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부(副)두목의 편지
“예수가 부르는 줄 알고 새벽에 일어나 지하철 갈아타고 택시 타고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예수는 없고 양아치만 하나 있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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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십여 년 전 분당의 야탑동에 살 때였다. 어느 날 안양교도소에서 편지 한 장이 집으로 날아들었다. 감옥 안에서 얻어맞아 갈비뼈가 부러지고 억울하게 고통을 받고 있으니 한번 찾아와 달라는 간절한 내용이었다. 모르는 남자였다.
  
  나는 그 순간 톨스토이 소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흰 눈이 쌓인 거리의 건물 모퉁이에 벌거벗은 남자가 떨고 있었다. 배고픔과 추위에 고통받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남자는 지상으로 떨어진 천사였다. 그는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고 있었다. 외면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벌을 주고 선(善)을 베푸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보답을 할 예정이었다. 그를 지나쳤던 한 남자가 되돌아서서 벌거벗은 청년으로 변한 천사를 집으로 데려가는 내용의 얘기였다.
  
  선한 행위도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기회를 놓치면 안 되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감옥에 있을 때 자신을 찾아와 준 사람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언제 그랬느냐고 묻는다. 예수는 감옥에 있는 억울해하는 죄수를 찾아가 주는 것이 나를 보러 온 것이라고 했다.
  
  변호사 사무실을 하면서 항상 조심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 중에 예수나 천사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허리가 굽은 작은 노파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주민센터에서 기초생활 수급비를 받아 사는 그 노파는 암에 걸려 있었다. 나는 그 노파에게 혹시 예수님이 아닌지 물어보았다. 그 노파는 멀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쨌든 하나님의 트릭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조심하면서 살았다.
  
  하나님은 마구간의 구유에 누워있는 갓난아기로 세상에 나타났다. 하나님은 가난한 목수 집 맏아들로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서 서른 살까지 못이 박힌 손으로 목수 일을 했었다. 목수는 자신이 메시아라고 하면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를 욕하기도 하고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이려고도 했다. 마침내 그는 잡혀서 두들겨 맞고 침 뱉음을 당하고 감옥에 있다가 사형대에 올라 죽음을 맞이했다.
  
  하나님은 근엄한 모습으로 웅대한 성전에 신비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천하고 곤궁한 모습으로 위장하고 나타났었다. 그런 하나님의 트릭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평소에 마음무장을 하고 있었다. 교도소에서 온 편지는 감옥에 있는 예수님이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나는 새벽에 지하철을 갈아타고 다시 택시를 타고 안양교도소 접견실에 도착했다. 내게 편지를 보낸 죄수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람한 근육질의 체격에 얼굴에 칼에 맞은 듯한 흉터가 보였다. 그가 뒤에 앉아있는 교도관을 보면서 소리쳤다.
  
  “어이, 변호사님이 오셨는데 차부터 한잔 대접하지.”
  
  마치 사장이 비서에게 명령을 하는 말투였다. 죄수와 교도관 사이의 대화로는 전혀 맞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그 지역 조폭의 부두목이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었다. 한참을 듣던 내가 이렇게 말했다.
  
  “예수가 부르는 줄 알고 새벽에 일어나 지하철 갈아타고 택시 타고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예수는 없고 양아치만 하나 있네. 당신 양아치잖아?”
  “뭐요? 예수? 양아치?”
  
  “나는 예수님이 죄인의 모습이 되어 부른 줄 알았어. 그런데 얘기를 듣고 보니까 아니야. 완전 헛고생했어.”
  “…”
  
  순간 그는 침묵하면서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양아치를 하면서 치고받고 연장질하고 험난한 세월을 보내왔습니다. 제가 언제 예수를 믿을 시간이 있었겠습니까?”
  
  “하여튼 나는 오늘 번지수를 틀리게 잘못 찾아왔으니까 도로 갈랍니다.”
  나는 그를 등 뒤로 하고 교도소를 나왔다. 나오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거대한 빛을 동반하고 신비한 모습으로 오시지 왜 사람 중에서도 비천하고 가난한 모습으로 오셨지?’
  
  그러니까 겉모습만 보는 사람들이 헷갈리는 것 같았다. 잠시 어떤 생각이 마음속에서 물방울같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대가 나와 같은 겸손을 지녀 교만을 극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니라’
  
  몇 달 후 편지가 왔다. 조폭 부두목이라는 그 남자에게서였다. 그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감옥 안에서 자기도 성경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보겠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 2020-02-09, 20: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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