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만큼 살았고 뭔들 견디지 못하겠습니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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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세계를 뒤덮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서 유럽, 그리고 모든 나라에서 매일같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그 진원지의 하나로 찍힌 한국은 백여 개가 넘는 나라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다. 거리나 건물 곳곳에서 검문을 당하듯이 체온을 측정하고 열이 있으면 강제격리당하는 국가 비상사태다. 거리나 건물 안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괴물로 취급을 받고 있다. 칠십 가까이 살아오면서 재난 영화 속의 장면들이 이렇게 현실로 오기는 처음이다. 극장, 음식점, 교회, 학교 등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전부 폐쇄하라는 정부의 행정조치가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석촌호수나 양재천 산책로들도 폐쇄됐다. 개인모임도 금지되고 거리에서도 사람들 사이에 2m 이상 거리를 두라는 게 지옥 같은 지금의 세상 모습이다. 언제 이 상황이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속에서 어제 역삼동의 한 음식점에서 전 국가정보원장을 개인적인 일로 만났다. 평소부터 잘 알고 지내던 분이다.
  
  “이 음식점도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태로 오늘로 문을 닫는답니다. 종업원 수보다도 하루에 오는 손님이 더 없대요.”
  
  정부에서 사람들의 모임을 금지시켰으니 식당이 될 리가 없다.
  
  “학교도 아이들이 안 오고 급식이 없어지니까 학교에 음식을 납품하던 업체나 그 업체에 채소 같은 식자재를 팔던 농부들이나 모두 주저앉아 버리고 있어요. 지금 세계의 중심이 되는 미국부터 거대한 폭풍이 일고 있어요. 97년의 외환위기는 그래도 아시아에 한정된 거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가 거대한 폭풍 속으로 들어가게 됐어요. 이제는 우리가 물건을 만든다고 해도 큰 시장인 미국이나 중국에서 무역을 통해 사주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게 됐어요. 우리나라는 한 달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소리 없는 공포를 몰고 노아의 대홍수가 닥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매일 신문에 나는 사건기사나 역사적 상황을 하나님의 섭리와 심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성경 속의 노아의 대홍수는 단순히 물에 지구가 잠기는 것만이 아니다. 중세에는 페스트균이 범람해서 인구의 삼분의 일을 삼켜버렸다. 사상의 홍수가 있었다. 공산주의 혁명이 지구를 덮기도 했다. 세계적인 전쟁의 홍수도 있었다. 우리나라만 해도 전쟁의 홍수가 있었다. 6.25 전쟁 때 하늘에서 내려오는 폭탄세례로 수백만 명이 죽었다.
  
  북한에 살던 나의 외가가 폭격으로 몰살하고 우리 가족 중 형과 누나가 죽고 내가 혼자 남았다. 전쟁 후 밀어닥친 가난의 홍수 속에서 나는 물이 빠진 개천에서 솟아오른 수초같이 자라났다. 나는 방글라데시를 소개한 영화에서 나오는 소년같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살았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의료시설이 없었다. 맹장염이 생겨도 수레에 실려 가다가 죽기도 했다. 무면허 한의사에게 한약을 지어 먹거나 침쟁이에게 침을 맞는 게 고작이기도 했었다. 이웃집 사람들의 죽음을 흔하게 보던 시절이었다. 그 세월을 살아온 나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으면서도 속은 무덤덤한 편이었다.
  
  “아무리 폭풍이 심하게 와도 우리들은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나요? 더한 세상도 살아왔는데 말이죠.”
  내가 전직 국정원장에게 말했다.
  
  “우리는 그렇죠. 저도 월남전에 소대장으로 참전해서 작전에 투입되면 서 있는 곳이 죽음의 상황 자체였죠. 모두가 적이고 밀림 속에 숨어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고 우리는 낯선 곳에서 그냥 서 있었죠. 그렇게 해서 한 달에 백 달러를 벌었어요. 살 만큼 살았고 뭔들 견디지 못하겠습니까? 그렇지만 부유한 시절에 자란 젊은이들이 걱정이죠.”
  
  내 시야에 검푸른 높은 파도가 일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다가온다. 고래 같은 큰 파도에 흰 물결이 얹혀 몰려오고 있다. 나는 녹이 슨 커다란 배에 타고 있다. 거대한 물결에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큰 배가 두 동강이로 꺾일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한다. 이 나라의 지도자가 우리가 탄 배의 선장이다. 숙련된 선장은 폭풍우를 만나면 쓸데없이 저항하지 않고 미리 절망해 포기하지도 않는다. 자신감과 성실로 최후까지 전력을 다한다. 개인이나 국가의 고난 돌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 2020-04-10, 01:2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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