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북한 해방을 앞두고 우방국과 싸움을 벌이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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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明博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공격이 도를 넘어섰다. 韓日 관계를 포기하는 듯 한 이명박 대통령의 무분별한 일련의 언행은, 노다(野田) 정권과 일본 정부를 넘어서 일본사회 전체를 敵으로 돌리면서 反韓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親北親中, 反美反日이 특히 두드러졌던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질렸었던 일본인들은, 임기 말인 이명박 대통령의 反日 행보를 보면서 한국에 대한 그간의 불쾌감, 불신감을 재확인한다.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한국의 대통령들은 지지율이 떨어지거나 임기 말이 되어 레임덕에 빠지면 일본을 공격함으로써 지지율 하락을 막으려고 한다는 俗說을 믿고 있다. 한국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비판과 공격은, 기본적으로 ‘국내 정치용’이라는 구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對日 비판은 일본에 잘못이 있어서라기보다 ‘국내용’이라는 선입견이다. 물론, 한국 정치인들은 정치적 곤경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 때리기를 하는 양식이 없는 정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소위 ‘전문가’들이 많다.
  
  사실 韓日 간의 갈등, 마찰 요인 자체는 국가관계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서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보아도 인접국과의 마찰, 갈등 요인이 전혀 없는 국가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컨대 갈등과 마찰 요인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하는 일이 과제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건국 후 東西 냉전 시기에 일본과의 갈등에서 뚜렷한 원칙을 가지고 대처해왔다. 한일간 갈등 관리의 기준과 원칙이 흔들리는 것은 6공화국 출범 이후로 생각된다.
  
  李承晩 건국대통령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하여 근대국민국가의 기초를 세웠다. 동해의 魚族자원 보호를 위해 ‘평화선’을 선포하고 이를 지키는 과정에서 주로 일본과 마찰이 있었다. 어쨌든 일본은 6.25전쟁의 후방기지였다. 그러나 일본 측의 在日동포 북송은 대한민국의 국민적 격분을 불러일으켰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유진영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김일성의 對南공작기지를 허용하고 틈이 있을 때마다 남북 등거리 자세를 취하는 미덥지 못한 일본에 대해 경계심과 분노를 억누르면서, 미래를 향해 전략적으로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시켰다. 가난했던 개발도상국 대한민국으로서는 對日 무역적자 축소가 최대 현안이었으며 국가적 과제였다.
  
  ‘김대중 사건’과 ‘문세광 사건’은 양국 간 상호 불신을 결정적으로 깊게 했으나, 東西 냉전이라는 전략 환경과 韓日 양국의 공통의 동맹국인 미국이 한일관계의 접착제 역할을 하여 ‘해양 동맹’의 파국을 막았다.
  
  서울올림픽 성공 후 제6공화국의 한일관계는 이전과 확연히 다른 갈등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제6공화국의 외교안보 노선은 대륙-공산권과는 접촉을 확대하고 화해(북방정책)하는 대신에, 反共-해양 동맹을 경시하는 풍조로 흘렀다. 서울올림픽 성공과 소련과 동유럽의 소멸에 고무된 한국사회는 아무런 경계심과 억제장치 없이 좌경화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의 동서냉전 종식을 계기로 좌경화한 한국과, 東아시아의 냉전 구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본격적으로 우경화하기 시작한 일본이 충돌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보아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한국 사회의 反日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소위 ‘항일 투쟁’을 정통성의 근원으로 삼는 북경(중국공산당)과 평양(김씨 왕조)과의 연대를 넘어, 어리석게도 北京과 平壤을 위한 대리전쟁 역할까지 떠맡게 된다.
  
  노태우 정부는, ‘7.7선언’을 통해 前근대적 민족반역세력인 평양 측을 경쟁자이자 ‘동반자’로 규정하고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NLPDR)을 외쳤던 주사파까지 ‘민주화 운동’세력으로 인정하면서,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강하게 요구하기 시작한다.
  
  ‘5共 청산’이라는 명분에 밀려 미래가 아니라 과거와의 싸움이라는 정치적 덫에 걸린 노태우 정부가, 한국을 방문한 일본 총리에게 종군위안부 문제 등으로 거듭 사과를 요구하여 미야자와 총리에게 공개적으로 모욕감을 준 것은, 한국을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자는 당시의 일본 사회의 우호적 분위기를 일거에 식혀 버렸다. 한국으로부터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했다고 느낀 미야자와 총리는 韓日이 월드컵 대회를 공동주최하는 데 끝까지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영삼, 김대중 등을 오랫동안 권위주의 정권(체제)에 저항해온 ‘민주화 운동’의 중심적 정치인으로 여겨온 일본 사회는 김영삼 정부의 등장을 환영했으나, 곧 김영삼 대통령의 개념 없는 언동에 실망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을 경시했다. 권력의 정통성을 항일투쟁에 두고 있는 중국공산당 강택민 총서기에게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호기롭게 말하고(1995년 11월14일), 일본과는 대화 통로조차 닫아버렸다.
  
  결국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으로부터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복 당한다. IMF사태 초래뿐 아니라, 일본 정부는 한국과의 어업협정 개정 협상을 포기하고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 만료를 한 달 앞둔 1998년1월23일 舊 한일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김대중 정권이 어업협정 공백 상태를 피하기 위해 新 어업협정을 서두르게 만든 결정적 원인 제공은 김영삼 대통령의 일본 모욕이었던 셈이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는 데는 일본사회의 성원이 결정적이었다고 많은 일본인들이 생각한다. 일본 외무성과 정보기관 등 관료 중에도 김대중이야말로 민주주의적 (그리고 친일적) 지도자라고 믿었던 이들이 많다.
  
  김대중 대통령이 폭군 김정일과 합의한 6.15연방제 공동성명은, 대통령 김대중의 정체에 대한 일본사회 主流의 환상과 기대가 허상이었음을 증명했다. 김대중은 평양의 전략에 입각하여 일본에 日北 수교를 종용했다. 김대중은 김정일의 요청에 따라 ‘비전향 장기수’로서 일본인 “하라 타다아키”를 납치한 북한공작원 신광수를 北으로 돌려보냈다. 북핵 해결을 위한 소위 ‘6자 협의’를 비롯, 日北 간 갈등에서 평양 편에 섰다. 일본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在日한국인들의 경제 활동에 사활적 중요성을 가지는 은행 설립 요청도 거부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일본의 朝野는, 反日, 反美의 한반도가 韓美 동맹으로 상징되는 해양세력에서 이탈하여, 공산주의 대륙으로 기우는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한미 연합사를 해체하는 한국과, 미국의 對테러 전쟁에 전면 협력하면서 실질적으로 美日 군사 통합운용체계를 추구하던 일본은 정치적으로나 안전보장 면에서 대화와 협력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노무현 정부가 反日 노선을 제도화하자, 한일 정상 간의 정례 접촉도 결국 중단되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반도 적화론을 거론, 상정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가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韓流 붐도 있어서 많은 일본인들이 현실감각을 가진 CEO라며 중도실용주의 노선에 기대했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연평도 포격 사태에서 한국을 전면적으로 지지한 일본보다, 평양 측을 비호하는 중국에 더 호의적이며 우호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작년 말 京都(교토)에서 개최된 한일정상회담 이래 이명박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목적에서 對日 비판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맹’이나 ‘우방’이란 무엇인가? 아주 간략히 말한다면 안전보장상 전략적 이해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관계를 말한다. 오늘날은 특히 안보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지 여부가 동맹과 우방의 기본이 되는 시대다. 지난 달 서명 당일에 취소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은, 모처럼 한일 양국이 미래에 동일한 가치를 추구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었다.
  
  이를 거부한 것은, 기왕의 협력관계조차도 부정하는, 한국이 공산독재체제인 중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일본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선언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일련의 언행은, 일본에 대해서는 중국에 대한 배려의 몇 분의 1도 배려할 생각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은 느닷없이 천황까지 거론, 끌어들였다. 대다수 일본인들은 천황에 대한 무례와 모욕을 일본에 대한 모욕이라고 받아들인다.
  
  앞에 언급한 대로 한국의 제6공화국의 對日 갈등, 마찰은, 아시아의 냉전 구도에서 보면 한국이 전략적으로 北京과 平壤과 연대하여, 혹은 그들을 대리해서 일본과 싸우는 모양새로 전개될 위험이 너무 크다. 물론 일본도 전략적으로 대국을 살피지 못하는 어리석은 판단을 종종 한다.
  
  일본이 이달 내(8월29일)에 평양 측과 정부간 접촉을 재개한다고 한다. 한일관계가 나빠질 때마다, 정보(의사) 소통이 안 될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한국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대화가 안 되니 독자적으로 김씨 왕조와 접촉하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중국은 북한과 한반도 전체를 영향권 아래에 두기 위해 金氏王朝 이후를 대비하는데, 일본은 그 김씨 왕조와 관계 수립을 추구하는 접촉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 후보들도 거의 모두 일본 정부와 같은 소리들을 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너무나도 감사한 이런 우스꽝스런 짓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약점, 한계라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결혼 해본 사람은 모두 안다. 부부관계도 조심스럽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은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행동하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제6공화국 정권들의 무모한, 혹은 생각 없는 한일관계 관리 포기 행위가 일본의 반응(보복)을 불러왔다. 중국에 대해서는 한 마디 잘못하면 入國금지조치를 당하지만, 일본에는 무슨 짓을 해도 일본으로부터 入國 금지를 당할 리도 없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인가?
  
  대통령에 대한 보복은 그대로 한국에 대한 보복이 된다. 나빠진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이 북한 해방을 앞두고 우방국과 싸움을 벌이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그렇게 상황이 한가한가? 그리고 걸핏하면 對日 일전 불사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충고하고 싶다. 한국의 실력은 아직 멀었다. 힘이 있어도 북한동포 해방을 방해하는 역사의 반동 세력들, 진짜 적들, 자유의 적들과 싸우기 위해 아끼라고. <조갑제닷컴, 2012.08.17>
  
  洪熒(在日회원)
[ 2012-08-17, 18: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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