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역시 잠깐이니라'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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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영화를 두 번 봤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던 청년이 병에 걸렸다. 다리부터 몸이 서서히 굳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였다. 그는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여러 명이 묵는 병실 구석 그의 침대 옆 창가에는 법서들이 놓여 있었다. 그는 침대 위에서도 계속 공부하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가 병실을 들렸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친구였다. 성공한 친구의 존재 자체가 그를 슬프게 했다. 친구가 간 후 이성을 잃은 그는 병원 시멘트 바닥에 몸을 던져 자해를 하기도 했다. 그의 꿈은 이미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몸은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얼굴에 앉은 모기 한 마리를 쫓을 수 없게 됐다. 그의 눈에서 진한 회한의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는 죽었다.
  
  하나님은 꿈 많은 착한 사람들을 갑자기 하늘로 불러올리기도 했다. 나는 그런 처참한 비극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현실에서 영화보다 더 불행한 친구가 있었다. 법대 동기인 그는 나와 장교로 군대에도 함께 갔다.
  
  그와 나는 결혼을 하고 부부동반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삼십대 말의 그에게 갑자기 불행이 닥쳐왔다. 머리가 아파 수술을 했는데 그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가 입원해 있는 병실을 찾아갔었다. 그가 앞에 앉아있는 그의 아내가 밥을 푼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 그의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그 부부에게 나라는 존재 자체가 고통인 것 같았다. 그 무렵 나는 다시 공부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 부부 앞에서 나는 죄인처럼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었다.
  
  “빨리 세월이 사십 년쯤 흘러 늙어 버렸으면 좋겠어요.”
  그의 아내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다음에 그를 찾아갔을 때였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아무도 없을 때 자살을 하려고 가죽 혁대를 풀어서 의자를 밟고 올라가 벽 위의 못에 고정시켰지. 목을 매고 떨어졌어. 그 순간 혁대의 버클이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어. 너무 아프더라구. 목매달아 죽지는 못하겠어.”
  
  그는 살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에게 다시 암이라는 죽음의 초대장을 보냈다. 나는 더 이상 그가 입원한 병실을 찾아갈 수 없었다. 정신적으로도 피폐해 가는 그는 나를 미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연했다. 그가 죽은 다음날 그의 장례식장을 찾아갔었다. 그는 영정사진 안에서 허허로운 눈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복을 입고 앉아있는 그의 아내 눈길도 공허해 보였다. 그의 아내가 했던 말처럼 세월이 지나가 버렸다. 죽은 친구의 자식들이 잘 커서 중견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리를 바람결에 들었다.
  
  사십대 말쯤 읽었던 정신세계를 소개하는 책이 있었다. 그 내용 중에 고민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한 영험한 수도사가 있었다. 그 수도사의 옆에는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렸던 사람들이 그 수도사의 책을 펼치는 순간 모두 환한 미소로 변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수도사가 방에 없을 때 몰래 들어가 조심스럽게 그 책을 펼쳐보았다. 의외로 책은 대부분 백지였고 그 중한 페이지에 한 줄의 글이 적혀 있었다. ‘이것도 역시 잠깐이니라’
  
  사람들은 그 말에 모두 위로를 받고 갔던 것이다. 지나보면 영원으로 이어질 것 같았던 청춘도 어느 순간 안개같이 사라졌다. 지나고 보면 잠깐이었다. 모든 것들이 잠깐이었고 인생의 고민들은 여름날의 소나기에 쓸려가는 쓰레기같이 하수구를 통해 지하로 그리고 넓은 바다로 흘러가 버렸다. 좋은 사람들이 빨리 죽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리석은 나는 그가 사라진 것만 알지 왜 갔는지 그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단테의 ‘신곡’을 보면 착한 영혼이 거짓된 세상의 굴레에서 빨리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표현하고 있다. 인생이라는 소설의 앞쪽만 읽고 있는 나는 그 뒤의 결론 부분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고통도 기쁨도 삶도 역시 잠깐이라고 생각하면 인생의 짐이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 2020-03-06, 21:0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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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정당당돌직구   2020-06-14 오후 7:29
굳이 책이 보지 않아도 인생에 다 묻어 있습니다.
군대에서 힘들 때마다 하는 말. "꺼꾸로 매달아 놓아도 시간은 간다."
  1   2020-03-08 오후 6:01
주신 글을 보고 한결 짐이 가벼워졌습니다!!! 억눌려 가슴죄며 괴로워하든 사위를 잃고 딸의 무서움과 외로움을 생각하면 잠들수없습니다!!! 주님이 대려가신것은 하늘이 딸에게보다 더 필요해서라고 생각도 해봤으나 딸의 괴로움이 더 무겁게 짓 누루고있는것은 왜 일까??? "이것도 잠깐 이겠지"로 위안해보면서 감사드립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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