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중독자와 기차역 노숙자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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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고등학교를 나온 친한 친구가 있다. 중학 시절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야반도주했던 그의 집은 가난한 데다 그는 한쪽 다리가 불편했다. 중학교 2학년 크리스마스날 그는 내 방에 와서 싸구려 포도주에 취해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 그림을 잘 그리던 그는 그 방향으로 갈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간판과 현수막을 그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의 무서운 집념은 그 누구에게나 머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을 수 있었다. 어느 날부터 대형백화점의 현수막을 그가 거의 독점한 것 같았다. 그는 고속 도로가의 대형 간판일도 맡았다. 사업에 성공하고도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전진했다. 서울 근교에 땅을 사들여 대형 현수막을 만드는 공장을 차렸다. 틈틈이 부동산을 사들이고 시내 요지에 빌딩을 지었다. 그는 부자가 됐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는 일 중독증에 걸려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육십대 중반인데도 불편한 다리 하나를 가지고 거의 하루 종일 서서 버티는 삶이었다.
  
  “이제 크루즈 여행도 하고 좀 쉬면서 사는 게 어때?”
  내가 그에게 권유했다.
  
  “아직 목표 달성을 못했어. 강남에 있는 빌딩에 유명업체를 입점시키고 외곽에 있는 내 공장을 근처에 들어찬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찾는 명소로 만들어야 해. 그렇게 해야 건물값이나 땅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거야. 그걸 달성하면 나도 쉴게.”
  
  가난하고 몸이 불편한 그는 한(恨)이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부자가 됐다. 사람들이 한 쪽 다리를 저는 그를 동정하기도 했다. 마음의 상처가 있었던 그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었다. 많은 돈을 정치권에 투자하고 집권당에 들어가기도 했다. 장애인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였다. 어느날 그가 내게 찾아왔다. 그는 내게 “그놈들이 나보고 그 정도는 장애인이 아니래” 하고 절망하기도 했었다. 그는 인동초같이 끈질긴 집념의 남자였다. 지금도 쉴 줄을 모른다. 아니 쉰다는 그 단어 자체의 의미가 그의 뇌리에는 없는 것 같다. 돌아가던 팽이가 쓰러지듯 죽음이 다가와야 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삼십대 중반 무렵 정부기관에 근무할 때였다. 관료 중 한 사람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느낌이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갈 줄을 몰랐다. 일이 그의 삶이었다. 윗사람에게는 노예같이 굴종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항상 선두주자로 진급했다. 그리고 어느 날 국회의원이 됐다. 그 얼마 후 사람들은 그가 사무실에서 죽어 있는 걸 발견했다. 과로가 죽음의 원인이었다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오기도 했다.
  
  그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의문이 내게 다가왔었다. 그 무렵 나는 인도철학자 라즈니쉬에 빠져 있기도 했다. 그가 쓴 책 중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 대기업의 사원이 기차를 타기 위해 다급한 걸음으로 역을 통과하고 있었다. 역의 광장에는 노숙자들이 태평한 모습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대기업 사원인 그는 그런 노숙자들을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그를 쳐다보는 한 노숙자의 생각이 묘사되고 있었다.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가는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살까 하고 노숙자는 의문을 던진다. 노숙자는 그냥 그 자리에 앉아 버리면 쉴 수 있는데 왜 저 사람은 쉬지 못할까 생각을 한다. 두 사람의 시각이 전혀 달랐다.
  
  그 짧은 장면을 기술한 글을 보면서 나는 쉰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무거운 돌을 들고 진땀을 흘리는 어린아이 같았다. 하나님은 나를 보고 그걸 내려놓으라고 조용한 메시지를 보냈다. 어리석은 나는 들고 있는 돌을 땅에 내려놓으면 큰일 난다고 하면서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여겼다. 하나님은 그 분께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기도까지 하는 게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되물으시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들고 있던 돌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았다. 부자가 되겠다는 욕망이나 높은 자리나 인기를 얻고 싶은 욕심은 다 그런 무거운 돌덩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압감을 느끼게 했던 마음 속의 돌을 던져버리기로 했다. 갑자기 날아갈 듯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십 오년간 세상을 흘러 다녔다. 촉촉한 영혼과 감동이 없는 늙어서의 여행은 택배로 가는 물건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었다. 틈틈이 일을 했다. 쉬는 게 본 업이고 일하는 게 부업이었다. 늙어서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기로 마음먹었었다.
  
  며칠 전 중학 시절부터 친한 친구가 암 수술 날짜가 잡혔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겁먹은 얼굴이었다. 나는 그에게 하나님이 보내는 쉬라는 메시지라면서 위로해 주었다. 나는 인도철학에서 읽었던 그 노숙자가 한 이 말을 떠올린다.
  
  ‘당장 쉬면 쉴 수 있다. 만일 일이 끝난 때를, 돈을 벌고 난 후를 찾는다면 끝이 날 때가 없다’
  
  
  
  
[ 2020-02-15, 19: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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