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척 박사 안철수
착한 척, 기부하는 척, 연구하는 척, 고생한 척, 소통하는 척, 정치개혁하는 척 ... 안철수는 척척 박사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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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대선 준결승 후보는 양처럼 순수하고 올빼미처럼 지혜로운 사람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가 정치와는 담을 쌓은 컴퓨터도사와 기업경영자와 대학교수로만 알려졌을 때, 2030은 평생 일터로는 삼성전자를 향해 서슴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도 평생 모시고 싶은 최고경영자로는 소니의 30년 아성을 무너뜨린 이건희가 아니라 무료 백신을 나눠준 안철수라며, 그의 그림자만 어른어른 비쳐도 어떤 이들은 까치발을 한 채, 어떤 이들은 펄쩍펄쩍 뛰고 괴성을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한 손엔 삼성휴대폰을 높이 치켜들고 연신 그를 향해 셔터를 눌러댔다. ‘대박!’

 

지구궤도보다 먼 곳에서 태양 주위를 빙빙 돌면서, 안철수는 왕년의 김대중보다 더 노련하게 외곽을 툭툭 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정치 유치원생으로 대선의 결승 후보 같은 준결승 후보로 떠올랐다. 자체 발광(發光)하는 것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미루고 미뤘지만, 교수 신분으로 거대 야당의 당수인 양 대변인을 내세워 어렵게, 어렵게 말문을 꺼내 이따금 외곽 때리던 일을 끝내고, 불현듯 궤도를 이탈한 혹성이 밤하늘을 일시에 환하게 비추는 혜성으로 변신하듯 금방이라도 부딪칠 것 같은 기세로 태양을 향해 머리(coma)를 들이밀고 겁나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선문답이 아니라 분명한 행동으로 정치판에 뛰어든 것이다.

 

이 무렵부터 그에 대한 검증이 시작되었다. 미루고 미룬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하고 반대편 사람들이 자기 이마를 탁 칠 정도로 그의 말과 행동은 온통 어긋나고 뒤틀리고 꼬여 있었다. 그의 일방적인 글과 말만 알려졌지, 그 동안 사실 아무도 검증하려 들지 않았다. 그의 말과 글은 이야기의 정합성(整合性)이 너무 돋보여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던 데다가, 그의 행동은 구름 속에 갇혀 있어서 극소수의 사람 외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고, 무엇보다 정치에 몸을 담지 않았고, 장관 같은 공인(公人)의 자리에 명함을 내밀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하나의 살아 있는 아름다운 신화를 깨뜨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직관과 감성에는 잘 들어맞던 안철수 신화가 논리와 이성의 잣대를 들이대자 곳곳에 모순의 벌레집과 의혹의 덩어리와 악취의 주머니가 도사리고 있었다.

 

기부하는 척했지만, 안철수 연구소는 순이익의 1%도 기부한 적 없었다. 고작 0.12%였다. 2001년에서 2005년에 순이익은 262억 원이었으나 기부는 총 3183만 원으로 연평균 636만 원에 지나지 않았다. 주식을 무상으로 직원에게 몽땅 기부한 것처럼 말했으나 다른 주주는 제쳐 두고 홀로 파격적인 가격으로 받은 146만 주 중에서 8만 주, 그러니까 자기가 소유한 전체 주식에서 1.5% 분배한 것밖에 없었다. 그것도 당시 벤처기업이 위기 상황을 맞아 어느 회사나 하던 일이었다. 안철수재단도 그렇다. 기업의 내재적 가치와 무관하게 안철수가 대선에 나올 것이라는 소문 하나만으로 마구 치솟은 것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걸 뻔뻔스럽게 팔아서 기부천사란 명예를 얻었다. 최고의 홍보였다. 교묘한 사전 선거운동이었다.

착한 척했지만, 무료백신은 그 당시 수요가 전혀 없었다. 후일을 위해서라도 무료로 배부할 수밖에 없었다. 막상 유료화가 가능하자, 누구보다 먼저 유료화하고 시장 지배율을 높였다. 착한 철수 이미지 덕분에 정부와 대기업은 가격 불문 품질 불문 V3를 사 주었다. 설령 윗사람이 다른 제품을 검토해 보라고 해도, 공무원이든 대기업 직원이든 안철수 아니면 안 된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가 타도 대상으로 삼는 이명박 정부와 한국의 세계적 대기업으로부터 그는 누구보다 덕을 많이 보았다.

 

연구하는 척했지만, 군대 갈 때도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갈 정도로 연구에 몰두했다고 하지만, 낮에는 의학공부하고 밤에는 쪽잠을 자며 컴퓨터 백신을 개발했다고 하지만, ‘청춘을 썩힌’ 군의관 시절에도 제2저자로 제3저자로 논문을 발표했다고 물증을 제시했을 정도로 연구에 미친 사람인 척했지만,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먼저, 그가 입대할 때 부인이 마중했다는 말을 해 버렸다. 게다가 세계적 석학이라고 요란하게 써 놓고 전국의 대학을 누볐지만, 아무도 인용하지 않는 논문 5편밖에 없었다. 이중에는 표절 내지 복사 수준의 의혹을 사는 논문도 있다. 미국에서 일류대에서 공학석사와 경영학석사를 받았다고 했지만, 그에 관한 논문도 밝힌 게 없다. 논란이 일자, 슬그머니 자기 자랑 목록에서 지워 버렸다. 카이스트 교수 시절이든, 서울대 교수 시절이든 그가 재직한 두 대학은 이제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섰건만, 세계적 논문이 이 두 대학에서도 쏟아져 나오지만, 유독 안철수는 논문 한 편도 쓰지 않았다. 알고 보니, 연구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연구와는 철천지원수처럼 지냈다.

 

전세살이하면서 고생한 척했지만, 어머니가 사 준 자기 명의로 된 딱지아파트에서 살았다. 명의는 누구 건지 모르나 어머니가 사 둔 또 다른 아파트에 살기도 했다. 의사 아버지 덕분에, 재산 많은 친일파 할아버지 덕분에 돈 걱정이 전혀 없었던 사람이었다. 의사를 그만 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일확천금하는 치부(致富) 과정도 전혀 떳떳하지 못했다. 정상적인 기업 활동보다는 주식시장을 이용한 개인 치부가 훨씬 컸다.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에 따르면, 주식상장과 신주인수권부전환사채(BW) 발행은 코스닥 비리의 결정판을 보는 듯하다. 공소시효가 지났을지는 모르나, 그런 식으로 하다가 쪽박 찬 사람이 수두룩했다고 한다. 불법과 편법의 미세한 철사 사이로 박쥐처럼 단 한 개도 건들지 않고 쏜살같이 빠져나간 듯했다.

 

소통하는 척하지만, 하나같이 일방적이다. 불리하면 아예 입을 닫거나 표독스럽게 네거티브라며 역공격한다. 국민의 뜻을 묻고 듣는 듯하지만, 친북좌파적인 이념 성향이 뚜렷한 사람들 또는 순진무구한 사람만 찾아다니고 있다. 80년대부터 대학에서 운동권들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던 것에 약간의 당의정을 입혀서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개혁의 선구자처럼 사자후를 터뜨리지만, 하나같이 대한민국을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나 중남미의 어느 나라라도 되는 양 불문곡직 매도하면서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는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뜯어고치면, 대한민국은 5년 안에 아프리카나 중남미의 어느 나라처럼 될 것이다, 틀림없이!

안철수는 의학박사다. 거기에 명예박사 학위를 하나 더 주어야 할 것이다. 명예박사이긴 하나 이게 그에게 가장 알맞은 박사 학위이리라. 척척 박사! 착한 척, 기부하는 척, 연구하는 척, 고생한 척... (2012. 11. 5.)

[ 2012-11-05, 21: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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