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선배가 너를 한번 때려줬으면 좋겠대”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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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십대 법무장교로 군사법원 검사를 잠시 하던 시절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선배 변호사가 있었다. 속칭 전관예우를 받으면서 돈을 벌면서 항상 자신을 과시하는 태도였다. 한번은 그 선배가 인사동의 고급음식점에서 후배들에게 술과 밥을 사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 얻어먹지 않겠다는 개결한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다. 다음날 그 자리에 갔다 온 선배 장교가 이런 말을 한 마디 툭 내뱉었다.
  
  “그 선배가 너를 한번 때려줬으면 좋겠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감정이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때린다는 소리까지 나오나 하고 속으로 격분했다. 그 한마디는 내 마음속의 바위에 깊이 각인되어 잊히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다. 변호사 모임에서 나를 미워한다는 그 선배의 얼굴을 보면 감정이 상했다. 그는 계속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시 세월이 흐르고 나도 늙고 그 선배도 칠십대 노인이 되었다. 중간에 말을 전했던 선배 장교는 암으로 저세상 사람이 된 지 오래였다. 어느 날인가 마음의 매듭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내가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예전에 군사법원을 변호하러 드나드셨을 때 제가 건방지다고 한번 때려주겠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그가 펄쩍 뛰면서 대답했다. 깜짝 놀라는 기색이 전화를 받는 그의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선배가 전해서 평생 마음이 찜찜했습니다. 그래서 매듭을 풀려고 세월이 지났지만 뒤늦게 전화를 이렇게 드린 겁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젊은 시절 건방졌다면 지금이라도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그때 내가 후배들 신세를 여러모로 졌고 그래서 밥 한 끼 산 건데 감사하면 감사했지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마도 그 자리에 참석을 안 하니까 군검사 선배가 저를 팔아서 한 마디 보탠 것 같습니다.”
  
  그와 솔직하게 대화를 한 후에 평생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앙금이 녹아 없어진 것 같았다. 소심한 나는 남들이 하는 말 한 마디나 사소한 일에 화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사법연수원에 입소했을 때 이미 나는 삼십대가 넘어있었다. 현직 부장판사인 사법연수원 교수는 교실로 들어와서 먼저 은근히 자기 자랑을 한참 동안 늘어놓았다. 항상 일등을 해 왔고 최연소로 고시에 합격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나같이 나이 먹은 연수생들은 판사로 임관해도 출세하기가 어려울 테니 일찍 지방에 가서 변호사 사무실을 알아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멸감이 다가오면서 불쾌했다. 다음부터 지도교수인 그가 싫었다. 그가 이끄는 등산모임 같은 사적인 모임에는 가지 않았다. 그가 무심히 던진 한 마디가 가슴에 남아 있었다. 그는 판사로 성공하는 것 같았다. 그 얼마 후 법원장이 됐다. 법원장이 된 그는 직원들을 모두 불러 등산대회를 개최했다. 그 등산대회에서 일등을 과시하기 위해 무리하게 산을 올라가던 그는 중간에 심장마비가 와서 죽었다.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최연소 사법고시 합격이나 법원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변호사를 하다 보면 수시로 기분 나쁜 일이 생겼다. 마치 백화점에서 돈을 내고 물건을 사면서 갑질하는 고객 같은 태도를 취하는 의뢰인도 많았다. 버릇없이 자란 부잣집 딸들 중에는 모든 걸 거의 명령을 내리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한항공의 오너 집안의 딸이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디스들을 종 부리듯 하고 비행기의 회항을 명령했듯이 세상에는 그런 종류의 인간들이 많았다. 또 내게 몰라서 묻는 경우보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전문가를 깔아뭉개기 위해서 질문을 하거나 말을 거는 경우도 많았다.
  
  살아오면서 매일 도처에 사소하고 기분 나쁜 일들이 존재했다. 감정은 조금만 기울면 엎질러지는 물이었다. 남을 증오하는 마음은 얼굴을 험악하게 만들면서 주름살로 변했다. 원망하는 마음은 나를 추악하게 만들었다. 그러지 말자고 하면서도 마음속에 격랑이 이는 날이 많았다. 그런 것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통과료라고 위로하면서 살아간다.
  
[ 2020-01-31, 09:4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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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객   2020-01-31 오전 9:56
참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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