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 살기
精彩(정채) 있는 순간의 회상

張良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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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有限性(유한성)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인 인간이 오래 사는 방법은 없다. 그런데 궤변같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길게 사는 방법’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한 번씩 레온 에델이 ‘靈的(영적) 怳惚境(황홀경)’이라고 하고 胡適(호적)이 ‘精彩(정채) 있는 순간’ 곧 ‘빛을 발산하는 것 같다’고 한 순간과 遭遇(조우)하게 된다. 나는 간혹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하는데 뒷날 그 때를 되돌아보면 언제나 그 때 그만큼의 시간을 한 번 더 사는 것 같은 것을 느낀다.

이제 내가 경험한 그런 순간들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印度(인도)를 여행할 때다. 釋迦(석가)의 나라, 타골의 나라, 광대하면서도 한없이 너그러운 나라, 타지마할의 나라…. 그러한 이미지는 그 나라의 캘거터 공항에 내리는 순간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다. 보세구역을 빠져나가자마자 일시에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어 우리를 둘러싸고는 ‘원 루피! 원 루피!’ 하고 돈을 달라기도 하고, 볼펜이나 가스라이터를 달라고 하기도 한다. 사방에서 내미는 새까만 사람들의 새까만 손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들었다. 무슨 물건을 사라는 것도 아니고, 사대육신 멀쩡한 사람들이 그냥 멀건이 손을 내밀고 돈을 달라, 물건을 달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한 번 그런 경험을 한 나는 다음, 뉴델리 공항에 내렸을 때는 누가 손을 내밀건 뭐라고 하건 모른 체하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나와서 돌아보니 그 와중에 특별히 눈에 띄는 광경이 있었다. 모든 印度人들이 염치없이 그냥 손을 내밀고 있는데 열두어 살 된 한 소녀가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의 짐수레를, 우리가 타고 갈 버스 앞에까지 밀어다 놓고는, 뒤따라오는 수레 주인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런데 수레 주인은 그 소란에 정신이 없는지, 그 기특한 애를 냉랭하게 무시해 버렸다. 상당히 실망스러웠을 것 같은데 그 소녀는 수레를 밀고 올 때와 같은 무심한 얼굴로 조용히 돌아서 갔다. (저 애를 그냥 보내서는 안 되겠다.) 나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 뒤쫓아 가 그 애의 가볍고 얄팍한 등을 두드려 돌려세웠다. 내가 주머니에 있던 印度 지폐 몇 장을 꺼내 주었을 때 그 애는 너무 의외의 일에 놀란 듯 멈칫하더니 그것을 받고는 까만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그때, 영리하게 생긴 異國(이국) 소녀의 그 無垢(무구)한 얼굴에 파문처럼 번져가던 그 행복한 웃음을 보는 즐거움이라니!

중년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사소한 일상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행복을 만나는 일이 흔히 있었다. 어느 해 가을, 나는 산을 오르다가 길가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 여남은 살 된 한 예쁜 소녀를 보았다. 피부가 티 없이 깨끗한 그 애는 목을 뒤로 젖히고 꼴랑꼴랑 소리를 내며 수통의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 애는 산을 오르느라 열이 나 볼은 발그레 상기되었고 콧등에는 땀이 송송 돋아 있었다. 구름이 몇 점 떠 있을 뿐, 코발트빛 맑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한 그 애의 눈은 天色(천색) 그것보다 몇 배나 더 맑았다. 나는 그 모습이 하도 아름다워 한참 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때 나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無償(무상)의 행복을 느꼈다.

손녀가 첫걸음을 떼어 놓던 순간도 되돌아보면 언제나 나에게 행복감을 안겨 준다. 돌을 막 지난 어느 날이었다. 손녀는 그때까지,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가끔 혼자서 서곤 했지만 그때마다 금방 털썩 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주저앉곤 했었다. 그런데 그날은 무언가 분위기가 그 전과 달랐다. 전과 같이 혼자 일어서기는 했는데, 전에 없이 얼굴에 팽팽한 긴장이 돌고 있었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짧은 순간, 한 발자국 떼어놓아 볼까 말까, 하고 망설이는 것 같았다. 애로서는 그것이 생애 첫 모험이니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프로 알피니스트가 눈앞에 입을 벌리고 있는, 깊고 넓은 빙하 크레바스 앞에서 건너뛸까 말까, 하고 거리를 가늠하고 있는 것과 같아 보였다.

다음 순간, 녀석은 결심이 선 듯, 땀박하고 먼저 왼발, 바로 이어서 다시 땀박 오른발을 떼어 놓는다. 그리고는 상체가 앞으로 쏠리며 엎어질듯 하더니, 토싵토실 살이 오른 두 다리가 파르르 떨리면서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바로 선다. 그러고는 “아이구 잘했다! 아이구 잘했다!” 하면서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나에게 무너지듯 와서 안긴다. 그때 내게 전해져 오던 애의 그, 성취의 기쁨은 황홀한 것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세 경우만 이야기했는데 내게는 그런 경험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지금도 한가한 시간 그러한 순간들의 기억을 떠올리면 어떤 행복감 같은 것을 느낀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단순한, 지난날의 어떤 즐거웠던 순간의 회상과는 또 다른 성질의 것인 것 같았다. 아름다운 이성과의 데이트, 재미있는 영화·연극 관람, 맛있는 음식을 먹은 기억 같은 것은 이 나이에 되돌아보면 그냥 즐거웠던 한 때로 기억될 뿐, 거기서 이미 가버린, 죽은 시간의 의미 이상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위에서 이야기한 그러한 순간들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는 그와 달라서 나는 그때마다 거의 그때 그만한 길이의 행복한 시간을 한 번 더 사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 2014-01-07, 17:3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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