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이발사의 꿈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내가 쓴 일기가 책장에 가득 꽂혀있다. 육십대 중반을 넘기면서부터 내가 쓴 일기의 유일한 독자가 되어 이따금씩 들추어 본다. 손자 손녀가 오기를 기다리는 조용한 일요일의 적막한 오전 시간 일기장을 들추다가 우연히 십일년 전 이발을 하러 갔다가 만났던 얘기가 눈에 들어왔다. 짧은 머리가 유난히 깔끔하고 단정해 보이는 친구의 소개로 그 이발소로 가게 됐다. 그 친구는 그 영감이 노무현의 이발사였다고 덧붙였다. 그의 가게는 작고 소박했다. 이발사 혼자 일하고 있었다. 내가 이발 의자에 앉았다. 콧수염을 기른 노인 이발사가 내 목에 흰 앞가리개를 채우면서 머리를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머리를 깎아줬다면서요?”
  내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예, 그 분이 대통령이 되시기 전에 제가 쭉 머리를 깎아드렸죠. 머릿발이 세고 엉망이었어요. 그걸 제가 깔끔하게 다듬어 드렸죠. 대통령이 되시더니 청와대에 들어오라고 연락이 오는 거예요. 안 갔어요. 제가 왜 갑니까? 이렇게 내 가게를 하면서 죽을 때까지 자유롭게 이 일을 하는 거죠.”
  
  짧지만 그의 말에는 깊은 철학이 담겨있었다. 대통령 이발사라는 장인(匠人)의 명예보다 그는 소박한 자기 공간에서 누리는 자유를 선택한 것이다. 그는 이발 의자 앞 선반에 가지런히 모셔져 있는 이발 도구 중에서 가위와 빗을 집어 들었다. 가위는 애정을 가지고 오래 쓴 흔적이 은은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수술을 하는 의사처럼 머리털을 한 올 한 올 꼼꼼히 자르고 있었다. 미용실이나 다른 이발소에서 보통은 전기바리캉으로 산소 벌초를 하듯이 죽죽 치는 모습이 아니었다.
  
  “꼼꼼하시네요.”
  그런 모습을 보며 내가 말했다.
  
  “이 이발이라는 건요, 머리를 단순하게 깎는 게 아닙니다. 만들어가는 거죠.”
  칠십대 노인 이발사에게서는 책이 아닌 몸으로 체득한 진리들이 녹아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이발 기술을 배우게 됐어요?”
  그 시절은 이용학원이 제대로 없을 때였다.
  
  “어려서 이발소에 취직했어요. 석탄을 때고 물길어 오는 일부터 시작했죠. 그때는 이발사들이 절대로 자기 가위나 면도칼을 만지지 못하게 했어요. 그걸 건드렸다가는 맞아 죽는 겁니다. 어깨 넘어 몰래 배워야 하는 시절이었죠. 단번에 가위를 잡지 못해요. 손님들 머리를 감겨주는 세월이 또 몇 년이 가야 하는 겁니다. 소년 시절 어쩌다 보는 영화가 최고의 낙이었는데 그때 영화를 보면 막연히 신성일 같은 영화배우가 되고도 싶었죠. 그런데 돌아와서 이발관 얼굴에 비치는 나를 보면 너무 얼굴이 아니었어요. 너무 못난 겁니다. 그 시절은 미남 아니면 배우가 아닌 걸로 알던 때였죠. 그렇다고 가난해서 이발소에서 막일을 하는 내가 공부를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아예 다른 꿈은 꾸지 않고 최고의 이발사가 되자는 결심을 굳혔어요. 내 나이 칠십이 넘었는데 아마 나만큼 많이 머리를 깎아 본 사람도 없을 거예요.”
  
  어느새 익숙한 그의 솜씨로 머리가 깔끔하고 보기 좋게 깎였다. 그가 가위와 빗을 깨끗하게 닦아서 다시 거울 앞에 이발 도구들이 열병식을 하듯 놓여있는 자리에 놓았다. 그가 예전 식으로 커다란 컵에 비누거품을 부걱부걱 만들었다. 그가 이발도구 상자 옆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길다란 붓을 손에 들었다. 화가들이 유화를 그릴 때 사용하는 붓 같아 보였다. 그가 붓에 컵에 든 면도 거품을 묻혔다. 그는 잠시 데생을 하는 화가처럼 신중한 자세를 취하더니 그림을 그리듯 뒷통수 머리선을 따라 붓을 움직여 거품을 묻혔다. 그는 평생 익혀온 매뉴얼이 있는 것 같았다.
  
  다음 공정은 선반 위에 누워있던 묵직한 무게감이 드는 오래된 면도칼을 손에 들었다. 예전에 숯돌에 날을 갈아 쓰던 그런 면도칼이었다. 일단 칼을 든 그는 뒷목 아래 지저분하게 난 잔털들을 과감하게 쓱쓱 밀어냈다. 노인이발사는 면도를 끝낸 후에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을 내 머리에 두르고는 한 번 꽉 껴안았다. 대충 이발이 끝이 났다. 노인은 마음이 통했는지 거울 옆 구석에 꽂혀 있던 스크랩북을 내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이게 내가 젊었을 때 배우를 하고 싶어서 수집해 놓았던 신문기사나 광고들이에요.”
  
  나는 스크랩북을 펼쳐 보았다. 육십년대 영화배우들이 찍힌 신문 사진과 기사들이 가득차 있었다. 노인의 이루지 못한 꿈을 알 것 같았다. 노인이 덧붙였다.
  
  “솔직히 젊어서 배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 다음은 최고의 댄서가 되고 싶었어요. 일이 끝나고 시간이 나면 열심히 춤을 배웠어요. 그건 얼굴로 판정이 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 덕에 마누라가 여러 해 전에 죽고 혼자 사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쯤은 콜라텍에 가서 스텝을 밟는다니까요. 그럴 때면 정말 행복해요.”
  
  어느 날 그 노인이 하던 이발소를 가보니까 문을 닫았다. 하나님이 이젠 편히 쉬거라 하면서 눈을 더 침침하게 해 주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아마 그가 살아있다면 아흔 살을 바라볼 게 틀림없다.
  
  어떤 일을 하든지 영혼을 쏟아 부어서 하는 일은 숭고한 게 아닐까. 일하는 바로 그 자리가 거룩한 그의 성소(聖所)일지도 모른다. 나는 일기장을 덮으며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평생 남 눈에 띄지 않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다가 그 자리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 게 아름다운 인생이 아닐까.
  
  
  
  
[ 2019-12-08, 11: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