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안 광야의 텐트에서 묵은 적이 있었다. 붉은 모래가 깔린 지평선 위로 아침의 붉은 태양이 반쯤 얼굴을 내밀었을 때 순례객을 태운 채 그 앞을 천천히 지나가는 낙타 행렬의 검은 실루엣을 보면서 신비한 느낌이 들었었다.

나는 광야에 있는 아랍인 마을에 갔다. 진흙 상자같은 한 집 앞에서 낙타가 엎드려 쉬고 있었다. 아랍인 집에서 나온 열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일어나라고 소리치자 낙타는 싫은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 일어났다. 소년과 함께 낙타를 타고 광야로 나갔다. 낙타는 광야를 걷다가 여기저기 나 있는 가시 같은 풀을 보면 긴 목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그 풀을 뜯어 먹었다. 광야의 관목 가지에 붙은 가시 같은 풀이 낙타의 먹이라고 했다. 입에 상처가 나도 낙타는 조상 때부터 그 거친 풀을 먹고 산다고 했다.

밤이 오면 낙타는 별빛 아래 조용히 엎드려 되새김을 하는 고독한 짐승이다. 낙타는 일생 태양이 뜨겁게 쏟아지는 모래사막을 갈증을 참으면서 뚜벅뚜벅 걷다가 어느 날 모래 위에 픽 쓰러져 죽기도 한다. TV 화면에서 모래 위에 남겨진 낙타의 풍화된 뼈들을 본 적이 있다. 눈 부위가 커다란 구멍으로 남은 낙타의 앙상한 머리뼈를 바람에 날리는 모래가 반쯤 덮고 있었다.

니체는 낙타와 사자를 인간의 운명에 비유했다. 한 번의 기회를 노려 짐승을 잡아 포식하고 그늘에서 몇 날 며칠 편하게 잠을 자는 사자 같은 인생이 있다고 했다. 또 낙타같은 운명도 있다고 했다. 낙타는 한 발 한 발 걸어 사막을 건너간다. 사람의 일생도 무거운 짐을 지고 모래사막을 가는 낙타와 같다는 생각이다.

낙타를 생각하다가 문득 일본 현대문학의 창시자격인 나쓰메 소세키가 작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에게 썼던 편지내용이 떠올랐다. 나쓰메 소세키는 천재작가는 불과 같아서 순간 빛을 발하다가 세상에서 금방 잊혀진다고 했다. 그러나 끝없이 인내하며 노력하는 작가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낙타는 어떻게 사막을 통과할까. 인생의 광야를 통과하는 인간은 어떻게 그 길을 가야 할까. 도쿠가와 이예야스는 소 걸음 같이 느린 자신이라도 게으름을 피지 않고 간다면 천리 밖도 갈 거라는 말을 남겼다. 낙타도 한 발 한 발 걸어 사막을 건너간다. 사람들도 그렇게 인생광야를 통과해야 하지 않을까. 매일 조금씩 꾸준히 일하면 평생의 일을 하는데 시간은 충분하다고 한다. 세상에는 바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많이 하기 때문에 바쁜 것이다.

암에 걸려 죽음이 다가온 한 의사는 내게 환자를 본 챠트들이 삶의 발자국이었다고 했다. 어떤 작가는 그가 쓴 오만 장의 원고지가 인생이라고 했다. 화가들은 그가 그린 그림들 속에 삶의 자국들이 찍혀 있다.

오늘 아침 일본의 종교인 우치무라 간조의 전집 열 권의 두 번째 정독을 마쳤다. 그는 하나님이 동양에 파견한 예언자이자 성경학자라는 생각이다. 일본의 군국주의 시대 평생 핍박을 받으면서도 십자가를 지고 죽는 그 날까지 낙타같이 살았던 사람이다. 나는 그 전집을 제2의 성경으로 삼고 매일 네다섯 장씩 이십 년을 읽었다.

오늘부터 중국인 ‘워치만 니’의 ‘영(靈)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책을 두 번째 읽기 시작했다. 그가 열일곱 살이던 1920년 크리스챤이 된 그는 삼천여 권의 영문 기독교서적을 독파하면서 성경을 연구하고 자신이 깨달은 걸 글로 썼다. 공산주의 정권에서 신앙을 믿는다는 이유로 그는 이십 년 감옥생활을 하다 죽었다. 그들은 우리가 인생광야를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나침반 같은 발자국을 남겨주었다. 낙타같은 삶이 그렇게 만들어 준 게 아닐까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