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반장선거 공약
"내가 필요할 때 도움을 주겠다고 하니까 쓰레기 가져다 버리라고 시키는 아이도 있었어. 참고 그렇게 해 줬어.”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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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손녀가 초등학교 오학년이다. 학부형인 딸이 요즈음 초등학교의 세태를 알려주었다. 저마다 자기의 아이를 반장을 시키기 위해 스피치 학원까지 보낸다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반장선거 때가 되면 학원에서 써 준 연설문을 아이들이 앵무새같이 외친다는 것이다. 한 반이 삼십 명인데 반장을 하겠다는 후보가 열다섯 명이 나서기도 한다고 했다. 어른 정치판의 오염된 행태가 초등학교까지 스며든 것 같다. 엄마들이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서 반의 아이들에게 돌리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요일 오후 어린이 예배를 마친 외손녀가 왔다. 외손녀를 데리고 아파트 옆에 있는 고기 집으로 갔다. 양념갈비와 손녀가 좋아하는 사이다를 주문했다.
  
  “할아버지가 시킨 대로 내가 공책에 시편과 잠언을 다 썼어. 다음으로는 로마서를 쓸 거야.”
  
  나는 외손녀에게 성경을 필사하라고 권했다. 생명력 있는 영혼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성경 속의 진리가 피 속에 녹아 들어가게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생각이다. 어린 시절 내가 일찍 그렇게 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공부하기가 바쁜데 언제 성경을 쓰니?”
  내가 외손녀에게 물었다.
  
  “매일 아버지하고 같이 수학 문제를 푸느라고 보통 때는 시간이 없어. 토요일 쉴 때 성경을 써.”
  
  숯불 위의 석쇠 위에서 양념갈비가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었다. 나는 젓가락으로 고기 조각을 집어 외손녀의 앞에 놓아주고 있었다. 손녀가 갑자기 생각이 떠오른 듯 이런 말을 했다.
  
  “할아버지, 우리 반이 삼십 명인데 나 스무 표를 얻어서 반장이 됐어. 다른 아이들은 많이 얻어도 다섯 표도 안됐어.”
  
  그럴 것 같았다. 열 명이 넘게 출마하면 자기 표 하나만 달랑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외손녀는 엄청난 지지를 얻은 셈이었다. 그 원인이 궁금했다. 손녀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남들 앞에 서기보다는 뒤에 숨곤 하는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표를 얻었지? 우리 손녀가 말이야.”
  나는 대견스러운 마음으로 물었다. 손녀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스피치 학원에 다닐 필요도 없어. 잘난 체하지 않으면 돼.”
  손녀의 한 마디에서 본질을 느꼈다. 사람들의 마음은 겸손한 사람에게 흐른다. 하나님은 겸손으로 빈 그릇이라야 은혜를 가득 담아주신다. 손녀는 그걸 직관적으로 깨달은 것 같았다.
  
  “반장 후보로 어떤 공약을 내세웠지?”
  내가 다시 물었다.
  
  “내가 방에서 혼자 만들어 봤어.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친구, 진정한 친구가 되겠습니다’라고 했어.”
  어린 외손녀에게서 의외로 마음의 깊이를 느낀다.
  
  “그렇게 공약을 하고 행동은 어떻게 했나? 여자니까 남자 아이들 표는 얻기 힘들었을 텐데?”
  
  “어렵지 않아, 할아버지. 남자아이들이 농구할 때 같이 해줬어. 그러면 싫어하지 않아. 그리고 여자 아이들 중에는 내가 필요할 때 도움을 주겠다고 하니까 쓰레기 가져다 버리라고 시키는 아이도 있었어. 참고 그렇게 해 줬어.”
  
  외손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성경 속의 축적된 하나님의 에너지가 손녀가 성경을 쓰는 행위를 통해 영혼 속으로 들어간 것 같다. 진정한 인간 교육은 수천 년의 검증을 통해 내려온 성경공부에 있지 않을까.
  
[ 2020-01-09, 10: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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