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론서(辯論書)-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이 사건은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사법부를 이용해서 정적(政敵)을 탄압하는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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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재판장님께
  
  법정에서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들어주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기록 속에서 와글거리는 수많은 거짓말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걸로 압니다. 겸손한 자세로 법의 권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재판장님의 태도는 이 시대 사법부의 모범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석판사님께서 재판 도중에 “대통령과 국정원장은 초법적인 존재였습니까?”라는 면도날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바로 그 한 마디가 이 사건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제 촛불혁명의 물결이 방파제를 넘어 법원 안에 넘치고 있습니다. 모든 혁명의 마지막은 법의 형식을 빌려 법원에서 끝이 나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이 법정의 판결 역시 혁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판결만은 초법적으로 나지 말았으면 하는 게 변호사인 저의 소망입니다.
  
  개인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오랜 세월 변호사생활을 해 왔습니다. 가물가물한 기억의 저 편에 있는 30년 전의 한 스산한 법정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민주화 투쟁을 하던 사람들이 법정에서 눈꺼풀이 덮이고 귀가 막힌 판사들을 향해 고무신을 벗어 던지는 장면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외면하는 사법부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그냥 보면 알 수 있는 진실을 당시의 법관들은 왜 외면을 했을까요. 아마도 권력의 눈치를 봐야하는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당시 피고인이 되어 법정에서 정치 판사를 향해 소리치던 사람들이 지금 이 나라를 움직이는 핵심세력이 되었습니다. 사법부 역시 개혁을 추구하는 판사들로 포진이 되어 시대의 바람에 돛을 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적폐청산의 깃발이 휘날리면서 지난 정권의 대통령들과 국정원장들이 악의 상징이 되어 시대적 책임을 지고 법정에 섰습니다. 대중이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법원이 그들에게 중형을 선고하면 분노한 대중은 시원한 쾌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저는 시대변화에 따라 카멜레온 같이 색깔이 변하는 사법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전두환 정권시절 법원은 광주에서 시위하던 시민들을 폭도라고 했습니다. 정권이 바뀌자 사법부는 그 시민들을 민주화운동을 한 의로운 분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시대가 변하자 사법부는 광주에 모였던 분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헌법기관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법의 해석이 극에서 극으로 치달았을까요? 저는 사법부가 시대의 돛이 되지 말고 닻이 됐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저는 이 사건의 본질을 정치라고 봅니다.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정권은 적폐청산의 차원에서 특활비 문제를 꺼냈습니다. 국민의 혈세를 비밀예산 창고에 넣어두고 나누어 먹어왔던 데 대해 정의의 칼을 빼 들었습니다. 명분만으로는 대중의 속을 후련하게 할 수 없습니다. 제단에 올릴 속죄양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국민의 혈세인 특활비를 대통령, 국정원장, 국회의원, 대법관들과 고위 공직자들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나누어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부패의 관행을 양지에 올렸다면 그 희생의 피가 필요한 것입니다.
  
  검찰은 적폐의 원인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정권의 국정원장들을 법의 제단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들에게 적용할 법이 마땅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검찰은 국정원장들을 회계관계 직원으로 간주해 국고손실범으로 만들고 대통령에게 그 돈이 간 것을 뇌물상납죄로 기소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장 관직을 돈을 받고 팔았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정원장을 죽여도 참 더럽게 죽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심법원은 국정원장을 회계실무 공무원으로 간주해 유죄판결을 선고했습니다. 예산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궁색한 논리가 판결문에서 보였습니다.
  
  국정원은 규정에 의해 예산 및 회계업무를 기조실장에게 위임하고 각 부서는 구체적인 예산의 사용을 독자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장의 특별 사업비의 담당자는 회계책임자인 기조실장과 그 아래 회계직원입니다. ‘회계관계 직원 등의 책임에 관한 법률’은 법의 이름 자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회계실무자들의 책임을 묻기 위한 특별법입니다. 법 규정을 보면 현금출납 공무원, 계약관, 유가증권취급 공무원 물품관리관 등 구체적인 업무와 신분을 가진 사람만이 회계관계 직원으로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국정원장이 그런 공무원이라는 것입니다.
  
  결정적 증인인 국정원 기조실장에 대해 불법조사를 하고 그의 약점을 잡아 영혼이 없는 로봇을 만든 행위나 돈 몇 푼을 받은 비서관들을 잡아 범죄 사실을 만든 이면이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고 봅니다. 기록을 그냥 그대로 보아도 행간에서 그런 사실들이 보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간과한 법관들도 언젠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촛불혁명과 적폐청산의 명분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법원이 국정원장을 회계직원으로 간주해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은 법의 왜곡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해석이라면 각 부처 장관들도 대법관도 검찰총장도 예산회계 공무원이 되고 찍히는 사람은 모두 감옥으로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법의 여신이 든 칼이 녹슬고 저울이 기울면 정의는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잠시 법의 왜곡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독일은 법관이나 검사가 재판이나 수사 중인 사건을 처리하면서 법을 왜곡해 당사자 일방을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만든 경우 징역형에 처하도록 형법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검사나 판사가 어떤 행위를 해도 면죄를 받는 그런 풍토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국회에도 법을 왜곡한 판검사도 공소시효 없이 책임을 지우자는 형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 법안이 올라왔을까요. 정권이 변할 때마다 권력의 개가 되거나 정치의 도구가 되는 판검사를 견제하려는 입법취지인 것 같습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을 검찰과 법원은 왜 다르게 보고 있을까요? 보통사람들에게 국정원장이 회계실무자라고 하면 납득할까요? 또 공무원들에게 물으면 그렇게 인정할까요?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검찰과 원심법원만 그렇게 보았습니다. 그건 목적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현실을 보고 법을 왜곡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이 제도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를 말합니다. 우리는 그걸 법치주의라고 합니다. 아무리 시대정신과 대의와 명분이 있어도 방법이 졸렬하고 법을 왜곡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게 법률가가 지켜야 할 마지막 양심이 아닐까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국정원장이 회계실무를 하는 공무원으로 보이십니까?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원들 격려금을 준 그 돈의 근원이 뇌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치를 혐오하고 국정원 직원들 개인까지 단속하던 이병호 원장이 정치와 관련된 여론조사 비용을 댔다고 생각하십니까? 한시적인 이 법정은 곧 끝이 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진실은 이깁니다. 그때가 되면 이 사건을 재판했던 판사들이 오히려 법을 왜곡한 죄인이 되어 법정에 설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MBC의 광우병 허위보도로 서울시청 앞에 백만 명 가까운 시위대가 모였을 때입니다. 청년 한 명이 “미국산 소고기를 먹어도 광우병 안 걸려요.”라고 외쳤습니다. 모두들 그 청년을 욕하고 침을 뱉었습니다. 선동된 다수가 그렇다면 그런 것으로 알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변호사인 저는 당시 MBC 피디수첩 팀의 허위를 조사해 달라고 고소했습니다. 엄청난 증오를 담은 댓글이 날아왔습니다. ‘보수꼴통’이라는 탈이 얼굴에 강제로 씌워졌습니다. 판사는 허위를 진실로 바꾼 사상판결을 내렸습니다. 정치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 광우병에 걸린 국민은 없었고 진실앞에 모두들 침묵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기피 문제로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을 때입니다. 내가 아는 박 시장의 아들은 병역기피가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대학병원에 이백 명의 기자들을 동원하고 그 앞에서 공개 신체검진을 하게 했습니다. 저에게 ‘좌빨’이라는 딱지와 함께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법원은 그 사건을 십년이 가까운 지금도 끝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좌우로 이분법적으로 쪽을 가르는 시대적 상황에서 저의 이념을 말하라고 하면 개개인이 자유롭고 귀한 존재로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데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법이 권력의 도구가 되지 않고 억울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런 따뜻한 법치주의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념을 통해 사실을 만들어 내지 않고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몇 년 전 문재인 변호사와 둘이서 그의 사무실에서 개인적으로 점심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앉은 탁자 위에는 김밥 한 줄과 과자가 커피 받침잔에 놓여있었습니다. 제가 장차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어요? 대통령이 되면 진짜 하고 싶은 게 뭡니까? 그럴듯한 공약이나 관념적인 구호 말고 진짜 속에 들어있는 한 마디를 해 봐요”
  
  대통령 그 자체가 되고 싶은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깊은 소명의식이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는 잠시 침묵하며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검찰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이루고 싶어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의 배경에 있는 검찰에 대해 한이 서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검찰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의 국정원장들을 파렴치범으로 만들었습니다. 검찰이 정말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칼을 뽑은 것인지 아니면 또 권력의 도구가 되어 법을 유린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지난 30여 년간 작은 법률사무소를 혼자 해 왔습니다. 나이를 먹은 지금은 평생을 생업으로 삼던 변호사업을 접으려고 순간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인생 역시 작은 울림이더라도 바른 소리를 외쳐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이 사건 역시 단순한 직업적 차원에서 의뢰를 받고 일을 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인생길에서 우연히 피고인 이병호와 잠시 이웃이고 같은 교인이었습니다. 정년퇴직을 하고 무기력한 노인이 된 그가 사기당한 걸 도와주면서 그의 성품을 알게 됐습니다. 30년이 넘게 세상이 욕하는 권력기관의 간부로 있었으면서 집 한 채와 퇴직금이 전부면 청빈하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변호사 비용을 낼 능력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국정원장을 마친 지금도 그의 재산은 그 당시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의 늙은 아내는 이 판결로 인해 생활의 근거인 연금이 끊어질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제 속에 있는 어떤 존재가 감옥에 있는 이병호를 도우라고 하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평생을 국가안보를 위해 일을 해 오고 수많은 국민을 굶겨 죽인 북의 독재자와 싸운 그는 죄인이 아니라 이 사회의 숨은 영웅입니다. 다만 세상이 아직 그를 볼 눈이 없을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사건은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사법부를 이용해서 정적을 탄압하는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로워야 할 법을 모략적으로 적용하고 그 정도가 왜곡까지 갔습니다. 법원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을 사법부에 맡기는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정치를 법치로 바꾸어야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주의의 사법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명한 판단을 구합니다.
  
  
  
[ 2019-03-04, 17: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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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19-03-04 오후 9:12
가히 명 문이군요
딱 하나 옥의 티인지 판사에게 아첨 하는건지 모르나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란 문구가 걸리는거 같습니다

더군다나 재판장이 무슨 판결을 할건지 누구나 알고 있는데
과연 존경받을만 한 판결이 나올까?
웬지 판결후 즉시 존경하는 재판장이 아니라

권력에 아부하여 소신도 비위장도 없는 장치적인 판결로
멸시해야 하는 저급한 인간으로 미래 예단을 해도 될듯 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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