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싫고 무서운 것이 있었다. 그건 고독과 가난이었다. 형제도 없이 혼자인 나는 어린 시절 텅 빈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신문사 사진기자였던 아버지는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동네에서 작은 편물점을 했던 어머니는 가게에 있었다. 어둠이 내리고 밤이 되면 나는 무서웠다. 어머니는 집에 과자를 준비해 놓고 앞집 형제들에게 밤에 와서 같이 있어 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 형제들이 와서 놀다가 과자가 떨어져 가고 나면 나는 다시 무섭고 고독했다.

외아들 증후군은 쉽게 남에게 다가가지도 못했다. 내성적인 데다가 성격이 모가 났었다. 그런 성격이 남과 어울리지 못하는 운명을 만들었다. 마음의 벽이 두꺼워 소통이 되지 못했다. 남과 사귀고 싶어도 소통의 방법을 알지 못했다. 대학 시절 유신반대 데모가 심했다. 계속되는 휴교령으로 학교는 문을 닫고 있었다. 책 보따리를 지고 강원도 태백의 골짜기에 있는 절에 묵기도 하고 눈 덮인 강가의 방갈로에서 혼자 한겨울을 나기도 했다. 군복무를 위해 몇 년간 장교 생활을 하기도 하고 공무원 생활을 해 보기도 했다.

조직 생활은 나하고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거기서 귀중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나 같은 성격은 세상에서 말하는 출세와는 거리가 멀다는 자각이었다. 남들 눈에는 순종하지 않고 거칠어 보이는 타입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 고독이 싫어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다음 무서운 것은 가난이었다. 어려서부터 처절한 가난의 모습들을 보아왔다. 그래도 고통은 느끼지 못했다. 가난에 절어 있는 사람은 가난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그게 세상인줄 알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부터 가난의 무서움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늙어서 굶어 죽을까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돈 버는 능력도 없었다. 여기저기서 돈 냄새를 맡고 재빠르게 잘 처신해야 남의 호주머니 속에 있는 돈을 꺼낼 수 있었다. 세상에서 그게 제일 힘든 일 같이 느껴졌다.

증권 한번 사 본 적이 없고 부동산에 관심을 둔 적도 없었다. 몰라서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공부하는 부지런함도 없었다. 별다른 취미나 특기가 없으니까 자투리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도스토엡스키나 톨스토이의 책들을 더러 읽었다. 누군가 문학은 패배자들이 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종이에 한 줄 한 줄 기도문을 써갔다. 그 첫 번째 기도문으로 이런 문장을 적었다.

‘하나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고독한 속에서 굶어 죽을 각오를 가지게 하옵소서. 그것만이 진정한 자유를 찾는 길인지 이제는 아나이다.’

나는 두 번째 기도문이 나오기 전까지 한동안 주문같이 그 기도문을 입에서 중얼거렸다. 늙어서 모르는 동네를 혼자 유유히 산책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마음 속으로 기원했다. 혼자 고독사를 해도 버틸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살자고 하니 문제지 죽자고 마음 먹으면 문제가 될 게 없었다. 몇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맑은 정신으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아흔 살까지 살다 보니까 고독이 가장 힘들더구나.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니? 고독해도 혼자 잘 견디다 오거라.”

함경도 출신 어머니도 어지간히 고독했다. 스무 살에 서울로 시집을 온 후 38선이 생겨 부모와 생이별을 했다.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돈에는 무능력한 남편이었다. 품팔이 뜨개질로 생존의 싸움터에 나선 어머니는 싸우고 얻어맞고 밟히면서 아흔 살까지 인생광야를 돌았다. 어느 순간 어머니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고독을 정면으로 맞아들이는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자기의 그림자를 이끌고 해가 떨어지는 지평선을 걸어가는 쓸쓸한 존재가 아닐까. 하나님께 고독을 피하게 해 달라고 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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