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죄를 지었다. 그 어린 것 앞에서

뉴포커스 고향 추억에 기고한 탈북자 최지우씨의 글입니다.

나는 남한에 온지 2년째다. 북한에서 얻었던 병은 다 나았지만 아직도 내 가슴엔 아물지 않는 상처가 하나 있다. 그 상처란 자꾸만 떠오르는 당시 18개월이던 조카의 얼굴이다. 그렇다. 나는 그 어린 것에게 죄를 지었다, 그 죄책감에 가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게 된다.

북한에 있을 때였다. 어느 날 형님이 불러 집으로 갔더니 방 한 가득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형님의 친구들이었는데 나까지 합쳐서 족히 6명은 되는 듯싶었다. 집이 작다 보니 모인 사람들의 덩치가 더 커보였다.

이러저러한 대화를 나누던 중 형님이 그동안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 무릎까지 치며 장롱을 열었다. 그 속에서 꺼내온 것은 북한식으로 얼음, 혹은 빙두라고 하는 마약이었다. 남한에서도 여러 번 신문방송으로 이야기 됐지만 북한은 마약중독 국가이다.

우리가 얼음(빙두)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01년 5월이었다. 함경남도 함흥에 갔던 형님이 친구로부터 중국과의 거래 선을 확보해달라며 샘플로 받아 온 것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우리랑 거의 비슷한 경로를 통해 얼음을 접하게 됐을 것이다.

왜냐 하면 생산지가 함경남도 함흥과학분원 한 곳이기 때문이다. 외화벌이가 되자 거기서 마약 뿐 아니라 나중엔 제조방법까지 사회로 유출되어 개인제조도 가능해졌다. 그래서 시장에서도 중국 돈 100원이면 1g을 구매할 정도로 일반화 됐다. 형님이 다들 모이자고 한 것도 돈이 생겨 얼음을 구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임신 중인 형수님과 그리고 이제 겨우 18개월 된 아기도 있는데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지 않는가 물었다. 그러자 형수님이 오히려 나를 만류하며, 요즘 네 형이 없어 약을 못 했었는데 괜찮으니까 빨리 흡입하자는 것이었다. 임신 후 겨우 1개월을 끊었다가 해산 직전까지 흡입하고, 해산 후에도 꾸준히 흡입해온 형수님이 아마도 그동안 약을 접하지 못해 속이 탔던 모양이다.

형수님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우리는 흡입을 시작했다. 한 번의 흡입량은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20회에서 40회까지 흡입한다. 그러면 처음에는 머리 앞부분의 두피가 바늘로 찌르듯이 따끔한 느낌이 든다, 다음은 머리가 솜방망이에 맞은 듯이 벙벙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기분이 붕 떠오른다.

북한산 얼음은 흡입 후 갑자기 말이 많아지거나, 또는 혼자일 경우 그 어떤 한 가지 일에만 완전히 몰입되는 일종의 초 각성 마약이다. 그래서 대학생들 시험기간이면 얼음 값이 더 비싸질 만큼 온 나라에 일반화 됐다. 너무 각성 현상이 심하다보니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모르고, 24시간 넘게 자지 않아도 정신이 또렷하다.

그러다 일단 잠만 자면 완전히 죽은 시체처럼 며칠이 지나도 모를 정도이다. 온갖 삶의 고통과 번민을 깡그리 잊게 할 정도로 푹 취하 게하고, 푹 자게 하는 것이다. 그 매력에 당 간부, 군인, 보위원, 대학생 등 온 나라가 중독됐다.

우리가 흡입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 안 돼 말을 금방 번지기 시작한 아기가 갑자기 뭐라고 소리치며 발광했다. 처음엔 방안에 꽉 찬 연기 때문인가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18개월 된 아이에게도 제 부모의 마약 흡입이 눈에 익었던지 은지를 손에 쥐고 기어 오는 것이었다.

나는 우습기도 하고, 한편 황당하기도 했지만 형님의 친구들은 무표정했다. “온 조선이 빨고 있는데 우리 조카라고 못 빨겠나.”이러면서 돈을 꺼내 조카에게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그동안 집에서의 흡입이 얼마나 잦았으면 18개월 된 조카가 그 의미를 아는 듯했다.

재빨리 창문으로 가더니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은지를 빤히 들여다보고 나서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구멍이 나지 않았으니 괜찮다는 것이었다. 그때 그 장면이 남한에 온지 2년 째 되는 지금도 나를 좀처럼 편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의 아이들이 깨끗하고 좋은 환경에서 예쁘게 자라는 것을 보면 더더욱 죄책감에 빠져든다.

돌이켜 보면 북한의 세월은 범죄의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속절없는 운명들이 바로 북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북한 해방은 인간해방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글의 필자인 최지우씨는 앞으로 꼭 뉴포커스가 소개하는 성공정착인이 되겠다고 했다.)               

국내최초 탈북자신문 뉴포커스 
http://www.new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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