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안 하겠다고 다툰 사람들
推賢讓能(추현양능)은 故事(고사)일 뿐인가

張良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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弱肉强食(약육강식)이라는 좀 살벌한 말도 있거니와 우리는 좋든 궂든 치열한 경쟁세계에서 살고 있다. 또 어떻게 보면 인류는 그 경쟁 속에서 발전을 거듭해 오늘과 같은, 문명이 발달하고 풍요한 세상에 이른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경쟁, 싸움이라는 것이 善意(선의)의 그것이면 모르겠는데 이판사판식의 그것이 되고 보면 세상은 살벌하기 짝이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지방선거가 얼마 앞으로 닥아 와 있으니 또 앞으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이쯤에서 옛 기록들에 나타난 경쟁, 싸움과 관련된 이야기를 몇 마디 할까 한다. 《三國史記(삼국사기)》에 보면 新羅(신라)는 젊은이들의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아름다운 처녀를 原花(원화)로 삼아 그녀를 중심으로 수련을 하게 했다. 그리하여 南毛娘(남모랑)과 俊貞(준정), 두 처녀가 原花가 되었다. 그런데 두 처녀 중 俊貞이, 라이벌 南毛娘의 인기가 자신보다 나은 것이 샘이 나 그녀를 죽여 버렸다. 결국 그 일이 탄로나 俊貞도 죽음을 맞고 그 제도도 그 일로 하여 없어졌다 한다.

위는 흔히 듣는 여자들의 질투 이야기라 하겠지만, 남자들의 세계에서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이기려고 싸우다가 쌍방이 다 같이 망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를 보면 後漢(후한) 말, 사실상 中國(중국)의 최강자였던 河北(하북)의 盟主(맹주) 袁紹(원소)는 그의 사후에 그 아들 譚(담)과 尙(상)이 대권을 서로 쥐려고 싸우는 바람에 그 나라가 曹操(조조)에게 망해 버렸다.
高句麗(고구려)도 淵蓋蘇文(연개소문)이 죽자 그 아들 男生(남생)과 淨土(정토)가 싸우는 통에 결국 新羅에 패망하고 말았다.
後百濟(후백제)도 그랬다. 甄萱(견훤)이, 상대적으로 인물이 나은 넷째아들 金剛(금강)을 태자로 삼으려 하자 맏아들 神劍(신검)이 반란을 일으킨 끝에 나라가 高麗(고려)에 망해 버렸었다.

그런데 史書(사서)들을 읽어 보면 王權(왕권)을 둘러싸고, 벼슬자리를 두고는, 반드시 그런 ‘네 죽기 아니면 내 죽기’ 식의 싸움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먼저 그와 관련된, 中國 周(주)나라 成王(성왕)이 한 말부터 들어 보기 바란다. 그는 자신의 신하들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어진 사람을 추천하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양보하면(推賢讓能 ․ 추현양능) 모든 관리들이 화목할 것이요, 그러지 않으면 政事(정사)가 어지러워질 것이다.”고 했다 한다.

그와 같은 말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 바로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 「列傳(열전)」에 나오는 鮑叔(포숙)이다. 齎(재)나라 桓公(환공)의 눈에 들어 그 나라의 고관을 지내고 있던 그는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친구 管中(관중)을 왕에게 천거하여 크게 쓰이게 했다. 그리고는 자신은 그 아랫자리에서 그를 윗사람으로 모시고 일했다. 그 덕분에 나라는 부강하게 되고 두 사람은 아름다운 우정의 예로, 천추에 향기 높은 이름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史記(사기)》의「伯夷列傳(백이열전)」에는 서로 왕의 자리를 마다 한 형제의 이야기가 나온다. 伯夷와 叔齊(숙재)는 孤竹國(고죽국)의 왕자였다. 그들의 父王(부왕)은 죽기에 앞서 왕위를 셋째아들 叔齊가 물려받도록 하라고 했다. 叔齊는 형을 두고 그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면서 伯夷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伯夷는 어떻든 아버지이자 先王(선왕)의 명을 어길 수 없다고, 기어이 왕의 자리를 사양했다. 그리하여 결국 왕위는 둘째아들에게 돌아갔다. 伯夷와 叔齊는 新王(신왕)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그 나라를 떠나 周나라로 가서는 거기서 생을 마쳤다 한다.

우리의 역사에도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온다. 《三國史記》 「儒理尼師今(유리이사금)」條(조)에 보면 新羅 제2대 南海王(남해왕)이 죽자 왕위는 太子(태자) 儒理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儒理는 자기보다 덕망이 높은, 妹夫(매부) 昔脫解(석탈해)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昔脫解는 예로부터 有德(유덕)한 사람은 이(齒 ․ 치)가 많다고 했으니 그것으로 시험해 보자고 하여 떡을 가져오게 해 물어보았는데, 儒理의 잇금이 더 많아 그가 제3대 왕이 되었다 한다. 미담은 그 후에도 이어진다. 그리하여 왕이 된 儒理는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내 두 아들은 재주가 昔脫解에 미치지 못하니 昔脫解가 왕이 되도록 하라.”고 하여 그가 왕위에 올랐다 한다.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오늘의 세상에도 최소한이라도 推賢하고 讓能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을 바랄 수 없다면 최소한 그 싸움이 깨끗한 그것이기라도 됐으면 좋겠다.

[ 2014-02-14, 17: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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