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한 마음의 대가
“주위에 알아보니까 변호사의 돈은 좀 받아써도 된답디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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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십 년이 넘게 징역을 살면서 처절한 고통을 당한 범죄인이 있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좁은 방에서 가죽 수갑과 허리띠에 묶인 채 엎드려 개같이 앞에 놓인 밥그릇에서 밥을 핥아 먹어야 했다. 언론의 눈길이 가지 않는 그늘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에 대해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를 하기도 하고 책을 만들어 세상에 알리기도 해 왔다. 그 사건이 사회에 반짝 관심을 끌었다.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한번 내겠다는 제의가 왔다. 그들 생각으로 속칭 히트 칠 물건이 될 것 같았던 모양이다.
  
  어느 날 땅거미가 내리는 어스름한 무렵 두 명의 출판사 사장이 동시에 나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한 사람은 책을 발간하면 바로 히트를 치는 유명 출판사의 사장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처음 듣는 출판사의 사장이었다. 초라한 옷차림의 사십대 중반쯤의 이름 없는 출판사를 한다는 남자가 내게 말했다.
  
  “저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운동권 출신입니다. 혼자서 작은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책 발간을 맡겨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의 짧은 말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때 옆에 있던 유명 출판사의 사장이 그에게 제의했다.
  “제가 3000만 원을 드릴 테니까 발을 빼슈.”
  
  그들끼리의 흥정이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출판권을 따내기 위해 그 정도 돈을 던질 정도로 내 원고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내 마음의 채널이 가난해 보이는 출판사 쪽으로 옮겨갔다. 약해 보이는 자에 대한 연민이었다. 동시에 운동권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얼마간 마음의 빚들을 지고 있는 것이다.
  
  편집하는 과정을 보기 위해 안국동에 있는 출판사를 가 보았다. 낡은 건물의 귀퉁이에 있는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둠침침한 사무실이었다. 녹슨 철 책상 몇 개와 그 위에 놓인 구형 컴퓨터가 전부였다. 가난의 냄새가 풍겼다. 나는 이따금씩 그 출판사를 찾아가 격려하는 마음으로 근처 식당에 함께 가서 밥을 사기도 했다. 그곳에서 편집을 하는 여성은 사장의 부인이었다. 어떤 때는 딸도 사무실에 나와 있었다. 엄마 옆에 있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상하게 사장의 아내의 나를 보는 눈은 원인 모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의 모습도 밝지가 않았다.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어떤 존재가 뭔가를 암시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그 출판사 사장이 찾아와 내게 말했다.
  
  “책의 제작비가 너무 없어서 그럽니다. 삼천만 원만 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종이값이나 인쇄비를 대충 따지면 그 십분의 일인 삼백만 원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그 사장이 변호사라는 포장을 보고 나를 너무 쉽게 대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돈은 지금 제게 없습니다.”
  내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면 다는 아니더라도 얼마라도 꿔주시면.”
  사장은 의외로 집요했다. 나는 이미 한발을 들여놓은 셈이었다. 그것마저 거절하기는 어려워 얼마의 돈을 꿔주었다. 그 얼마 후 책이 나왔다. 유명세를 탄 범죄인이라 그런지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그 책이 놓여 있었다. 며칠 사이에 두 번째 인쇄된 책이 서점의 서가에 놓여 있었다. 내가 그 출판사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물어보았다.
  
  “책이 얼마나 팔렸습니까?”
  “에이, 얼마 팔리지 않았어요. 만 권밖에 안 나갔어요.”
  
  내 주제로 그리고 나의 잣대로 그 정도면 많이 팔렸다. 인세를 준다는 소리도 없었고 모든 게 불투명했다.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 말했다.
  
  “전에 꿔 간 돈을 돌려주시죠.”
  그에게는 책 만권이 팔려나간 상당액의 돈이 들어왔을 게 틀림없었다.
  
  “지금 돈이 없는데 기다리시죠.”
  그의 대답이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는 갚을 생각이 전혀 없는 표정이었다. 그에 대해 뒤늦지만 다시 알아보았다. 그가 서울대를 나온 운동권 출신이라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소리가 있었다. 그의 명의로 되어 있는 재산은 아무것도 없었다. 법이 당해내기 힘든 그런 부류였다. 선을 악으로 갚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확인해야 섭섭함을 없애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물었다.
  
  “제 나름으로는 더 좋은 선택이 있는데도 이쪽에서 책을 내기로 했는데 왜 선한 마음에 이렇게 상처를 주십니까?”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이렇게 본색을 드러냈다.
  “주위에 알아보니까 변호사의 돈은 좀 받아써도 된답디다.”
  
  그를 통해 나의 바보 같은 모습이 거울같이 비치고 있었다. 어리석고 멍청해 보이는 외모로 변호사를 하다 보면 사회라는 졍글에 사는 여러 포식자의 사냥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는 오랫동안 굶주린 늑대인지도 몰랐다. 두려움과 불안해 보이는 그의 아내와 자식의 표정에서 나는 그의 굶주림을 직감했다. 차라리 나중에 갚겠다고 적당히 거짓말을 해 주는 편이 훨씬 내 마음을 다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살다 보면 선한 마음을 역이용하고 영리하지 못한 걸 비웃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런 작은 환난을 만나면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하나님인 성령에게 물어본다.
  
  ‘이게 뭡니까?’ ‘.....’
  
  아무런 대답이 없다.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하나님은 때로는 사실로 응답을 하기도 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책을 내지 말라는 메시지 같았다. 책을 내는 동기 속에 시류에 영합하는 돈 욕심과 공명심이 오물같이 묻어 있던 걸 느낀다. 그 사장이 만든 책을 전부 달라고 해서 폐기처분하고 불쾌했던 기억은 강물에 떠내려 보내기로 했다. 집착하면 내가 악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 2019-11-03, 04:0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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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oda74   2019-11-03 오후 6:01
That serves U right!!
  이중건   2019-11-03 오전 9:21
조건적이고 상대적이긴 하지만 확율로 볼때 선진국보다 후진국에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아래분 처럼 부자가 가난 자들보다 선한 사람이 많다는 것으로도 봅니다.
작년엔가 어느기사에서 염가 항공사 고객이 가장 메너가 없고 따지더라고 - 보통정도의 수준의 항공사에서는 그러지 않는데 말입니다.
  정답과오답   2019-11-03 오전 8:59
가난한자가 선할 거라고 생각 하신듯 하군요
그러나 선한자는 부자들에게서 훨씬 많습니다
부자는 도적질 해서 부자 된다는 자들이 흔하지만
도적질 해서는 부자 될수 없는거로 저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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