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고은이냐 《고발》이냐?
북한인권에 침묵하는 고은이 아니라, 북한의 참상 고발한 지하작가 '반디'에게 노벨문학상을!

강철군화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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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해마다 10월이 오면 노벨문학상 발표를 앞두고 수상후보자 가운데 하나로 고은(高銀)시인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그리고 다른 외국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발표가 나오면 그 보도 뒤에는 올해도 고은 시인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다같은 멘트가 붙었다.

거기에는 마치 누구에게 꿔 준 빚을 당연히 돌려받아야 하는 것처럼,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이상하게도, 혹은 부당하게도 받지 못했다는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특히 한겨레경향신문이 그랬다. 의아했다. 고은이라는 시인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가? 그의 대표작이라는 만인보같은 작품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모르는 외국인들에게도 통용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인가?

어떤 사람은 고은의 작품 속에 있는 저항성을 높이 평가하며, 바로 그 때문에 고은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원래 고은은 순수문학으로 시작했지만,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참여문학 쪽으로 방향을 튼 인물. 그는 전태일 분신사건이 자신이 참여문학으로 돌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전태일 분신 이전까지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았어. 이승만이고 뭐고 신경도 안 썼어. 4·19를 나는 해인사에서 맞이했어. 단식하고 있었지. 아무튼 전태일 이후 현실이 다가왔어. 병에 걸린 것처럼 막 현실이 다가와. 그런데 그러고도 시는 여전히 옛날 시를 썼어. 몸이 먼저 가고 난 뒤에야 언어가 따라왔어. 70년대 중반에야 현실 참여 시가 나오더군.” (한겨레, 2012.7.22. 조국 서울대 교수와의 인터뷰)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온 몸으로 가자/가서는 돌아오지 말자/박혀서/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고 노래한 그의 시 <화살>은 그의 저항성을 잘 보여준다.

고은은 이후 문학을 통해 저항을 노래하는 수준을 넘어 이른바 민주화운동에 투신,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전국연합,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등에서 활동한다. 1980년에는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박정희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인물이요, “다시는 나타나면 안 될 시대를 의인화한 것이 박정희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박정희와 박근혜를 태종과 세종에 비유하는 말에 대해 범죄적 수준의 견강부회, 아주 무식한 놈이나 지능범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격분한다.

고은의 현실에 대한 참여의식과 저항, 분노에는 국경이 없다. 그는 창작과 비평2002년 여름호에 기고한 <>라는 제목의 시에서,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1954년에는 과테말라, 1958년에는 인도네시아, 1960년에는 다시 과테말라, 1964년에는 콩고와 페루와 라오스, 1961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 1969년에는 캄보디아와 크메르, 1967년부터 1969년까지 다시 과테말라, 1980년대에는 그레나다, 1989년에는 파나마, 1991년에는 이라크(걸프전), 1995년에는 보스니아, 1998년에는 수단과 아프가니스탄, 1999년에는 유고슬라비아, 2002년에는 아프간에서 각기 크고 작은 전쟁을 수행했다고 규탄한다.  

이렇게 현실의 불의(不義)에 맞서온 의()로운 문인이 또 있을까? 세계는 마땅히 이 시인에게 노벨문학상을 주어 그 의로움을 기려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정의는 편파적이 아닌가 하는 혐의가 짙다. 그렇게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게는 화살이 되어 저항하고, 미국의 침략전쟁에 희생된 제3세계 약소국 인민들에게는 동정을 표하던 사람이, 바로 휴전선 이북에서 맞아 죽고, 굶어죽고, 얼어 죽고 있는 북한 동포들에 대해서는 잔인하리만큼 냉담하다. 그렇다고 그가 통일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20006.15 남북회담 때에는 김대중을 수행해서 평양을 방문했다. 일찍이 <휴전선 언저리에서>라는 시에서, 도저히 휴전선을 넘을 수 없어 콜레라균이 되어 휴전선을 넘어가서 북한여성에게 들어가 하나가 되자는 상상까지 했다는 사람이 고은이다.

내가 콜레라균이 되어서 휴전선을 넘어가서 북한 여성에게 들어가자, 그럼 交合이 이루어진 거잖아. 그 여성도 죽고 나도 죽을 거 아냐. 죽었지만 흙이 돼. 하나의 흙이 되는 거야. 이렇게 나는 흙으로서의 통일을 염원했어.”(한겨레, 앞의 인터뷰)

고은 시인은 에서 북한 주민의 고통을 노래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둘러댔다 (조선일보, 2009824일 최보식 기자와의 인터뷰)

우리나라에 외국 원수가 와서 서울의 달동네에 가 봐도 그렇지 않나요. 북한만 그런 게 아니라, 거기도 참담한 삶이 있습니다. 우리 대통령이 도시 빈민을 어떻게 다 해결합니까.”

최보식 기자가 혹시 북한 주민의 참상과 우리 빈민의 문제가 같다고 보는 건가요?”라고 되묻자 고은은 그건 아니고요. 국가 최고 지도자에게 모든 걸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파편적으로 들려오거나 소문으로 알 수가 없죠. 내가 현장에 가보지 않는 한. 현장에 가려면 이 체제와 만나야지요. 또 북한을 들어가도 내 마음대로 다닐 수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최보식 기자가 북한 주민의 참상에 대한 자료는 많고 숱하게 보도됐습니다. 당장 우리 주변에는 이를 증언할 탈북자들이 15000명이 넘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일일이 지적해서 남북 관계에서 무슨 기여를 합니까. 나는 정치인이 아니에요. 개선해줄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이에요.”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가 앞에 소개한 조국(曺國) 교수와의 인터뷰에서는 스스로 내 생활의 일반은 정치적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잘못된 길을 가면 불만이 쌓이고 갈아엎어야겠다는 염원이 생기니까. 내 실존 자체가 피할 수 없는 정치적 환경 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분명히 정치적인 존재지.”

물론 정치인정치적 존재는 다르다. 하지만 정치적 존재자격만으로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얼마든지 노력할 수 있다. 그가 과거 민주화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한 것은 정치인이어서, 세상을 바꿀 힘이 있어서였나?

‘(북한인권을 개선해 줄) 아무런 힘이 없다는 그가 1970~80년대에는 잘도 이 사회를 개선해보겠다고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었었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도 여전히 그는 우리는 정치를 쉽게 경멸하지만 정치로부터 절대 도망갈 수 없다면서 저항을 독려했다.

박정희를 겪었고 이명박을 겪었어. 다시 겪지 않아야 하는데, 나쁜 징후가 현전(現前)해 있어. 사람들은 나이 들면 체념하거나 현상에 양보하기 쉽다고 해. 그러나 누구 하나쯤은 안 그랬으면 좋겠어. 전사자가 되더라도.”

자신이 개선해 줄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이라는 고은의 말을 보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떠올렸다. 마르케스는 쿠바의 독재자 카스트로와 절친한 사이였다. 이 사실을 비난하는 작가 바르가스 요사에게 마르케스는 이렇게 항변했다. '내가 지난 20년 동안 남몰래 쿠바 정권에 부탁해서 석방시킨 쿠바 작가들이 얼마나 되는지 헤아릴 수 없다.'

마르케스의 말이 얼마나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주 없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은은 북한에 갔을 때, 누구를 풀어달라는 말은 고사하고, ‘인권자라도 입에 올린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쯤되면 고은의 저항은 대단히 편의적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고은을 저항시인으로 미화하고 싶은 사람들은 아마 19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당시 수의(囚衣)을 입고 군사법정에 선 그의 모습만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모습도 있다. 20006, 평양에서 김대중과 김정일 사이에 서서 황홀경에 빠진 듯한 얼굴로 와인잔을 높이 든 모습이 그것이다. 그가 진정한 저항시인이라면, 그 자리에서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 옥반가효만성고(玉盤佳肴萬姓膏)를 읊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고은은 그 자리에서도, 그 이후에도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한 적이 없다. 오히려 기회만 되면 북한으로 가서 북한의 작가들(사실상 북한체제의 선동일꾼들)과 어울려 통일을 노래한다. 그가 노래하는 통일은 어떤 통일일까? 북한체제의 악마성에 대해 눈을 감는 그가 올바른 통일을 노래할 수 있을까?

고은의 이야기를 길게 하는 건, 제발 금년부터라도 노벨문학상의 계절 10월에 그의 이름, 그리고 그의 수상 탈락을 아쉬워하는 뉴스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대신 노벨문학상을 꼭 받았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 북한의 지하작가 반디가 바로 그 사람이다. ‘반디는 북한의 공인(公認) 작가 단체인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소속인 소설가이다. 그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을 지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배고픔과 체제 모순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목격하고 체제 고발을 위한 펜을 들기 시작했다. 북한 주민들이 실제 겪고 있는 고통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아픈 사연들을 수집하여 작품에 녹였다. 그의 작품원고는 비밀리에 북한에서 외부로 반출되어 2014년 한국으로 반입되었다.

그의 소설은 조갑제닷컴에서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와서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작품을 출판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북한에 살고 있는 작가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폭압적이고 반민주적인 체제를 고발하는 작품을 출판한 것은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류근일 전 주필은 고발아우슈비츠+굴라그(소련 수용소군도)+조지오웰의 1984에 비견했다. 수용소군도에서 굴라그에서의 인권유린을 고발했던 안드레이 솔제니친은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들도 서방세계로 몰래 반출되어 출간된 것이었다. 노벨상위원회는 1958년에는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파스테르나크는 소련 당국의 압력 때문에 수상을 거부했다). 이를 통해 노벨상위원회는 전체주의의 억압 속에서 인간을 노래하는 작가들에게 무언(無言)의 격려를 했던 셈이다.

남정욱 숭실대 문창과 겸임교수는 노벨문학상은 억압과 가난,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나라에서 많이 나왔다면서 이제 노벨문학상이 나올 곳은 북한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노벨문학상은 정치적인 賞은 아니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이 북한의 인권유린에 철저히 침묵하고, 히틀러보다 더 악랄한 독재자와 와인잔을 기울이는 시인에게 주어진다면, 그건 노벨상위원회에게는 둘도 없는 수치가 될 것이다. 그보다는 노벨상위원회가 고발의 반디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기를 바란다. 파스테르나크나 솔제니친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것은 노벨상위원회가 희대의 독재자 김정일과 야합한 김대중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던 잘못에 대한 사과도 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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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꽃이 피는 지옥'-북한체제의 深淵을 드러낸 문학의 승리이자 인간 존재의 증명서 

 趙甲濟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는 大兄이 다스리는 나라의 사상 경찰관 오브라이언이 양심을 지키려는 윈스턴 스미스를 審問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브라이언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大兄을 사랑해야 한다. 그에게 복종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북한사람들이 바로 그런 처지에 있다. 김일성 독재가 스탈린, 히틀러, 모택동 독재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북한사람들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게 복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를 무서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학살자를 사랑해야 한다. 고통을 받아도 웃어야 한다. 그래서 북한은 '웃음꽃이 피는 지옥'이다. 인간의 感性을 통제하는 데 성공한 북한정권은 인류역사상 최고 수준의 독재체제이다. '1984'라는 소설에서나 空想으로 그려졌던 그런 독재가 북한 땅에서 현실이 된 것이다.

公的 생활만 통제하는 독재, 私的 생활까지 통제하는 전체주의를 넘어 인간의 감정까지 조종하는 김일성 식, 1984 식 감성 독재가 북한정권의 본질이다. '반디'라는 筆名의 북한 작가가 밀반출시켜 조갑제닷컴에서 출판한 소설 '고발'이 처음으로 북한의 深淵으로 들어가 감성 독재의 본질을 드러냈다. 어떤 학자나 기자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인간 탐구를 주제로 하는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위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노벨문학상 감이 충분하다. 목숨을 건 문학적 고발이기에. 북한에서 아직도 이런 비판정신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게 경이롭기만 하다. 그 어떤 악마적 독재자도 말살할 수 없는 인간의 知性과 양심의 자기 존재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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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自感

‘무대’는 제목대로 북한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연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연극의 본질을 보여준다. ‘무대자감’이란 생소한 단어가 등장한다. 북한에서 나온 ‘조선말 대사전’을 찾아보았다.
<자감(自感): 배우가 인물의 사상감정과 주어진 정황을 그대로 믿고 느낌으로써 役인물의 생활 속에 스스로 깊이 잠기는 것, 또는 그러한 창조적 상태.>
북한인들의 ‘무대자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살자인 김일성을 자애로운 ‘어버이 수령’ 役으로 설정한 연극 무대에서는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實演’해야 한다는 점이다. 연극만으로는 부족하다. 役과 일체를 이뤄야 한다. 연극의 생활화를 넘어서 내면화 단계로까지 가야 한다. 이런 自感이 되려면 김일성을 정말로 사랑해야 한다.
‘무대’의 주인공은 연합기업소에 주재하는 보위부원 홍영표이다. 그는 반항기가 있는 아들(경훈) 때문에 속이 상해 있다. 아들이 하필이면 반동 집안의 딸인 숙이를 사랑한다. 숙이의 아버지는 정치범 수용소에 가 있다. 때는 1994년 7월 김일성이 죽은 직후이다. 북한 주민들은 곳곳에 설치된 弔意場(조의장)에 매일 몰려가서 통곡한다. 홍영표는 기업소의 조의장에 몰린 조문객들 사이로 들어가 누가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는지를 조사한다.
<막상 단위에 꽃송이를 놓고 “어버이 수령님!”하며 묵도를 시작하는 큰 숙이 어머니와 마주 하는 순간 홍영표는 불시에 등이 으쓸해졌다. 정말 그녀의 두 볼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녕 그것이야말로 홍영표가 지금껏 생각해본 일도 없었고, 설사 생각해 보았댔자 믿을 수도 없었을 몸서리나는 광경이었다.>
홍영표는 남편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 갔으니 숙이 어머니는 형식적으로 조의를 표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숙이 어머니는 ‘무대자감’에 충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령 큰 숙이 어미 같은 사람도 ‘어버이 수령님!’하는 슬픈 소리나 꺼이꺼이 대는 울음소리는 지어낼 수가 있다고 하자. 그러나 눈물까지야 어떻게 나올 수가 있는가 말이다.>
이어지는 아들과의 想像(상상) 대화가 이 단편집의 名장면이고 북한체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게 바로 무대자감이라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 그 자감이라는 거면 큰 숙이 에미가 눈물까지도 흘릴 수가 있지. 허나 그건 배우들에게만 있는 거야.”
“그럼 그가 배우라는 걸 아직도 모른단 말이요? 그 여자도 자감 연습극 <아프다 하하하>, <간지럽다 엉엉>의 45년생이라는 걸 아직두 모르는가 말이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매서운 눈들과 귀들과 주먹들로 그에게 45년간이나 직접 훈련을 시켜오고도 모른다니 말이 됩니까?”
홍영표는 이 끔직한 ‘수령극’에서 감시자 역할을 해온 자신이 그 구미호 같은 숙이 어머니를 만들어낸 장본인이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자감 연극은 성공했지만 홍영표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의욕을 잃는다. 아니 의미를 잃는다.
<한방의 권총 소리가 7월의 밤대(밤대기, 밤공기)를 찢었다. 자감극의 사나운 감독이자 그 역시 그 극의 일개 명배우였던 홍영표는 동업자들보다 한 발짝 앞서 자기 연극무대의 막을 내렸던 것이다.>
체제유지의 첨병이었던 보위원의 자살은 체제의 자살을 상징한다.

'아프다 하하하'

일곱 편의 단편에 연극이 소재로 자주 나오는 것은 북한 체제의 중요한 작동 원리가 연극이기 때문이다. 어버이 수령님과 인민은 지상 최대의 연극을 연기하듯이 살아간다. 평양은 그 중심 무대이다. 종국엔 연기와 삶이 일체화된다. ‘무대자감’인 것이다.
연극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연극은 <아프다 하하하>, <간지럽다 엉엉>이다. 아파도 웃어야 하고, 간지러워도 울어야 한다. 보통 독재자는 公的 생활을 통제한다. 전체주의 독재자는 인간의 私생활까지 통제한다. 김일성 같은 ‘自感 독재자’는 인간의 감정까지 통제한다. 전체주의 독재보다 더 심한 것이 이런 감성독재이다. 반디는 김일성이야말로 스탈린과 히틀러를 능가한 최악의 감성 독재자였음을 고발한다.
‘복마전’은 길을 가다가 우연히 김일성을 만난 할머니가 수령님의 자애로움을 선전하는 자료로 이용되는 과정을 소재로 삼았다. 할머니가 김일성이 내어준 자동차를 타고 歸家하는 사이에 영감(남편)과 손녀는 기차역에서 기다리다가 몰린 승객들 사이에서 압사당할 뻔한다. 두 사람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실려와 집에 누워 있는데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선 연일 수령의 미담 선전 방송이 계속된다. 할머니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선전방송에 시달린다. 영감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화도 난다.
<양쪽 손톱을 동시에 뽑히는 듯한 고통을 당한 오 씨를 선창자로 하는 ‘행복의 웃음’ 소리!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을까? 그 어떤 잔학한 마술의 힘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뭇사람들의 고통의 울부짖음을 ‘행복의 웃음’으로 둔갑시킬 수가 있단 말인가.>
반디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오늘까지 바로 그 마귀의 마술 속에서 진실과는 판이한, 완전히 전도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적었다. 아파도 “하하하”라고 웃을 수밖에 없는 북한은 늘 '웃음꽃이 피는 지옥'이다. 아파도 웃어야 하는 拷問(고문)이야말로 가장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복마전’은 맞아도 “아프다”고 할 자유가 말살된 체제의 정곡을 찌른 寓話(우화) 같은 작품이다.


기사본문 이미지



북녘 땅 50년을
말하는 기계로,
멍에 쓴 인간으로 살며

재능이 아니라
의분(義憤)으로,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

사막처럼 메마르고
초원(草原)처럼 거칠어도
병인(病人)처럼 초라하고
석기(石器)처럼 미숙해도
독자여!
삼가 읽어 다오


['北에서 보내온 소설'을 읽고] 피눈물에 뼈로 적은 고발장


 

[ 2015-06-28, 21: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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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bong   2015-07-03 오전 9:59
마등군. 자네 중국인인가? 마등이 말등어리라고 읽으면 되겠나? 아니면 말에서 떨어진 자로 읽어야 하는가? 남들이 오해할 이름 부친 자네에게 문제가 있지 해석하는 사람에게 잘못이 있는 건 아니네.
내글만 지웠으면 나는 이-메일로 항의 하지 아래처럼 쓰지는 않았다네. 왜냐하면 이 위에 댓글달기 라는 항에 분명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가 있네. 자네는 눈도 없는가?
조갑제를 하느님으로 뫼시는 자네와 나는 사람이 다르네.
나는 말일새. 벌어 먹자고 여기 댓글 다는 것 아닐세. 정직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은 걸 참을 수 없어 바른 짓 바른 말 아닌것은 때려치우라는 것 뿐이라네.
반디가 쓴 고발도, 고은이가 씹어댄 개지랄도 노밸상 다 필요없는 것일새. 모르겠는가? 반디가 노밸상 타려고 그 글 쓴 것 같은가? 그리고 설사 노밸상 위원회가 그 글 보고 상을 준다해도 거절해야 하네. 김대중에게 평화상 준 놈들로부터 받는 상도 상으로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네도 인생 종치는게 맞을 것일새.
이 참에 내 소개 함새. 나 이 세상 의학으로는 아직은 원인도 모르고 치료방법도 없고 처방약도 없는 불치희귀병 둘을 한꺼번에 앓고있는 82세의 얼간이라서 죽는 것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통증이라도 덜하게 빨리 죽었으면 하는 놈일세.
그래서 이 나라 내 자손들이 살아야 할 나라가 조금이라도 정의롭게 되기만을 바란다네.
그나마 조갑제가 바른 소리를 잘 하기에 진짜로 잘 하라는 것이네.
지금 이대로 통일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마등 당신이 생각있는 사람인 것은 맞는데 정의감은 좀 약한듯 해서 안타깝소.
  馬登   2015-07-01 오후 6:53
<정답과 오답>이란 자가 한참동안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들다,, 요즘은 정신차렸는지 조용해서 볼 만했는데. . 또 무슨 我執스런 긴 문장으로 황제니 부처니 하나님이니 하면서 참 쓸데 없는 시비를 다 거나이다. 저야 괜찮소만 여러사람 보시기에 편하게 할 수은 없겠소이까. 불경을 사서삼경을 그리고 뭐 그리 대단한 경서라도 통달한 사람모양 그리도 삐질정도로 그러시는지.... 그렇다면 사과하리다. 마등을 등마로 해석하시는 걸 보니 우리 식 한문을 쓰시라고 권해드립니다. 토씨까지 중국글자 쓸건 없잖소이까. 조갑제 닷컴이 지봉선생글을 지웠다면, , , ,오죽하면 그랬겠소 ? 똥을 달리 부른다고 좋은 표현은 아니외다.
하이간,
어제 밥, 반디의 고발을 배달 받고 첫 두 단편을 읽어 보았는데... 와아... 순 우리말 그것도 북한 말로 그렇게 잘 써서 1990년 이전에 북한체제를 묘사한걸 보니, 갑자기 민족의 동질성이 없어지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먼저 듭디다. 북한은 동일한 언어를 쓰지만, 이미 민족이 달라지고 국가도 달라져 버린 지금의 남북한으로 여겨 지더이다.마치 미국과 영국 호주가 영어를 공유하나 나라와 민족이 다르듯히 말이외다. "우리민족 끼리"가 어디 개뼈같은 소리이까. 이 세대가 가기 전에 통일이 안되다면, 통일이 된들 대한민국은 엄청난 혼란을 겪은 일국가 이체제의 나라가 될 것이 걱정이외다.
지봉선생, 너무 그러지 마시지요. 할 일이 태산 같은데....미안하오.
  jibong   2015-07-01 오전 7:50
나는 욕한 적 없다. 하룻밤 자고 깨니 내가 쓴 댓글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댓글들이 싸그리 삭제된 조갑제 황제 닷컴을 봤기에 그 독재를 찬양하고 그 제국을 영원하라고 했다.
가장 민주적이고 자유주의인 척 하면서 해대는 이런 짓거리를 비판도 비난도 하지 않고 조갑제 황제 선생님 해야만 대한민국인가?
馬登씨 말타고 있으면 모든 사람이 네 아래로 보이시요. 아니면 조갑제가 제 글만 글이고 남의 글은 싹 다 지맘대로 지워도 되는 하느님이요 부처님이요. 사람의 글이란 정신의 소산인데 당신은 당신이 쓴 글이 아침마다 뒤로 내놓는 그것으로 쓴 것이니 남이 싹 지워도 고마운 건가요? 조갑제 이 사람이 한 짓이 아니라 기계조작의 잘못된 결과일 수도 있기는 할 것이오. 그렇다면 사과문이라도 써야 하는 게 닷컴 대표가 할 일 아니오? 그래야 자신의 이름으로 내는 닷컴의 대표다운 인간이잖소. 황제가 아닌 사람 말이오.
나는 이 조갑제씨가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 뿐이오.
하너리씨. 댁의 조상님들 뫼시는 사당이 있거든 조상님들 위패 다 치우더러도 조갑제 선생 뫼시고 아침 저녁 배례 드리고 사시요. 그 분 저 세상 가실일 없으시겠소이다. 만수무강? 진시황도 죽었다네. 자네 부모는 빨리 가시더라도 조갑제 황제만은 만수무강 하셔야지 맞네.
  하너리   2015-07-01 오전 4:43
양심을 도둑맞은 년놈이 싸질른 자식이 고은인가 했더니
지봉이란 놈은 어떤 자식인가?
조갑제 선생 개의치 마시고 만수무강 건필 축원합니다.
  自由韓國   2015-07-01 오전 1:41
오늘 고발을 구입했습니다..나중에 조갑제닷컴을 통해서 가급적 많이 구매해야겠습니다 노벨상을 꼭 받기를 기원합니다~
  馬登   2015-07-01 오전 12:47
무슨 댓글이 이 따윈가 ? 심한 욕보다 더하네. 뭘 좀 안다고 교만시럽더니...좀 순하게 해도 될 일을...
  jibong   2015-06-30 오후 4:50
대한제국이 부활했다. 황제는 그 성이 조씨다.
그 어느 신문이나 언론일지라도 대한민국의 언론들은 댓글로 표현하는 독자들의 의사는 설혹 그 언론자체를 비판하더라도 싣는데, 새로운 황제 언론 조갑제 닷컴은 싸그리 삭제했다. 조갑제 황제폐하! 한 5백년은 이 나라 언론을 다스려 주옵소서.
개보다 못한 국민들이 거룩하신 기사들을 비판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모쪼록 죽지는 마시고 우주가 끝나는 날까지 사시면서 언론을 지배해 주시옵고 못난 등신 국민들은 입닫고 살도록 해 주시옵소서. 조갑제 제국 만세 만세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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