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의 마패
2011년 10월 즈음에 북한의 실권은 이미 장성택에게 넘어간 듯하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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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장엽 선생은 생전에 북한의 2인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장성택이라고 대답했다. 2002년 11월 그가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방한했을 때, 단장 박남기는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한눈에 드러났다. 장성택이 멀찌감치 뒷줄에서 어슬렁거려도 수행원 4~5명이 숨소리도 발소리도 조심하며 전전긍긍 그를 에워싸고 있었으니까! 호텔에서 장성택이 불쑥 복도에 나타나 내복바람으로 돌아다녀도, 함께 온 북한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화들짝 놀라서 벽에 그림자처럼 찰싹 달라붙어서 살금살금 게걸음을 쳤다고 한다. 주인 나리의 안방 근처에 무심코 가까이 갔다가 주인에게 들킨 하인 같았다고나 할까.
  
   2011년 10월 27일 자유북한방송의 김정금 기자는 금쪽 뉴스를 전했다. 북한의 외화벌이꾼 중에서 북한과 중국을 마음대로 오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신변을 걱정해 주는 한국의 삼촌에게 보여 준 것이 장성택의 마패였다고 한다. 장성택의 인장이 박힌 증명서만 있으면 북한이든 중국이든 무사통과라는 정보였다. 아래에 그중 일부를 그대로 인용한다.
  
  
   “몇날 며칠을 머물며 기다리는 조카의 자연스러운 거동에 삼촌은 북한이 아닌 중국에서 태평하게 지낼 수 있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일행 5명은 모두 장성택의 인장이 찍힌 신분증명서를 내놓는다. 장성택의 사인이 박힌 증명서이면 북한은 물론 중국에서도 얼마든지 안전하다며 이제는 김정일의 사인보다 장성택의 사인이 더 유력하다는 얘기를 한다.”
  
  
   김정일의 눈에 인간으로 보인 인간은 여동생 김경희뿐인데, 장성택(1946~)은 그녀의 남편이다. 김경희가 김일성에게 떼를 써서 팔방미인 장성택과 결혼한 모양이다. 장성택 덕분에 그의 두 형 장성우와 장성길이 군부의 실세로 떠올랐지만, 각각 2009년과 2006년에 사망했다. 2004년에 김정일은 장성택과 그 수족들을 모조리 숙청한 적이 있는데(장성택의 두 형은 손을 못 대고), 2006년 3월 중국이 경제시찰 명목으로 장성택을 압록강 이북으로 불러들였다. 호금도(胡錦濤 후진타오)가 장성택 쐐기를 김정일의 권력 바위에 박아 넣으면서 중국식 개혁개방을 권고한 듯하다. 김정일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장성길과 장성우를 은밀히 살해했을지도 모른다. 군부 인맥만 끊어놓으면, 장성택도 총알 없는 총이 되어 중국이 아무리 밀어도 자신의 절대 권력에 도전하지 못하리라고 계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구축해 놓은 군부 인맥은 고스란히 장성택에게 접수되었을 수도 있다.
  
   기쁨조에 둘러싸여 희희낙락하던 김정일이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회복은 했지만, 건들건들 병색이 완연했다. 후계 구도를 서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정은의 경력을 관리해 줄 필요가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적반하장격으로 잡아떼지만, 북한군부는 현재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은 김정은 대장의 쾌거로 돌린다. 중국측 자료에 따르면, 김정일은 총 6차례 모두 비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는데(공식적인 국빈 방문은 한 번도 없었음), 2010년에는 5월과 8월 두 번이나 다녀왔다. 이때 주석 호금도와 총리 온가보(溫家寶, 원자바오)는 두 번 다 노골적으로 그에게 개혁개방의 쓴 잔을 권했다. 김정일은 두 번 다 먼 산을 쳐다봤다.
  
   현재까지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별다른 보도가 없는 가운데, 평양 특파원이 딱 하나 특이상황을 보도했다. 김정일의 시체가 금수산궁전에 안치된 후 철저히 비밀의 장막에 덮여 있어 누구의 접근도 불허한다는 것이다(除了安放金正日遗体的锦绣山纪念宫附近路被封锁了之外). 의례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암살의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김정일의 행차는 1호 행사라고 하여 복수로 준비하기 때문에 행차 직전까지는 김정일 본인 외에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권력누수가 만만찮은 상황이라 감쪽같은 용천참사가 일어났을 수도 있다. 올빼미형인 김정일이 오전 8시 30분에 급사했다는 것도 수상하다. 서둘러 부검했다는 것도 대외발표용인지 모른다. 김일성처럼 시체를 일반에 공개하거나 매장하지 않고 미라로 보존한다면, 병사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지 않다면 암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서는 사인이 무엇이든 김정일의 시체에 무시로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곧 권력일 것인데, 이 권리는 장성택이 쥐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도 어쩌면 아직 김정일의 시체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차우셰스쿠 최소한 카다피처럼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데... 병사했다면, 골수 친북좌파와 골수 노동당원만 빼고 7천만이 땅을 칠 일이다.
  
   나는 김정일이 권력누수에 분기탱천하여 이판사판 남침을 감행할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는데, 어쨌건 그건 빗나갔다. 그렇다고 하여 남침의 가능성이 줄어든 건 아니다. 북한의 권력 교체에 맞물려, 김일성 출생 100주년이자 이른바 강성대국의 원년이면서 김정일이 사라진 2012년은 남북만이 아니라 한반도를 주변 강국이 모조리(수상이 수시로 바뀌는 일본 포함) 권력교체기에 들어간다. 한국의 친북좌파로선 위기이자 기회다. 2012년부터 한미연합군의 군사작전권이 한국에 이양되는 2015년까지 친북좌파는 준비완료 신호를 보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6.25 직전의 남로당보다 조직화되었고 세력화되었고 공공연해졌다. 북한보다는 오히려 한국을 더 주시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김대중에 의해 대공(對共)요원이 학살된 이래, 이명박이 한 명도 복권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국정원은 북한에 대해서 탈북자들이 전하는 ‘카더라’ 휴대폰 소식보다 못하다. 북한은 청와대 소식 포함 한국의 일급비밀을 실시간으로 알지만, 한국은 북한에 대한 고급정보가 온통 뜬구름 잡기다. TV에 나오는 북한 전문가는 거의 눈뜬장님 수준이다. 게다가 그들은 대부분 친북좌파의 체로 정보를 정성껏 거른다. 따라서 친북좌파조차 북한의 고급 정보에는 근처도 못 간다. 지령 받기에만 익숙하고 알아서 기기에만 능숙하다.
  
   장성택은 김정은을 내세워 실권자로서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할 것이다. 개혁개방은 북한의 독재권력에는 독배이기 때문에, 권력의 꿀맛을 잘 아는 장성택도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이다. 1967년 갑산파 숙청, 1985년 박철파 제거 등으로 북한에는 광동성의 습중훈(차기 중국 지도자 습근평의 아버지) 같은 선구자가 나오기 어렵다. 아마 장성택의 마패를 찬 인물이 앞장서서 신의주와 나진을 낮은 단계의 중국식으로 개방할 듯하다.
  
   제일 걱정되는 것은 북한주민인데, 통제가 일시적으로 더 심해지겠지만, 악의 괴수가 일단 사라진 만큼 혼란과 고통 속에서도 66년 만에 처음으로 애송이 뒤로 희망의 빛을 멀리서나마 보게 되어 정신적으로는 해방감까지는 몰라도 작은 안도감은 느낄 것이다.
   (2011. 12. 20.)
[ 2011-12-20, 10: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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