에게 육,해,공군의 모든 권한과 기능을 집중해서 독점적인 지휘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군통수권과 국방장관의 문민통제권에 배치되는 개념으로 실제 이러한 군제를 사용하는 나라는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총참모장제도와 국방참모총장제도
  
   오늘 날 세계 각국이 일반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군제를 크게 나누면 총참모장제(Chief of General Staffs)와 국방참모총장제(Chief of Defense Staffs)로 구분할 수 있으며, 미국과 한국이 채택하고 있는 합동참모의장제(Chairman of Joint Chiefs of Staff)는 국방참모총장제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총참모장제는 중국, 북한 및 구소련연방국가들 그리고 독일, 터키, 이스라엘 등 일부 서방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는 군제로, 군을 전통적인 육,해,공군의 3군 개념으로 편성하지 않고 군이 수행하는 임무와 기능에 따라 지상군사령부, 해군사령부, 공군사령부, 전략미사일군, 의무사령부, 헌병사령부, 준군사부대 등으로 세분하여 편성하거나 작전지역에 따라 전구군사령부(戰區軍司令部)로 분할 편성하는 개념이다. 총참모장은 군을 대표하는 최고의 직위이지만 독자적인 작전지휘권은 갖고 있지 않다. 중국, 북한 등 공산주의국가에서는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독점적인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자유진영 국가에서는 국방상을 통하여 내각총리 또는 대통령이 군사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
   다만 터키는 그 나라가 지닌 특수한 역사적 배경에 따라 총참모장이 군에 대한 작전 및 행정에 관한 지휘권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총참모장의 위상은 국방부장관 보다 상위에 있다. 터키가 건국 후 세 차례의 군사정변을 겪었고, 지금도 2009년도에 있었던 군사구데타모의의 후유증으로 조사와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현상은 그 나라의 특수한 군제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국방참모총장과 합동참모의장제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자유민주주의와 문민통제가 보편화 된 서구의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제도로 우리가 편의상 ‘합동군제’라고 부르는 개념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전쟁의 규모가 입체전양상으로 확대되고, 합동작전의 요구가 증대되면서 군과 군을 협조시키고 군사력 운용을 통합할 상위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2차대전 초기(1942년) 미국은 대통령의 군사지휘를 보좌할 ‘합동참모총장제도’를 잠정 운용하고 레이히(William D, Leahy) 해군제독을 그 자리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하부조직이 갖추어지지 않은 하나의 협의체에 불과했기 때문에 큰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 전쟁이 끝난 후 1947년에 ‘국가안보 법안’에 의해서 국방부에 합동참모본부를 설치하고, 합동참모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 및 해병대사령관을 구성원으로 하는 ‘합동참모회의’를 정식으로 발족시켰다. 영국의 경우는, 전쟁 중에 운영하던 ‘참모총장협의회(Chiefs of Staff Committee)'를 모체로 하여1956년부터 합동참모의장제를 운영하다가 1959년에 법을 개정하여 국방참모총장으로 직위를 바꾸어 합동군제를 정비하였으며, 영연방국가와 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뒤를 이었다.
   이 제도의 공통된 특징은, 국방부 예하에 육.해.공군을 독립된 군종으로 유지하고, 장관으로부터 위임된 권한범위 내에서 각 군의 참모총장이 자군을 지휘,통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각 군 참모총장은 군사작전지휘계선(Chain of Operational Command)에서는 제외되어 있다. 다만 합동참모회의의 구성원으로서 합참 수준의 의사결정에 참여하여 협의와 조언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자군의 작전부대에 대한 불필요한 개입과 간섭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다. 합참의장(국방참모총장)은 기본적으로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군사보좌관의 자격으로 위임된 권한범위 내에서 작전에 관한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예하 사령관에게 작전지시를 하달하고, 각 군의 군사력을 통합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합참의장은 그 자신이 독립된 지휘권을 갖는 지휘관은 아니다.
  
   818 군구조개편과 합동참모본부
  
   70년대 ‘군특명검열단’을 중심으로 한 군제개편연구가 백지화된 이후로도 ‘통합군제도(총사령관제도)’에 대한 집착은 군내에 꺼지지 않은 불씨로 남아 있었다. 일부 정치성향의 군인들과 소수의 기회주의적 인사들이 정치적 변환기가 있을 때마다 정치권력을 부추겨서 ‘통합군제’를 들고 나왔다. 그래서 5공 때인 1981년도에 보안사령관의 관장 하에 국방대학원 안보문제연구소에 각 군의 대령급 장교를 주축으로 하는 연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위원회 내부의 의견 충돌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다만 육군의 방공사령부를 공군에 전환하는 선에서 연구를 종결하고 말았다.
   1988년 노태우정부가 들어선 직후 권력주변의 몇몇 군인들과 일부 학자들이 뜻을 모아 다시 ‘통합군제도’를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대통령의 사전재가를 받아 국방부에 연구지시를 하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곧 ‘818 군구조 개편계획’이었다.
   당시 한국군은 6,25전쟁 이후 주요 전투부대에 대한 전,평시 작전통제권을 UN군사령관(연합사령관)에게 위임한 상태여서 합참과 각군본부간에 작전지휘에 관한 권한과 책임한계가 명확히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대간첩작전은 합참이 책임을 지는 한편 특전사와 일부 예비사단에 대한 작전지휘권은 육군본부가 행사하고 있었다. 해군과 공군도 비슷한 상태에 있었다. 어떤 형태로던 군사작전지휘체제를 정비해야 할 필요성은 군내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군국주의적 특성을 지닌 ‘통합군제도’를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었다. 이미 두 차례의 군사정변을 경험한 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군제를 채택하는 것은 역사적 불행을 되풀이하는 원인을 배양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약 3개월에 걸친 공개적인 토의와 설득을 통해서 군내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마침내 대통령의 결심을 받아 오늘의 ‘합동군제도’를 확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새로 정립된 지휘체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1994년도에 연합군사령부로부터 평시 작전통제권을 전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818연구’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다루어졌던 과제는 한국적 작전환경에 맞는 통합 군사력운용체제의 구축이었다. 육.해.공군의 전투력을 단일한 작전목표에 집중시키고, 군사력통합의 상승효과(Synergy)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능률적인 지휘조직이 요구되었다. 또한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한의 군사력이 직접 대치상태에 있고, 수도권이 전선에 근접해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적의 기습공격에 대비한 신속한 작전반응태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중앙집권적인 지휘체제가 요구되었다. 자국의 본토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이 없는 강대국이나 다른 선진국들의 군제를 그대로 모방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따라서 헌법상에 명시된 군통수권개념과 국군조직법상의 문민통제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권한과 기능을 합참에 집중시키는 방안이 중점적으로 강구되었다.
   합참의장은, 국방부장관의 군령보좌관의 자격으로 육.해.공군 전 작전부대와 합동부대에 대한 직접적인 ‘작전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고, 국가비상시 계엄사령관의 직책과 점령지역에 대한 민사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작전수행에 직접 영향을 주는 탄약, 유류, 통신, 수송 등 주요 전투지원분야에 대한 ‘운용통제권’을 보유하고, 주요 작전지휘관에 대한 ‘임명동의권’을 행사함으로서 지휘권을 보강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나라의 합참의장이나 국방참모총장이 갖고 있지 않은 권한이다.
   합동참모본부의 편성도 종래의 군사전략 및 정책기획기능에서 직접적인 군사작전지휘가 가능한 조직으로 개편하였다. 외국의 사례와 단순비교를 한다면 본래의 합동참모본부 편성에 작전지휘기구인 한.미연합군사령부의 편성을 결합한 것이 한국의 합동참모본부 편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합참은 합동군제를 채택하고 있는 다른 나라에 비해 가장 강력한 권한과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참의 권한과 기능이 미약해서 합동작전수행이 어렵고, 그래서 군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제기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근간에 잇따랐던 적의 도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매끄럽지 못했던 작전지휘의 허물을 군제에서 찾으려는 궁색한 변명일 수도 있고, 한 때 군이 국가권력을 좌우하던 시절의 추억을 떨쳐버리지 못한 일부 정치성향의 군인들에 의한 모험적인 발상일 수도 있고, 결과야 어떻게 되던 일단 바꾸고 보자는 무책임한 정치적 공명심의 산물일 수도 있다. 그 어떤 경우이건 국가와 군대라는 상호관계 위에서, 그리고 현행 합참의 편성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전문성 있고 사려 깊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혼란스러운 논리상의 문제들
  
   전술한 바와 같이, 국방부에 합동참모본부나 국방참모본부를 설치한 것은 현대전에 대비한 군사력운용의 통합에 그 목적이 있다. 각 군 참모총장을 작전지휘계선에서 배제하고 직접적인 작전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것도 작전의 일관성과 의사결정의 신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2차대전 이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정착된 제도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작전지휘권을 각 군 참모총장에게 환원하면서 그것이 ‘합동성 강화’이고 ‘선진화’라고 주장하는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합참의장과 참모총장은 직위상 동격으로 상하관계가 될 수 없다. 참모총장은 자군의 인력과 자원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고 그 결과는 오직 국방부장관에게만 책임을 진다. 또한 참모총장은 자군의 입장에서, 자군의 눈으로 상황을 보고, 자군의 방식으로 작전을 구상한다. 판단과 결심에 혼선이 야기될 수 있는 복잡한 전시의 상황에서 합참의장을 중심으로 한 일사불란한 작전지휘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순진한 낙관론이다.
   현대전에 있어서는 판단-결심-타격(수행)에 이르는 임무수행싸이클의 신속성이 전투의 승패를 좌우한다. 합참의장이 각 군 참모총장을 통해서 작전을 지휘한다면 2중의 싸이클을 갖게 된다. 작전행위의 신속성이 둔화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작전의 성격도 ‘합동작전(Joint Operation)’이 아닌 ‘협동’의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 ‘군사력운용의 통합’과 ‘합동성’은 합참이 각 군의 작전부대와 야전군을 직접 지휘하는 조건에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각 군의 대학과정을 통합해서 합참에서 관장한다고 한다. 역시 합동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인력관리업무에 속한다. 양병기능과 장교 인력관리기능을 갖지 않은 작전지휘조직인 합참이 본연의 작전기능은 각 군에 돌려주고 그 대신 각 군의 장교 교육임무를 수행하게 된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맺는 말
  
   하나의 군제가 정착되고 그 기능을 발휘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과 자원이 소요된다. 처음부터 완전무결한 제도는 없다. 우리의 합동군제도가 이 수준까지 오는 데는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직도 완전한 체제를 갖추었다고는 할 수 없다. 꾸준히 문제를 찾아 개선하고 보완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것을 외면한 채 군제를 바꾸면 한꺼번에 모든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고 강변하는 것은 무책임한 기회주의적 발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에도 정치권력에 굴하지 않고 군국주의적 통합군제도의 도입을 저지했던 선배들의 행적을 뒤돌아보고, 국군의 전력발전과 합동군제도의 정착을 위해 헌신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기억해야 한다.
   더구나 천안함의 침몰과 연평도 피격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북한의 핵무장과 내부정세의 불안, 그리고 한.미군사협력체제의 질적 변화 등으로 나라의 안보상황이 내일을 예측할 수 없도록 불안정하고 긴박한 이 시기에 군사지휘체제를 전면 개편하는 일이 과연 사리에 타당한 것인지, 국가안보에 책임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깊이 자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개혁의 회오리바람이 거셀지라도 국가안보의 최후의 보루인 군은 자기소신에 충실한 의연한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한다.
  
  
  
[ 2011-06-12, 09: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