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씌워주면 사람이 달라진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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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대 위에 있는 재판장의 각진 턱은 그의 강인한 성격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가 증오에 찬 눈으로 피고인 석에 있는 세 사람에게 말했다.
  
  “나는 피고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판사 생활 삼십 년에 사형을 선고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기징역을 선고합니다.”
  
  내가 지켜보았던 한 법정의 선고 장면이었다. 무기징역 자체도 앞으로 남은 그들의 인생을 박탈하는 무서운 형벌이다. 민주주의 사회라고 해도 재판장은 인간을 죽일 수도 있고 삶을 박탈할 수도 있었다. 유시민 씨가 개인적으로 하는 유튜브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판사는 하나님 다음으로 무서운 사람이 아니겠어요? 국회의원들에게 벌금 백만 원 이상만 부과하면 금배지가 떨어지는 거잖아요? 대단한 권력이죠.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판사를 탄핵할 수 있으면서도 아무도 그렇게 못해요.”
  
  운동권 시절 구속되고 재판을 받아본 유시민 씨는 대통령후보로 부상해 있어도 과거의 두려움이 말 속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청문회가 있을 때였다. 국회의원 한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마음대로 질문을 하지 못해. 그렇게 했다가 나중에 잡혀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어. 정치를 하다 보면 흠이 없는 사람이 없잖아? 질문하면서도 무서워한다니까.”
  
  이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판사나 검사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그 앞에서 벌벌 떨곤 했다. 삼십 년이 넘게 법정을 드나들었다. 목에 법의 밧줄이 걸려있는 피고인들은 판사가 염라대왕같이 보이지 않을 수 없다. 판사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할 말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판사의 눈치를 보면서 죄인같이 행동했다. 부장판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변호사로 바로 법정에 나온 한 사람이 변론하는 광경을 우연히 옆에 있다가 본 적이 있다. 그는 만면에 상업용 미소를 지으며 재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재판장님이 얼마나 힘드실지 경험을 해 봐서 잘 압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변론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걸 관대하신 재판장님의 처분에 맡기겠습니다.”
  
  그는 변호사로서 법정 무대에서 자신의 소중한 역할을 포기한 것이다. 부장판사를 했던 자신의 전관 경력을 보고 잘 처리해 달라는 뜻으로 들리기도 했다. 그렇게 그 앞에서 양같이 온순하고 쥐죽은 듯 말이 없으면 판사들은 그 일시적인 연기를 보고 잘 봐줄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서는 더 잔인하게 짓밟히기도 하는 걸 보곤 했다. 인간성이 나빠서가 아니다. 재판이라는 업무를 반복하다 보면 법대 아래서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이 보이는 게 아니라 책상 위에 쌓여있는 종이 더미 중에서 기록 한 권이 보일 뿐이다. 사무처리 기준에 따라 기계적으로 형량을 결정한다. 그게 보통의 재판이었다.
  
  아주 희귀한 경우도 보았다. 그런 상황을 즐기는 재판장도 있었다. 마치 개구리가 모인 곳에 돌을 던지는 아이의 심술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아이는 장난이지만 개구리는 죽을 지경인 것이다. 더러는 아주 교만한 판사도 있었다.
  
  변호사를 오랫동안 하면서 판사를 보는 눈이 나름대로 생겼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예의바르고 겸손한 신사들이다. 사람들을 대하는 부드러움과 교양이 천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달라졌다. 인간은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그런 것 같다. 비위에 맞지 않으면 꼭 뒤끝이 있는 게 판사들이기도 했다. 언젠가 그 보복을 받는다.
  
  소크라테스는 법관이란 겸손하게 듣고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지만 법정에 미세먼지처럼 가득 들어찬 거짓말에 절여진 판사는 불신이라는 직업병들을 앓고 있었다. 오랫동안 변호사를 해 오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판사의 마음을 움직이는 어떤 영적인 힘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보호하는 사람은 판사가 아무리 교만하고 악해도 성령이 들어가 그의 판결을 바꾸어 놓곤 했다. 물론 악령이 작용해서 마귀의 수법이 횡행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나는 그렇게 믿으면서 재판에 걸린 사람들에게 성령이 재판장의 마음에서 작동하도록 기도하라고 한다. 내남없이 인간을 두려워했던 우리들은 도대체 누군가? 인간은 오늘 있다가 내일에는 없어지고 마는 존재다.
  
  
  
  
[ 2020-04-28, 22:4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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