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여론, 민심
인기에 급급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자가 아니라 민심을 읽는 자가 위대한 지도자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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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는 바람이다. 순식간에 일어나서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여론(輿論)은 어느 정도 검증된 인기다. 다수의 의견(public opinion)이다. 한자에서도 ‘여(輿)’는 원래 ‘수레’란 뜻이지만, 이 경우에는 ‘수레는 여러 사람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들어야 제대로 들 수 있다.’ 란 뜻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이란 말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여론조사를 민의(民意)조사라고 한다. 인민대중의 의견이란 말이니까, 결국 같은 말이다.
  
   인기는 있어도 여론이 안 좋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어느 한 매력이나 성취만으로 능히 인기는 광풍처럼 일어날 수 있지만, 여론은 거기에 몇 가지 요소 즉 인격이나 능력, 지혜가 더해져서 비교적 긴 시간에 걸쳐서 서서히 형성되기 때문이다. 여기도 맹점이 있다. 치명적 약점이 있더라도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장점만 부각된 상황에서 어떤 사람의 인기가 지속되면, 그것이 검증 절차를 거친 것으로 인식되어 인기가 여론으로 둔갑할 수가 있다. 대중매체를 잘 활용하면, 대중매체를 자기편으로 만들면 여론조작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언론자유가 없거나 제한된 국가에서는 이게 식은 죽 먹기다. 언론자유가 보장된 국가에서도 민주주의의 역사가 일천하면, 민도(民度)가 낮으면, 권력이나 부, 지식, 이해관계, 지연, 학연 등에 의해 ‘네 편 내 편’을 갈라, 여론이 한정된 집단 내에서만 일방적으로 형성되어 사이비 종교의 신앙처럼 딱딱하게 굳어질 수가 있다. 그러면 검증은 ‘네거티브’로, 비판은 비난으로 전락하여 공정한 다수의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다. 단 ‘우리 편’이 하면 로맨스다. 멋이다. 자랑이다.
  
   대체로 선거는 여론에 의해 결정된다. 때로는 선거 기간을 얼마 남기지 않고 어떤 계기로 갑자기 인기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것은 바로 정적(政敵)에 대한 분노의 먹구름을 불러와 여론의 비바람을 거세게 뿌린다. 대중매체가 덜 발달했을 때는 수천, 수만 명이 한 곳에서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스피커가 큰 역할을 담당했고, 그것은 다시 수백만이 들을 수 있는 라디오로, 수천만이 보고 들을 수 있는 TV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인터넷으로, 시간과 공간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SNS로 진화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여론이 검증된 인기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라디오와 TV와 인터넷 포털과 SNS를 장악하면 전혀 검증 안 된 인기를 여론으로 급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조직보다 대체로 바람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소이(所以)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예전에는 여론 검증의 가장 확실한 매체는 신문이었다. 그것은 생각의 여지와 언외의(between the lines) 의미를 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문도 정파적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데다가, 이제는 다른 매체의 급속한 발달로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온통 문화권력을 장악한 자들의 손에 놀아난다. 핵심 인물은 열 명도 안 될지 모른다. 그들 극소수 여론 주도층이 시시때때로 빨간 깃발, 노란 깃발, 파란 깃발을 바꿔 들면, 즉각 수백만이 메인 컴퓨터의 분노와 궤변을 자신들의 머리에 그대로 다운로드해서(downloading) 똑같은 말을 되뇌며 일제히 달려간다.
  
   제일 확실하고 믿을 만한 것은 민심이다. 민심은 진실과 정의와 사랑이니까! 민심은 장구한 시간에 걸쳐서 세대를 초월하여 인기는 아예 도외시하고 여론을 거르고 걸러서 부지불식간에 형성된다. 그러나 이 민심은 알아차리기 힘들다. 본인도 모르는 수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옛 공산권이다. 공산당은 권력과 부와 대중매체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거기선 인기가 곧 여론이었고 여론이 곧 민심인 것처럼 보였다. 당서기장의 모든 교시는 살아 계신 신의 말씀으로 전 국민의 학습 자료였다. 마을마다 직장마다 달달 외우기 대회를 열고, 부랴부랴 실천하기 운동을 열광적으로 벌였다. 방송과 신문에도 특집방송, 특집기사가 줄줄이 이어졌다.
  
   소련 사람들이 레닌의 동상을 거꾸러뜨리고 질질 끌고 다닐 때, 루마니아의 노동자농민이 차우세스쿠를 총살시킬 때, 옛 동독의 주민들이 줄줄이 국경을 넘을 때, 반세기 동안 꼭꼭 숨었던 민심이 비로소 드러났다. 그보다 10년 전에 그보다는 덜 극적이었지만, 10년간 오로지 마왕의 심기를 달래 주기 위해 수천만 명이 맞아 죽으며 안절부절 못하던 10억 중국인들이 마왕이 죽자 비로소 고려장에서 걸어 나온 70대, 80대 노인들의 진보적 개혁개방 기침 소리를 듣고, 인류 역사를 새로 쓴다며 천방지축 설치던 퇴영적 수구보수 10대,
  20대 새파란 젊은이들의 머리에 일제히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자 수천만 홍위병들은 바로 고개를 푹 숙이고 엉금엉금 제자리로 돌아갔다. 선생님 말씀 잘 들으며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 상사 지시 귀담아 들으며 부지런히 일하기 시작했다.
  
   한반도에는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북한주민의 민심은 동구가 무너질 때 못지않다. 오늘날의 이슬람권의 재스민 향기 못지않다. 8천만 공산당의 독재와 부정부패와 인권유린에 부글부글 끓는 중국의 말리화(茉莉花) 향기 못지않다. 그러나 모택동과 스탈린의 공포시대보다 더 심한 공포가 아직도 지속되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민심을 가슴속 깊이 숨기고, 가족과 친구와 애인에게도 숨기고 찍소리 못한다. 목숨 걸고 국경을 넘고 넘은 탈북자 2만 3천 명이 북한주민의 민심을 정확히 대변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도리어 한국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무시당한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하는 것보다 어렵게, 어렵게, 북한주민의 민심을 대변하는 의인(義人)들이, 소돔과 고모라에서처럼 귀한 의인들이 북으로 풍선 하나라도 날리면 노발대발하며 북한인권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말고, 무조건 정상회담하고 무조건 6.15 정신을 이어받으라고 바락바락 악을 쓰는 게 진보요, 민족화해요, ‘완전한’ 민주로 통한다. 김일성의 원수 박정희를 욕하고 세계적 기업과 당당히 겨루는 대기업을 성토하면 언제든지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한국이든 북한이든, 민심은 오래 전에 정해져 있다. 그러나 북한에선 모든 권력을 장악한 자, 한국에선 문화권력과 사회권력을 장악한 자가 최고의 기득권을 움켜쥐고서 힘없는 노동자농민의 편이라며, 가난한 인민 편이라며, 불쌍한 민중 편이라며, 히틀러의 게르만족보다 위대한 민족 편이라며, 민심이 원하는 길과 정반대의 길로 깃발을 앞세우고 꽹과리를 울리고 채찍을 휘두르며 7천만을 휘몰아가고 있다. 북한처럼 독재권력에 의해서든, 한국처럼 대중매체를 장악한 문화권력과 불법시위를 주도하는 사회권력에 의해서든, 인기가 여론을 압도하고 여론이 민심을 압도한다.
  
   피의 통일을 이룬 다음에야, 마침내 북한의 공산정권이 거꾸러진 다음에야, 비로소 7천만 한민족의 민심은 눈부신 햇빛 아래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일제히 드러날 것이다.
   (2011. 10. 29.)
[ 2011-10-29, 07: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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