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호 화백의 간소한 삶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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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명의 선배들과 만나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그 중 좌장격인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대통령의 민정비서관을 할 때 한 법관의 상가에 간 일이 있어. 거기서 그 법관의 집을 보고 깜짝 놀랐지. 우리가 전통적으로 초가삼간이라고 하는 그런 집이더란 말이야. 부엌이 있고 방 하나가 있고 마루가 있는 그런 구조지. 그런 청빈에 감동해서 대통령에게 대법관으로 추천을 했고 대법원장으로 만들기 위해 건의를 했지. 대통령이 내 말을 들어주셨지.”
  
  법관이나 관료들의 훌륭함의 상징의 하나는 청빈인 것 같았다. 그 모임에 참석한 선배 중 한 분의 아버지는 대법관이었다. 법조인들 중에는 그 대법관이 항상 고무신을 신고 도시락을 손에 들고 전차를 타고 다니던 검소함이 전설같이 내려오고 있었다.
  
  이제 나이가 팔십이 넘은 선배 변호사 한 분은 평생을 재래시장통의 낡은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결코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반독재 투쟁을 하다가 잡혀 들어간 사람들 편에 서서 바른 말을 해 주다가 자신도 감옥에 들어간 인권변호사이기도 했다. 기사가 딸린 고급차를 몰며 기름기 짙은 얼굴을 가진 교만한 변호사 선배들보다 나는 속으로 그를 더 존경했었다.
  
  변호사를 하다가 전라도 광주의 한 화가에 대한 사건을 맡은 적이 있었다. 미술계에서 유명한 오지호 화백의 아들이었다. 그의 집을 가보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그 화가는 마지막까지 초가삼간을 고집하고 그 속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초가지붕 아래 부엌과 작은 방이 둘 그리고 앞에 툇마루가 있는 구조였다. 그 작은 방 하나에는 작은 이젤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작은 캔버스가 놓여 있었다. 거기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그림에 전념하는 외길인생을 걸었다.
  
  나는 지금도 수필집을 통해 다른 세상으로 간 법정 스님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조그만 암자에서 혼자 후박나무를 친구로 삼고 젊은 날을 보냈다. 나이가 들어서는 더욱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그의 오두막 자체가 세상에 알리는 그의 설법이었다.
  
  내가 개인법률사무소를 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조직폭력배 사건을 맡은 적이 있었다. 그들의 뿌리는 철거민촌에서 시작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청계천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을 도시의 외곽으로 모두 내보냈다. 창고 같은 바라크 건물에서 빈민들이 모여 살았다. 그 빈민가에서 모여 놀던 아이들이 주먹으로 뭉쳐 폭력조직이 된 것이다. 그들은 마피아를 본따서 험악한 범죄를 주저 없이 저질렀다. 그들은 지역의 도박장과 유흥업소를 장악하고 청부폭력을 도맡았다.
  
  그런 진흙탕 속에서도 연꽃 같은 인물이 피어난 걸 보았다. 검찰에 의해 일망타진된 조직폭력의 두목을 성실하게 돕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폭력조직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직의 두목과 어려서 빈민가에서 함께 어울려 놀던 친구이기 때문에 옥바라지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어렸을 적 빈민가의 삶이 너무 싫었다고 했다. 어울려 놀던 아이들이 십대 소년이 되면서 커지자 싸움을 하고 도둑질을 하면서 수시로 소년원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관할 경찰서 형사들은 아예 순번을 정해 죄가 있든 없든 아이들을 잡아들여 감옥으로 보냈다.
  
  그는 그런 악의 굴레에 들기 싫었다. 그는 시인이 됐다. 그리고 치악산 아래 시골집을 얻어 살고 있었다. 생활에 필요한 것을 위해 노동을 했다. 그는 가난해도 죄를 짓고 살기는 싫다고 했다. 그의 가난한 시골집에 가 본 일이 있었다. 마당의 장독대 앞에서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대를 잇는 가난을 받아들이면서 영혼이 행복해지려는 시인의 모습을 느꼈었다.
  
  주변을 보면 정신적 허영으로 온통 과시하려는 모습들을 본다. 단칸 셋방에 살면서도 고급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 아예 그런 정신적 허영을 채워주기 위해 잠시 차를 빌려주는 업체도 있는 것 같다. 속은 공허하면서도 명품으로 겉을 치장하기 바쁜 게 세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명함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직책을 가득 박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청빈한 모습을 보면 감동을 받는다. 청빈이란 단순한 가난이 아니다. 그건 스스로 만들어낸 간소한 삶의 형태다. 그러나 그들의 속은 꽉 차 있다. 그게 진짜 부자가 아닐까.
  
  
  
  
[ 2020-04-16, 20:1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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