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천국 '퀸 엘리자베스 號'에서 내리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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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년 전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나는 낙산 기슭의 신설동에서 살았다. 낙산에는 바닷가 바위에 붙은 따개비같이 판자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동네에서 가까운 청계천 변도 마찬가지였다. 청계천과 돈암천에는 검은 하수구물이 흐르고 포장되지 않은 흙길에서는 하루 종일 먼지가 날렸다. 밥 때가 되면 깡통을 든 거지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아우성을 쳤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그런 풍경을 사진 찍어 지옥 풍경 같이 소개하기도 했다. 내가 자랄 때의 주변 모습이었다.
  
  중학교 사회 시간이었다. 교과서에서 ‘퀸 엘리자베스호’라고 하는 세계 일주를 하는 영국의 유람선 이름을 처음 보았다. 신사 숙녀들이 매일 댄스파티를 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천국을 운항하는 큰 배라고 했다. 시궁창 같은 환경 속에서 살던 가난했던 우리 세대는 그런 말이 두뇌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영국 작가 이언 플레밍 원작의 007 시리즈 영화가 유행했다. 아름다운 바닷가 절벽 위에 있는 흰 별장의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보면서 천국이 저렇게 생겼나 보다 막연히 상상을 했었다.
  
  세월이 흐르고 내가 사십대 말쯤 됐을 때였다.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 갔다가 우연히 퀸 엘리자베스호가 항구에 정박해 있는 사실을 알았다. 뉴욕에서 출발해서 로스앤젤레스에 잠시 있다가 태평양을 건너 타히티와 뉴질랜드로 해서 영국까지 세계 일주를 한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던 배였다.
  
  나는 모든 일을 제치고 그 배에 올라탔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인의 긍지를 표현하는 배였다. 이 지상에서 천국을 구현하려고 그 안의 프로그램을 꾸몄다고 했다. 항상 선실밖에 하인같이 대기하는 선원이 있다가 시중을 들어주었다. 선내 레스토랑의 모습은 어릴 적 영화 속에서 보던 바로 그런 화려한 장면이었다. 순결한 흰 테이블보 위에 은촛대에서 불이 반짝이고 꽃이 담긴 수반 주위에 투명한 와인 글라스가 놓여 있었다. 턱시도와 파티 복으로 세련되게 차려입은 백인 부부들이 테이블에 앉아 식전주를 마시며 노을 지는 바다를 보고 있었다. 사천 명이 넘는 승객 중에 동양인이고 한국인은 나뿐이었던 것 같았다.
  
  세계 일주를 하는 퀸 엘리자베스호를 타는 건 그들에게도 로망이었던 것 같았다. 테이블에 앉은 미국인 부부는 은퇴 후의 꿈이 엘리자베스호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교사 출신의 영국인 여성은 나에게 필요하다면 셰익스피어를 알려주겠다고 호의를 베풀었다. 영국인들의 예의가 어떤지를 피부로 실감했다. 그들은 나의 더듬거리는 영어를 의식하고 식사 때 자기네끼리의 규칙을 정했다. 동양에서 온 한국인인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로 식사시간에 자기들끼리 영어로 말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미안할 정도의 나에 대한 배려였다.
  
  매일 댄스파티가 있고 공연이 있고 기름진 음식이 가득했다. 손가락 까딱 안 해도 아쉽지 않도록 해 주는 배였다. 그 배는 하와이를 거쳐 타히티 섬을 거쳐 뉴질랜드로 향하고 있었다.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을 항로로 하는 것 같았다. 천국에서 사는 것 같은 일주일이 흐르고 이 주일이 흘렀다. 배에 탄 승객들이 차츰 지루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댄스파티의 사람들이 확 줄었다. 공연장의 화려한 쇼도 더 이상 보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배 안은 진공 속 같았다. 이벤트가 만들어졌다. 풀장 옆에서 사람에게 물감을 가득 바르게 한 후 다른 사람이 밀어 빠지게 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물에 빠지는 걸 보고 ‘와’하고 사람들이 웃고 선내방송이 그걸 중개했다. 사람들은 이내 시큰둥해졌다.
  
  어느 날 구석에서 한 영감이 열심히 십자수를 놓는 걸 봤다. 일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 내가 얼굴을 아는 교사 출신 영국 여성은 배 안에서 가르칠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화가였던 사람은 작은 스케치 북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평생 자기가 하던 일을 그 안에서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 안에서 내가 읽던 책 속에서 주인공인 희랍인 조르바가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산다는 건 말썽입니다. 죽으면 말썽이 없지요. 산다는 것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요? 당신의 혁대를 끄르고 말썽을 찾아 나서는 거죠.’
  
  나는 그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시간도 돈도 사랑도 지위도 원없이 얻을 수 있다면 그래서 더 이상 갖고 싶고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게 없다면 어떻게 될까? 소원마다 성취되어 땀 흘릴 게 없다면? 그렇다면 권태로 죽음의 파멸을 스스로 초래할 것이다. 인간에게는 반드시 개인적, 사회적 고뇌가 필요하다. 그것들을 기쁘게 받아들여 즐겨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도중에 뉴질랜드에서 내려 사무실로 돌아와 다시 열심히 일을 시작했었다.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었다.
  
[ 2020-04-20, 23:2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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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20-04-21 오전 7:47
우와 정말 감탄할 만한 명문입니다
산다는 건 말썽입니다. 죽으면 말썽이 없지요. 산다는 것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요? 당신의 혁대를 끄르고 말썽을 찾아 나서는 거죠
감사합니다 오늘도 선생님의 명문에 귀가 열리는거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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