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의 국경이 설치된 광화문에서
나는 역사에 기록될 순간의 참여자였고 목격자였다.

정운영(대전 거주 시민)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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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태극기 집회에 참가하려고 서울역에 도착하였다. 오후 1시45분이다. 2월 둘째 주부터 매주 토요일, 대전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와 서울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일주일 전 열차표를 사놓는다. 3월1일 열차표는 2주 전에 사놓았다.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역 밖으로 나가자 그곳에도 집회가 있었다. 종교집회로 보였지만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까? 3·1절 집회 바로 전 토요일 태극기 집회 때 정광용 대변인은 “3·1절에는 광화문부터 서울역까지 태극기 물결로 채워질 것”이라고 말했었다. 설렘이 있었다. 서울역 구 역사 앞을 지나 지하도를 통과하여 농협 앞을 지나 숭례문 방향으로 걸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같은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 이름 모르고 어디서 오는지 모르지만 동지들이구나.

음악소리, 연설하는 소리가 들린다. 흥겨워진다. 숭례문부터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전광판 앞으로 갔다. 행사가 시작되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불렀다. 나는 생애를 통하여 애국가를 부를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전광판을 보고 반주에 맞춰 힘차게 따라 부르고 나니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3·1절노래도 제창되었다. 개회사가 있고 음악과 연사들의 연설이 교대로 진행되었다. 구호가 나올 때는 힘차게 구호를 따라 외쳤다. 커다란 외침이 길게 메아리쳐 다시 내 귀에 들어온다. 진한 감동이 느껴진다. 아는 노래가 나오면 태극기를 흔들며 따라 불렀다.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춤추는 여성도 있었다.

전광판을 보니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내가 거대한 인파의 남쪽 끝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평우 변호사가 연단에 오르자 ‘김평우’를 연호하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분의 인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의 연설은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김진태 의원이 연단에 올랐을 때도 청중들은 ‘김진태’를 연호했다. 김 의원은 “내 이름은 부르지 마세요”라고 했다. 겸손을 표하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인파의 북쪽 끝까지 가보고 싶어 사람들 틈을 비집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쉽지 않았지만 천천히 옮겨 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지난 토요일에는 어렵지 않게 연사들 얼굴이 보이는 연단 근처까지 갈 수 있었는데, 오늘은 땀이 다 난다. 어디에 연단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긴 시간 고생 후에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경찰 버스로 통행을 막아놓았다. 저 너머는 ‘촛불의 영역’이라고 어느 분이 설명해 주었다. 버스 너머로 스피커 소리가 들려왔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도 보였다. 그러나 태극기를 든 사람은 그곳에 가지 못한단다. 이념의 국경이 설치되었는가?

도로변에 사람들이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나도 같이 앉아서 잠시 쉬기로 했다. 한 사람이 “이번에 대통령이 탄핵되면 내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하자, “싸우게 되면 싸워야지. 나도 아직은 총을 쏠 수 있어”라고 옆 사람이 대답했다. 나보다 좀 더 나이가 들어보였다. 나도 총을 쏠 수 있을까? 꼭 그래야만 한다면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힘이 솟는 기분이다. 다시 일어서 연설도 들으며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7시 열차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출출함이 느껴졌다. 군데군데 여러 가지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군밤을 한 봉지 샀다. 물기가 없어 가방에 넣고 이동하며 먹기 좋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오늘은 행진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거대한 인파를 어떻게 행진으로 이끌 수 있단 말인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준비해온 작은 우산을 꺼냈다.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쳤다. 숭례문 쪽에서 행진이 있다는 방송이 들려왔다. 나는 서울역에 가야하므로 그 행진을 따라가기로 했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도 하며 행진을 따라가다 서울역 근처에서 대열에서 떨어졌다. 도로 옆에 서서 한동안 태극기를 흔들며 행렬을 배웅했다. “수고들 하세요. 끝까지 같이 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열차에 타기 전에 옷을 말릴 필요가 있어 역사로 들어갔다. 깊은 피로가 느껴졌지만 행복감도 있었다.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단 말인가?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나는 참여자였고 목격자였다. 두 아들과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하나뿐인, 멀리서 살고 있는, 그래서 더 보고 싶은 손녀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 2017-03-06, 15:4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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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idn   2017-03-06 오후 10:26
수고하십니다, 운영 선생.
  서울보수   2017-03-06 오후 6:04
매주 고생하십니다. 삼일절 이후 개최된 지난토요일에도 엄청난 태극기 물결에 정말 감동하였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11번을 참여해보지만, 항상 참여인원이 늘어만 간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히 민심이 아닌가? 탄핵은 반드시 각하나 기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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