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는 저기 대기실에 가서 기다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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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흥재벌로 떠오른 한 재벌 회장이 내게 협박성 경고를 보내왔었다. 자신이 고용하고 있는 변호사들을 동원해서 나를 꼭 파멸시키고 말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힘이 있었다. 검찰총장의 동생을 비서실 직원으로 채용해서 부렸다. 서울중앙지검장 친척을 비서로 고용하기도 했다. 그가 저질렀던 범죄를 시사잡지에 폭로했기 때문이었다.
  
  판사는 수사기관이 주는 자료만을 바늘구멍으로 본다. 초등학교 시절 배운 카메라의 원리같이 작은 구멍으로 보면 사물이 거꾸로 보이기도 했다. 나는 대법관의 잘못된 판결을 지적했다. 또 다른 범죄를 시사잡지를 통해 고발한 적이 있다. 준재벌급의 부자가 살인 청부를 해서 한 사람의 생명이 희생된 사건이었다. 현실에서 돈은 악마 같은 힘을 발휘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눈을 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어딘가에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나는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나는 매번 마치 하이에나 떼에 포위된 멧돼지 같은 운명 같다는 느낌이었다. 저돌적으로 덤비다가 식탁에 오른 바비큐 비슷하다고나 할까. 성경 속의 세례요한은 바른 소리를 했다가 잘린 목이 쟁반 위에 올라 왕의 잔치의 유흥거리가 됐었다. 제일 먼저 물어뜯는 건 형사였다.
  
  “당신 혹시 정치에 뜻이 있는 거요? 변호사가 잡지에 글을 쓰는 건 튀는 행위잖아? 금배지를 달라고 그러시나?”
  노련한 담당 형사의 질문이었다.
  
  “아니, 전혀 그런 뜻이 없어요.”
  “그러면 좌파네, 부자를 미워하는 게 빨갱이잖아?”
  
  갑자기 나는 좌파로 변하기도 했다. 이 사회에서 문둥이보다 싫어하는 욕이기도 했다. 검찰로 사건이 송치가 됐다. 새파랗게 젊은 검사가 담당이었다. 정치권으로 진출하려는 야망을 가진 사람이라는 소문이었다. 검사실로 들어서는 내게 그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피의자는 저기 대기실에 가서 기다려. 그리고 부르면 들어와.”
  
  변호사로 법의 밥을 삼십 년 이상 먹었다. 내가 변호사를 할 때 그는 초등학생쯤 됐을까. 같은 법조인이라고 존중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몇 시간을 감옥 같은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갔다. 바쁘지도 않은 데 악의적인 것 같았다.
  
  “당신이 시사잡지에 글을 쓰는 데 난 감정이 없어. 그렇지만 배경까지 철저히 수사할 거야.”
  검사는 그렇게 말했다. 사건이 법원으로 넘겨졌다.
  
  “그래도 당신이 뭔가 잘못했으니까 그 사람들이 이렇게 법에 호소했을 거 아닙니까? 그리고 대법관의 잘못을 지적했는데 하급법원의 판사가 진실을 보더라도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미 결론이 났다는 소리였다. 진실과 정의보다 세상은 다른 것들에 의해 지배됐다. 악마는 예수를 시험하면서 이 세상의 힘과 돈은 다 자기의 것이라고 했다. 악마 앞에 무릎을 꿇으면 그걸 주겠다고 유혹했다. 그걸 거부하면 사형을 의미하는 십자가였다. 고시에 합격하고 법조인이 됐을 때 나는 남보다 높은 자리에서 대접을 받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의 경우가 많았다. 한여름 소나기가 오면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다. 그러다 온 몸이 젖으면 오히려 내려오는 빗줄기를 즐기게 된다.
  
  나는 바닥까지 내려가 보고 싶었다. 이따금씩 거리의 변호사가 되 보기로 했다. 추운 겨울 노숙자 같은 허름한 복장으로 탑골공원 뒷골목 노숙자와 노인들이 바글거리는 곳으로 갔다. 길바닥에 접이의자 하나를 놓고 앉아 법률상담을 했다. 노숙을 하니까 동사무소에서 쌀을 안준다고 하기도 하고 다른 노숙자가 때린다고 호소하기도 하고 별별 내용이 다 있다. 나도 노숙자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내 또래의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 노숙자가 앞에서 한참을 보다가 말했다.
  
  “나랑 친구 할래? 저기 가서 한잔 해”
  또다른 노숙자가 지나가다가 핫팩봉지 하나를 주면서 말한다. “이거 손에 들고 비벼봐. 손이 따뜻해져.”
  
  겉은 노숙자지만 마음은 겨울 뜨거운 난로 같은 사람이다. 또다른 노숙자가 지나가다가 내게 털실로 짠 목도리 하나를 주면서 말했다. “이거 저기서 나눠주던데 목에 둘러봐 괜찮을 거야.”
  
  그 찬바람이 도는 뒷골목에도 인정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 마음의 온도들을 지니고 있으면 노숙자가 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종로의 길바닥에서 생각했다.
  
  ‘남으로부터 받는 평가나 처우가 신경 쓰이지 않는 경지에 몸을 둘 수 있다면 인생의 고민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 2020-02-16, 20: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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