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했던 말과 행동이 모두 위선이었어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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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방에만 박혀 있지 말고 앞으로 운동을 공부나 숙제하듯 죽기 살기로 해.”
  
  아내가 나를 다그쳤다. 며칠 동안 허리가 아파서 꼼짝도 못했다. 동네 정형외과에 갔더니 인대에 염증이 생겨서 그렇다고 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난 당신이 드러누우면 그 큰 덩치의 남자 똥오줌 받아낼 수 없어.”
  그렇게 말하는 아내의 표정은 진지했다.
  
  “내가 벌써 그렇게 된 나인가?”
  “그럼 당연하지. 지금 우리가 죽어봐. 애들은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하지. 우리도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 그렇게 생각했잖아?”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둘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아내의 말을 들으니까 겁이 난다. 어제는 노숙자 시설에 있던 한 노인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쪽방에서 척추 협착증 때문에 꼼짝을 못한다고 했다. 엎드려 기면서 전기밥솥에 밥을 해 먹는다고 했다. 나무가 늙어가면서 수액이 빠지고 어느 순간 조용히 쓰러져 자연으로 돌아가듯 그렇게 사람도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침대 위에 누워서나 요양원에서 길고 긴 사멸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하니까 다행히 오늘 아침은 거뜬해졌다. 다시 나의 은신처이자 피난처인 골방에 들어와 기도를 하고 묵상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오늘의 화두는 ‘목숨’이다. 변호사를 하면서 죽음의 강을 건너 다른 세상으로 가는 사람들을 여러 명 보았다. 평생 범죄에 젖어 살던 사람이 펑펑 울면서 죽기도 하고 빈 방에서 목매달아 죽기도 했다. 허망하게 살던 그들의 죽음은 공허했다.
  
  큰 병원의 영안실에 갔다 나오다가 바로 옆방에 놓여있는 생글생글 웃는 남자의 영정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가까이 지내던 대학후배인 변호사였다. 국회의원이 되려고 십년 동안 개미같이 애를 쓰더니 죽어 있었다. 한동안 소식이 끊겼었는데 췌장암으로 앓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빈소는 썰렁했다. 살아있을 때 정치인으로 얼굴은 많이 알았어도 마음을 안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죽으면서 별별 부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소설이나 만화보다도 더 허구 같은 현실을 보기도 했다. 원한을 가득 품은 한 친구는 변호사인 내게 꼭 복수해 달라고 하면서 백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을 주고 자살했다. 그가 머금은 독 때문에 자신이 죽어버린 것이다. 마음이 너무 여렸던 그를 둔감한 상대방이 전혀 모르고 상처를 준 면이 있었다. 인간은 남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존재이기도 하다. 단테의 신곡에 나와 있는 것처럼 나는 내가 본 것들을 진실된 마음으로 그대로 드러낸 글을 써서 그가 준 돈으로 책을 만들어 남겼었다. 그게 그가 말한 것처럼 복수인지는 몰라도 저승에 있는 그의 영혼이나 살아있는 그의 상대방이나 자식들은 묻혀버린 그의 고뇌하던 내면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음에도 색깔과 질감들이 전혀 다르다. 임대아파트의 작은 방에서 혼자 누워 죽어가는 시인이 죽음의 강을 건너가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는 살아온 세상에 대해 감사했다. 아침이슬이 맺힌 창문 앞의 노란 호박꽃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느냐고 했다. 죽기 며칠 전에도 자신보다 그를 찾아가는 나에게 어떤 선물을 줄까 고심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글을 쓰고 싶으면 바로 즉석에서 쓰라고 했다. 나중은 없다고 했다. 소년 시절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수천 권의 책을 읽었지만 죽는 순간까지 옆에 둘 책은 성경이라고 알려줬다.
  
  그는 내가 전달한 이백만 원을 나중에 저 세상에서 만날 때 갚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죽기 전날까지 침대 매트리스 아래 둔 공책을 꺼내어 연필로 시를 썼다. 아름다운 죽음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너무 많은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죽기 얼마 전 아흔여섯 살의 엄두섭 목사라는 분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는 기독교계의 어른으로 후배 성직자들에게 대단한 존경을 받는 분이었다. 온 몸에 힘이 빠져서 누워있던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평생 동안 했던 말과 행동이 모두 위선이었어요. 지금에 와서 보면 단 한 가지도 선을 행한 적이 없어요.”
  
  위대한 인물은 자신의 죄 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목숨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목숨은 잠시 일었다 스러지는 물거품 같은 것. 인생 잠시 살던 그 세월은 한바탕 꿈이라고 했다. 어디선가 본 고승의 짧은 시구 하나가 떠오른다.
  
  ‘그날 이 가죽 자루 내던질 것이니 한 덩이 붉은 해 서산에 지겠지’
  
  
[ 2020-03-08, 21:1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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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건   2020-03-17 오후 11:33
글마다 읽습니다. 글마다 인생론에 머리숙여지고 돌아보게 합니다. 좋은 글 또 부탁드립니다.
  고포리   2020-03-15 오후 4:07
엄상익의 글은 읽고 싶지 않은데 제목에 낚여서 들어왔네. 좌파 사회주의자가 왜 조갑제.컴에서 글을 쓰고 활동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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