共生발전, 자본주의 4.0, 무슨 뜻일까?
그것은 친북좌파에 아첨하는 소리요, 대한민국의 建國과 성취를 부정하는 말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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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8월 15일 광복 66주년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공생발전’을 주창했다. 조선일보는 하루 전날 들뜬 속보를 띄웠다. 대통령이 조선일보의 커밍아웃(coming out) 특집 ‘자본주의 4.0’을 읽고 크게 감동받으셨는지 경축사에 이를 담을 것이라는 ‘기사’예보였다. MB는 자본주의 4.0 대신 共生발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과연 개념은 흡사했다.

 

 이명박 정부는 해마다 또는 반년도 안 되어 國政목표가 달라졌다. 그것은 각각 ‘큰 시장 작은 정부(기업 프렌들리)’, ‘녹색성장’, ‘친서민 중도실용’, ‘공정사회’였다. 공생발전은 이 가운데서 제일 앞의 것은 슬그머니 빼고, 나머지 셋을 합한 개념이라고 한다. 영어 ecosytemic development(생태계형 발전)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원래는 자연생태계에만 적용되지만, 한국은 거기에 인간사회도 포함하므로 ‘공생발전’이란 말을 썼다고 한다.

 

 촛불 100만 개에 100일 동안 데이고 나서(그래서일까, MB는 수염이 하나도 없음), MB는 (대)기업 프렌들리란 말을 두 번 다시 안 썼다. 그 이후로 정통우익에겐 걸핏하면 짜증내거나 격노하고 친북좌파에겐 시도 때도 없이 미소 짓거나 손짓했다. 그들이 독과점하고 강매하고 윽박는 개념들을 찔끔찔끔 신주단지처럼 모셔왔다. 그럴수록 그들로부터 환영받는 게 아니라 별로 아름답지 못한 동물에 빗대어 조롱받았다.

 

 난데없이 조선일보는 2011년 8월에 접어들자마자 A. 칼레츠키(Kaletsky)란 무명의 언론인이 급조한 자본주의 4.0을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자유방임주의는 1.0, 수정자본주의는 2.0, 신자유주의는 3.0, 따뜻한 자본주의는 4.0이라고 옮기고, 한겨레와 MBC와 오마이뉴스가 줄기차게 주장하던 바를 대거 받아들였다. 조선일보는 술집이나 다방에서 즉흥적으로 한 번 호기롭게 떠든 다음 바로 잊어버릴 만한 용어를 노벨경제학상 예약하는 듯 들뜬 마음으로 대한민국의 60년 경제 성취를 난타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자유방임주의는 지구상에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시장은 언제나 국가 안에 또는 국가와 국가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귀족정이나 王政에서건 민주체제나 독재체제에서건 국가권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론상 지구상에서 국가가 소멸된 무정부 상태에서만 자유방임주의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수요와 공급이 아니라 총칼과 주먹에 의해서 생산과 교환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자유약탈주의가 생겨날 것이다.

 

 李承晩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 建國하자마자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이 천지개벽의 분배정책이었다. 오늘날의 필리핀이나 중남미처럼 한국은 上位 1%가 국가의 富를 90% 독과점(정확한 수치는 아님)하고 있었다. 일제는 공업시설의 90%를 북한에 건설했기 때문에 한국의 생산시설은 토지 외에는 거의 없었는데, 이 토지를 대지주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태로는 수요와 공급이 스스로 가격을 정하는 시장이 존재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럴 듯한 이론으로 호시탐탐 모든 생산시설을 국유화하여 전 인민을 사실상 국가노예로 전락시키려는 소련 공산당을 이길 수가 없었다.

 

 호남의 대지주들이 主流를 이루고 있던 한민당과 언론만이 아니라 역시 大地主 출신이 다수였던 與黨으로부터도 격렬한 저항을 받았지만, 李承晩 대통령은 밀어붙였다. 200만ha 농지를 200만 농가에게 평균 1ha씩 나눠주었다. 방법은 年 소출의 30%씩 5년간 국가에 내면 국가가 그것을 이전의 地主에게 돌려주는 식이었다. 농지개혁은 6.25 직전까지 거의 완결됐다. 어차피 강제로 당할 바에야 직접 파는 게 낫다고 생각하여 지주들은 땅을 싼 값에 마구 내놓았다. 공급 초과로 국가가 강제로 집행하는 것보다 비싸게 팔린 게 거의 없었다. 이론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농지개혁을 대한민국만큼 잘한 나라는 全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승만의 농지개혁을 바탕으로 박정희는 미국이 마련한 GATT 체제에서 開途國이 도리어 우대받는 대외 개방적인 경제개발을 주도면밀하게 추진했다. 일자리를 기하급수적으로 창출했다. 박정희는 사명감에 불타는 관료와 경제의 핏줄인 금융 이 둘을 양 옆에 거느리고 시의적절한 법률을 제정하여 그 안에서 기업을 엄청나게 키웠다. 공장에 취직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무작정 상경하면 공짜로 일개 작업반장의 집에서 1년간 무급 식모로 봉사했어야 했다. 무슨 말인가. 저임은 틀림없었지만, 농지개혁은 했다지만 손바닥만한 논밭에 지나지 않아 농촌에서는 입 하나 줄이는 것이 부모에게 최고의 효도였기 때문에 무급 식모도 감지덕지였다. 드디어 1년 지나 공장에 취직하면 고향의 부모가 1년간 농사짓는 것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렸다. 무작정 상경 총각들은 철공소나 양복점이나 세탁소 등에서 일 배운다며 2~3년은 보통 무급으로 일했다. 그래도 입은 하나 덜 수 있었다. 구로공단에서 월급 받으며 바로 취직하는 것은 요새로 말하면 삼성전자에 과장으로 특채되는 것보다 대단했다.

 

 박정희는 공장을 무수히 짓고 교육立國의 정신으로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속속 키워 더 이상 ‘빽’이나 뇌물이 아니라 공채나 수시모집으로 대기업 또는 중소기업에 취직하게 만들었다. 한편 그는 이미 말했듯이 관료와 금융으로 대기업을 육성함과 동시에 적절히 견제하여 서구의 산업화 초창기에 등장하여 국가권력도 좌지우지한 초거대 독점기업이 등장하지 못하도록 미리미리 조치했다.

 

 한국은 이처럼 처음부터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구했다. 세계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지니계수를 서구와 비슷하게 0.290에서 0.350 사이에 유지했다. 성장만이 아니라 소득분배도 어떤 나라보다 잘하는 기적을 낳았다. 다만 국가의 富가 전체적으로 낮아서 사회안전망은 동시에 갖출 수 없었다. 그러나 공무원은 연금제도를 확립해서 老後를 전혀 걱정하지 않게 만들었고 기업은 퇴직금을 섭섭하지 않게 주도록 하는 법령을 만들었다. 또한 二重곡가제를 도입하여 경제성장의 과실이 적게 돌아간 농민들을 달랬고, 후에는 스스로 일하는 마을만 국가가 화끈 지원하여 사촌이 논 사면 분기탱천 논도 사고 기와집도 짓도록 유도하는 새마을운동을 추진하여 1977년에는 농가소득이 도시가계를 능가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조선일보와 MB가 2011년에 개탄하고 주창하는 것 이상의 정책을 대한민국은 建國 첫날부터 시작했다. 이런 걸 싹 무시하고 그들은 친북좌파의 달나라 별나라 억지 주장에 아첨하고 있다. 세계최고 부자이자 세계최고 인권유린자인 김정일은 절대 비판하지 않고 李承晩과 朴正熙라면 이가 빠지거나 말거나 북북 가는 친북좌파에게 아첨하고 있다.

     (2011. 8. 15.)

 

[ 2011-08-15, 18:4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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