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세무조사를 나가 볼까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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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십여 년 전쯤이다. 관할 세무서에서 오라고 연락이 왔다. 소득세과 담당이 말했다.
  
  “다른 변호사들은 사건에 따라 수입금액이 골고루 비슷하게 되어 있는데 신고하신 걸 보면 어떻게 그렇게 들쭉날쭉하죠?”
  
  나는 어쩌다 한번 비교적 수입이 큰 사건을 맡는 경우가 있었다. 그 돈으로 몇 달을 버텼다. 그 사이 무료로 변호하는 사건들도 있었다. 그건 하나님이 보내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이 그래서 정직하게 신고한 겁니다.”
  “정직하시다고요?”
  
  갑자기 세무서 직원의 눈빛에 강한 거부감이 떠오르면서 비웃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 표정은 세상에 정직한 놈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한번 세무조사를 나가 볼까요?'
  협박이었다. 나는 순간 불쾌감을 견디지 못했다.
  
  “그렇게 권한 등에 업고 한 자락 깔면서 얘기하지 말고 세무조사를 하세요. 받을 테니까.”
  내 말이 그의 화를 돋운 것 같았다.
  
  “그렇게 하시면 우리 소득세과 직원 전체가 동원돼서 한 달 동안 조사를 할 겁니다. 그렇게 해도 됩니까?”
  “하라니까요”
  
  온유하지 못한 나의 성격은 항상 그렇게 화를 자초하곤 했다. 며칠 후부터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세무서원이 그동안 사건 자료를 요구했다.
  
  “기분 나빠서 자료를 스스로 제공하지 못하겠어요. 공권력이 있으니까 법원의 영장을 받아서 하시고 사실 조회같은 방법으로 관련 기관에 문의하세요. 있어도 내 손으로 주기는 싫어요.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겠는데 세무 조사한다고 하면서 나와서 낮에 사우나에 처박혀 있거나 그런 짓 하지 말아요. 하루 종일 여기 사무실 책상 앞에서 세무조사만 하라구요.”
  
  며칠 후에 그들이 항복했다. 체면이 있으니까 단돈 백만 원만 탈세한 것으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싫다고 했다. 그랬더니 오십만 원을 한 것으로 해달라고 했다. 공무원인 그들이 비굴해 보였다. 그 선에서 타협을 하고 끝냈다.
  
  그리고 이십여 년 만에 다시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형사 비슷하게 세무서원도 직업적 불신병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도와주려는 척 달래는 모습으로 능글능글하고 기분 나쁜 모습으로 접근했다. 국민이 땀 흘려 번 돈으로 세금을 내면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겸손한 자세로 그 돈을 쓰는 게 공무원의 태도여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번드르르한 입술 뒤에는 완장 의식이 남아 있었다.
  
  삼십 팔년 전쯤이다. 퇴직한 아버지는 회사 동료와 같이 변두리에 연립주택을 지어 그 세를 받아 생활비를 하려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공사가 시작한 후 얼마 안 되어 아버지는 중풍을 맞아 몸이 마비되고 동업을 했던 사람은 파산을 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이 경험 없는 사업을 무모하게 시도한 것이다. 아버지는 공사비조차 없었다. 동업자가 자기 땅 오십 평을 사달라고 사정을 했다. 이십대 말인 그때부터 나는 장남으로 집안을 꾸려가야 했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 그 땅을 어머니 명의로 샀었다. 사실상 내가 산 셈이다. 그 후로 어머니에게 매달 용돈을 드렸었다.
  
  사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땅값의 반가량을 상속세로 국가에 바쳤다. 그 땅을 팔아버렸다. 다시 그 소득의 반이 양도소득세였다. 어머니는 내가 준 용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내게 돌려줬다. 거기에 증여세가 부과됐다. 뜨개질 품팔이로 평생 살아온 어머니의 땀과 초급장교 시절 점심값을 아끼면서 저축해 둔 돈을 당당하게 국가에 세금으로 바쳤다는 생각이었다. 이번에도 세무서원은 직업적 의심의 눈으로 나를 대했다. 형사나 세무서원 기자 같은 직업은 일정 기간마다 자신도 모르게 들어있는 외눈박이가 된 영혼의 병을 고쳐야 할 것 같았다. 그들은 모든 걸 부정적으로 보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최대의 권한을 행사해서 나한테 최악의 세금을 부과하세요.”
  
  내가 세무서원에게 말했다. 나는 속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국민 세금의 일부를 특활비라는 명목으로 빼돌려서 대통령부터 장관 대법관 국회의원들이 먹고 마시는 돈 잔치를 했다는 보도가 연일 나오고 있었다. 시대만 바뀌었을 뿐 그들은 조선의 탐관오리와 다를 게 없었다. 내가 예수를 믿으면서 배운 것 중의 하나는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것이다. 어차피 당해야 할 일은 과감히 당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곤 한다
[ 2020-03-10, 00: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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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13 오후 6:53
이글을 읽고 갑자기 옛 생각이났습니다!.스위스 관광갔을때 대우현지소장(퇴직후 불고기 식당경영)이 한 말! "스위스 국민은 세금이 들 나왔다"고 세무원에게 항의하는 국민이라고했다!!! 믿기지 않았으나 사실이라고하며 퇴직후에 자기 식당에서 써빙하는 노인을 가르키며 저 분이라고한다!!! 백발의 노신사가 일을 찾아서 소일하고 있으며 식당에서 준 임금에 대해 세금이 들 나왔다고하여 세무원에게 따졌다는 분을 가르켰다!!! 사업상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은바있는 나는 도저히 믿을수없는 이일에 얼빠진 느낌이었다!!! "국민의 자각 만이 완전한 국가를 완성한다" 엄상익님의 글을 읽고 감사하며 옛일을 되새겨 봤습니다!!! 감사! 감사! 감사드리며!!!
  정답과오답   2020-03-10 오후 5:07
대단 하십니다
존경 합니다
한국인도 엄상익님 같은 분이
있을수 있다는것에 자존심이 조금 살아 나는듯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 같은 분은 제 주변에는 없는듯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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