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國家理性이 마비되는 과정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가장 큰 승리를 쟁취한 쪽은 상황에 따라 거짓말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한 사람들일 것이다.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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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誤報와 유언비어가 만든 재난의 확산
  
  4월16일 오전 10시50분경. 세월호는 172명을 제외한 나머지 294명의 구조 가능성을 상실한 채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로부터 약 10분 뒤인 오전 11시01분부터 27분까지 모든 방송매체들은 ‘전원구조’를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誤報(오보) 대행진을 시작한다. 세월호 침몰사고에 이은 2차 재난의 시작이었다.
  
  오후부터는 에어포켓의 주장이 매스컴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생존자들이 에어포켓 속에서 카톡 메시지를 날리는 것처럼 가장한 거짓 메시지들이 SNS를 통해 등장한다. 있지도 않은 '골든타임'도 등장했다. 매스컴은 사실 확인도 없이 이런 유언비어들을 마구 전파했다. 매스컴은 아들딸의 생존을 간절히 바라는 유가족들의 절실한 마음을 분노로 바꾸며 적극 이용했다. 종편을 위시한 방송매체들은 현장을 모르는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등장시켜 경쟁적으로 선동적 오보를 양산했다.
  
  에어포켓과 함께 물 밑에서 생존자를 보았다는 목격담과 다이빙 벨의 구조 가능성이 연일 회자됐다. 그러다 보니 사고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 방송에서는 ‘아무쪼록 희망을 잃지 마시고…’라는 멘트가 계속 나갔다. ‘조작된 희망’을 근거한 신문들은 연일 백일장 하듯 감상적인 제목을 달고 선정성 경쟁에 몰입했다. 반정부 성향의 인사들도 한 발을 들여놓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감히 누구도 ‘구조 종료 선언’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國家理性(국가이성)이 마비된 채 재난상황이 확대되고 있었던 것이다.
  
  5월19일, 朴槿惠 대통령은 가라앉는 선체 밖으로 나온 172명 전원을 50분 동안 성공적으로 구조한 사실은 깡그리 무시한 채 ‘구조의 실패’라고 단언하고 ‘해경 해체’를 선언했다. 감사원과 검찰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진실을 무시한 채 끼워 맞추기식 조사와 수사를 계속했다. 언론과 방송은 이들의 발표를 비판 없이 보도하며 해경을 범죄자로 모는 데 가세했다. 대통령, 국회, 검찰, 감사원, 언론, 방송, 반정부 인사들이 한통속이 되어 海警에 책임을 전가했다. 결국 해경은 대통령의 선언 이후 6개월 만인 11월19일, 역사 속으로 침몰해 버렸다. 3차 재난이었다.
  
  그리고 세월호 사고 228일 만에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에 따라 2015년 국회는 세월호 특별감사를 필두로 4차 재난을 예고하는 중이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는 제대로 된 복구 단계에 진입하지 못한 채 끝없이 국력을 漏水(누수)하는 재난 확대의 길로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구조의 성공’이며, ‘복구의 실패’이고 ‘재난의 확산’으로 요약된다.
  
  SAR 협약의 ‘합리적 희망’
  
  水密(수밀)되지 않는 합판 재질의 객실을 가진 여객선이 약 1시간에 걸쳐 서서히 돌아누우며 섭씨 11도의 물 속으로 가라앉으면 그 안에서의 생존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일단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이런 추정도 가능하다. 과연 에어포켓 같은 호흡할 만한 공간은 형성된 것일까? 만에 하나 이런 공간이 객실의 모서리 부분마다 약간씩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그 안에서 머리를 물 위로 내민 채 버틸 수 있는 최장 시간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이런 의문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답변들이 마련되어야만 목숨 건 잠수 구조의 종료 시간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해난사고 발생시 구조의 주체인 海警에게는 인명구조를 위한 시간과 책임이 무한대로 주어지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해양 수색 및 구조에 관한 국제협약’이라 불리는 ‘SAR 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Maritime Search & Rescue)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SAR 협약은 1979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유엔 산하의 國際海事機構(국제해사기구·IMO)가 중심이 되어 20여 국이 체결하면서 탄생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52번째로 1995년 4월 공식 가입했다. 이로써 우리나라 해역에서의 해난구조활동이 국내 선박은 물론 SAR 가입국 선박으로까지 확대됐다. 동시에 우리나라 선박이 가입국 해역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에도 협약 가입국으로부터 국내와 동등한 구조지원을 받게 된다. 2014년 12월1일 러시아 베링 해에서 침몰한 사조산업의 어선 오룡호의 경우도 러시아와 미국의 해안경비대 및 인근 어선들의 구조지원을 받았다. 이처럼 1995년 이후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까지 해양경찰은 SAR 협약에 입각해 모든 해난 구조에 임해온 것이다.
  
  이 SAR 협약서 4.8에 보면 ‘수색 및 구조활동의 종료와 중지’에 대한 규칙을 정해 두고 있다. 인용해 본다.
  
   4.8 수색 및 구조활동의 종료와 중지
  
  4.8.1 수색 및 구조활동은 실행 가능한 한, 생존자 구조에 대한 모든 합리적인 희망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된다.
  
  (4.8.1 Search and rescue operation shall continue, when practicable, until all resonable hope of rescuing survivors has passed.)
  
  4월16일 오전 10시50분경, 세월호는 船首(선수) 밑부분만 수면 위로 내놓은 채 가라앉아 버렸다. 水密(수밀) 능력이 전혀 없는 객실 안으로 물이 들어찼고 수온은 건장한 사람이 3시간을 버티기 힘든 섭씨 11도였다. 이럴 경우 과연 ‘합리적 희망’은 언제까지로 보아야 하는가.
  
  구조 종료 4월18일 새벽 0시30분. 그러나 모두 침묵했다.
  
  SAR 협약서에는 ‘합리적 희망’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은 들어 있지 않다. 이 경우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을 마련하려면 결국 통계적 확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통계란 무수한 빈도수를 근거로 삼는 수학적 산정방식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해난 사고는 20년에 한 번꼴로 발생하니 이 또한 통계치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과연 ‘합리적 희망’은 언제까지일까. 세월호 현장에서 210일간 잠수 수색을 지휘해 온 해경의 경비안전국장 이춘재 치안감은 “생존자가 1%라도 있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수색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 해경의 입장”이라고 말해주었다. 기자가 ‘그 시각을 언제로 보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18일 오전 0시30분”이라고 답했다. 그전까지는 생존자가 있다고 간주하고 확인 수색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8일 오전 0시30분이 되면 수면위로 떠올랐던 세월호의 구상선수가 물 속으로 잠기면서 선체 전체가 45m 해저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생존 가능성이 0%로 굳어지던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이 사태를 관리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만나게 된다. 재난 관리를 연구하는 防災學(방재학)에서는 구조를 위한 ‘대응 단계’가 끝나면 ‘복구의 단계’로 접어들어야 한다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서 어느 누구도 ‘구조 종료 선언’을 하지 못했다.
  
  해난사고의 복구는 사고 현장에 가라앉은 화물과 선체의 인양이 포함된다. 防災學이 발전한 西洋의 잣대로는 화물의 인양 속에 屍身(시신)도 포함된다. 하지만 屍身을 보다 엄중히 여기는 東洋에서는 屍身을 화물과 同格(동격)으로 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도 메뉴얼을 마련하는 데에 모호성이 존재한다. 우리는 한 번도 이런 문제로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엄격한 절차를 마련할 수 없다. 屍身을 화물과 同格으로 둘 것인가, 아니면 屍身을 생존자와 同格으로 둘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없었던 것도 복구 과정을 실패로 몰아가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屍身이 화물이냐 사람이냐 하는 차이는 잠수 수색 현장에서 드러났다. 屍身을 화물로 간주했더라면 펄 물이 최고 5.6노트 이상의 속도로 흐르는 바닷속에서 210일 동안이나 목숨을 건 잠수 수색과 시신 인양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양할 가치가 있고 인양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인양했을 것이다. 인양할 가치가 있더라도 인양 가능성이 없다면 과감한 포기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屍身을 살아있는 존재로 여기는 경우, 무리를 해서라도 잠수 수색과 인양을 하도록 종용하게 된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는 그러한 무리수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2명의 민간 잠수사와 5명의 소방대원 등 총 7명의 고귀한 생명을 잃어야 했다.
  
  북한에 아직도 국군포로 500여 명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조차 외면해 오면서, 시신 인양을 위한 구조대원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태도가 과연 우리의 ‘합리적인 희망’인가. 살아있는 우리들은 <과연 이것이 ‘합리적인 희망’이라고 불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질문을 외면한다면 미래에 또 다른 희생자들을 만드는 데 현재의 살아있는 우리들이 일조하는 셈이 된다. 언젠가 또 다시 발생할 대형 참사에 우리가 미리 죄를 짓고 업을 쌓는 셈이 된다.
  
  선량한 국민들에게 ‘합리적 희망’은 존재하는 것일까.
  
  비합리적 관행으로 빚어진 또다른 참사도 있다. 해난사고 발생 시 해양구조의 협력세력인 어민과 구난업체들은 중앙재난대책본부의 從事命令(종사명령)에 따라 구조 작업에 동참해야 한다. 이 명령을 어길시에는 벌금을 물게 돼 있다. 대신, 구조에 참여함으로써 발생하는 재산상 피해는 정부가 보전해 주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정부는 인색한 원가계산을 통해 비현실적일 만큼 절반도 안 되는 청구액의 33% 정도를 보상금으로 제시했다. 이로써 해양구조 협력세력들로 하여금 추후에 국가로부터 종사명령을 받을 시 무조건 벌금형을 받는 쪽이 손실을 막는 길이라는 새로운 학습의 기회를 갖게 됐다. 벌금은 최고 300만 원인데 구난업체가 입은 손실은 수억 원대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국내 유일의 해외 구난업체 ‘언딘’은 은행권의 자금차단으로 파산의 위기를 맞았다. 이런 피해는 누가 보상하나?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海警은 물론이고 재난관리의 총체적 책임을 가진 정부조차 ‘합리적 희망’의 종료 시점을 용기 있게 ‘선언’하지 못했다. 용기가 있었다면 2박3일 만에 구조 수색은 중단됐을 것이고 차분한 복구가 진행됐을 것이다. 용기가 없는 대가로 우리는 장장 210일 동안 잠수 구조 수색을 했다는 ‘상식 밖의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게 됐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해양국가도 침몰선의 잠수 구조 수색을 이만큼 해낸 사례가 없다.
  
  인생은 세월호를 삼킨 바다보다 더 험난하다고들 한다. 그런 바다를 건너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데, 정작, 그런 용기는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정직해야 용기가 생기는 법이다. 진실을 직시하고 말할 용기가 없다면 거짓말을 하며 비겁을 무기로 삼고 사는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에서 용기 있는 자와 비겁한 자의 승부는 어떻게 결판나는 것일까? 승자는 이득을 보는 쪽이고 패자는 손해를 보는 쪽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도 오보와 선동에 이리저리 휘둘린 유가족들이었다. 동정받아야 할 사람들이 난폭해지면 미움을 받게 된다. 그런 점에서 유가족들은 선동에 희생된 사람들이다. 그중 일부는 아예 선동의 중심에 선 채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버렸고. 그 다음 피해자는 해경과 구난업체들 그리고 국민들이다.
  
  4차 재난으로 확산되어 가는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가장 큰 승리를 쟁취한 쪽은 상황에 따라 거짓말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한 사람들일 것이다. 대통령에게 허위정보를 전달하고 상황을 오판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챙긴 특정 공무원 세력, 분노한 유가족들에게 선거 유세하듯 입맛에 맞는 말만 해 가며 박수 받은 정치인들, 그들을 추종한 감사원과 검찰, 언론과 방송들이다. 그들만이 이득을 보는 중이다. 그 비용은 묵묵히 땀 흘리며 살아가는 선량한 국민들의 세금으로 지불해 가면서. 그런데 정작 선량한 국민들에게 ‘합리적 희망’은 있기나 한 것일까.●
  
  성원해 주신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9월12일부터 3개월10일간에 걸쳐 총 45회의 '세월호 현장 르포' 연재를 마칩니다.
  
  20년 전, 처음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래 가장 힘든 취재였다고 생각합니다. 취재 도중에 '살아 생전에 더 이상 이런 취재는 못하겠습니다. 이것은 저의 遺作(유작)입니다'라고 호언했을 정도였습니다.
  
  대통령이 '해경 해체'를 선언한 5월 중순부터 취재를 결심하게 되었지만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취재한 언론이 없다는 판단이 뒤늦은 취재를 다그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조갑제 대표와 회의를 통해 3주간 취재후 출판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취재를 하면 할수록 양파껍질 벗기듯 진실은 저 아래로 숨어들었습니다. 결국, 반년이나 걸려 취재가 끝났습니다. 제 능력 부족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아닌지 모르겟습니다만, 어지간한 사건은 1주일을 넘기지 않았는데, 이 또한 난생 처음 겪는 일입니다.
  
  취재를 하면서 이렇게 많이 울어보기도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합니다. 해경은 해경대로, 구난업체는 구난업체대로, 유가족은 유가족대로, 희생자들은 희생자들대로 눈물없이 그들의 처지를 들여다볼 방법이 저에겐 없었습니다.
  
  현장 취재란 지독한 육체적 노동력이 요구됩니다. 기사쓰기의 기본이 정신노동이라고들 하지만 육체노동이라는 품을 들이지 않고는 좋은 르포기사를 쓰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번 취재에는 한 술 더 떠 지독한 감정노동이라는 짐도 져야만 했습니다.
  
  독자분 중에 제 연재기사의 댓글에 '혼자 산을 오르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식의 표현을 하셨을 때 저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 기사를 써 가면서 히말라야 고봉들을 오르는 상상을 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글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감정을 전달하는 타임머신'이라는 평소 제 지론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 히말라야 고봉을 등반할 때 익명의 세르파가 동행합니다. 저에게도 지금은 해체된 해경의 李大行 경사가 든든한 세르파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우연처럼 그와 만나서 숱한 봉우리들을 정복할 때마다 결정적인 길안내와 격려를 받았다는 사실은 제가 운이 좋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공무원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는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훌륭한 공무원이란 초고속 승진 기록이나 빼어난 스팩을 자랑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국가관을 자신의 또 다른 신앙처럼 간직한 공무원이겠지요. 욕망이 아닌 열정으로 시련을 버텨내는 그런 공무원들을 만난 제가 운이 좋은 듯 합니다. 저와 그 친구는 열정의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산을 내려 옵니다. 오직 한 걸음 한 걸음 진실의 발판만을 밟으며 오르던 길을 되돌아서 이제는 무사히 하산하게 되었습니다. 팩트 하나가 확인되지 않아 일주일 동안 빙벽에 메달린 채 고립된 알피니스트가 되어 보기도 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봉우리를 홀로 정복하고 돌아서는 허허로움을 가슴에 담아 보기도 했으며, 에베레스트 정상 바로 아래의 직벽인 '힐러리 스텝'처럼 마지막 봉우리를 눈앞에 둔 채 고전을 면치 못한 적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독자 여러분들이 달아주신 격려의 댓글들을 다시 펼쳐보고 마음을 다잡았음을 고백합니다. 참으로 그 글들은 어둠 속에 빛나는 별빛같아서 저에게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독자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머리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봄에 올랐는데 하산해 보니 겨울이 와 있습니다. 남루해진 등산복 차림으로 진실을 캐어 들고 돌아왔으나 배낭 속엔 2300매의 원고만 무게를 더할 뿐, 곤궁한 삶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산티아고 노인이 뼈만 남은 참다랑어를 바닷가에 끌어다 놓고 오두막으로 휘적휘적 걸어가던 그 심정을 절절하게 느끼는 밤 입니다.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4년 12월22일 새벽.
  
  이동욱 기자 올림
  
[ 2014-12-22, 15: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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