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비서를 호텔방으로 부르던 대권(大權)후보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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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 잠시 공직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는 권력의 실세 주변에서 이상한 말이 퍼지고 있었다. 여성 비서들이 그 분의 집무실에 들어가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들어가면 추행을 한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 권력가가 간접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의 말단 연구원이었다. 우연히 그 분의 여비서 한 명으로부터 직접 이런 얘기를 들었다.
  
  “그 분이 안가(安家)로 쓰시는 호텔로 서류를 가져오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그래서 호텔 로비로 가서 방으로 인터폰을 했는데 굳이 나보고 방으로 올라오라고 하시는 거에요. 그런 게 정말 싫어요. 다른 여비서들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저는 알아요. 그걸 좀 막아주세요. 여비서들이 그런 말을 해도 중간에서 도와주는 분이 없어요.”
  
  나는 좀더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 무렵 나와 친한 안전기획부의 수사국에 근무하는 요원이 있었다.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수사국에 그 대권후보의 그동안의 난잡한 여성 관계가 자세히 조사되어 있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내용까지 알려주었다. 노리개감이 됐다고 모욕감을 느끼는 여성들의 분노하는 수위가 높아지고 있었다. 우연히 청와대 민정수석을 했던 분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에 대한 약은 생각과 처신이 모자랐던 나는 그 대권후보에게 진실을 알려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 자신이나 주변부터 깨끗이 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런 얘기들은 자칫하면 비밀이 누설되고 관련된 사람들이 다칠 우려가 있었다. 나는 한밤중에 내가 확인한 사실들을 원고지 위에 펜으로 한 자 한 자 썼다. 그리고 그 서류를 노란 봉투에 밀봉해서 대권후보에게 보냈다. 다음날 직속상관인 사람이 나를 불렀다.
  
  “어르신이 노발대발하시고 자네를 당장 잘라버리라고 하셨어.”
  나는 즉석에서 해고 통고를 받았다. 그가 덧붙였다.
  
  “자네는 써 올린 것들이 사실이라고 믿나? 다 거짓이야, 어르신이 자네를 잘라버리라고 하신 건 그런 말을 듣고 자네가 바로 세뇌되어 버렸기 때문이야.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니라고 하면서 설득을 했어야지,”
  
  엉뚱하게 내가 뒤집어쓰고 나쁜 놈이 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써 올린 글이 진실이라고 확신했다. 상관이라는 사람이 오히려 사실을 왜곡하면서 권력자의 비위를 맞춘 것 같았다. 조선시대 상소를 하고 목이 잘리는 강직한 선비의 모습이 눈에 떠올랐다. 성경 속의 세례요한도 왕의 여자관계를 말했다가 목이 잘려 쟁반 위에 놓여져 하룻밤 술판의 노리개가 됐었다. 내가 그 꼴이 됐다. 그 며칠 후 기관의 최고 책임자가 나를 불렀다.
  
  “자네가 그분의 여자관계를 써 올렸다면서?”
  “그렇습니다.”
  
  “이 사람아 써 올려도 그걸 소화시킬 능력이 있는 인품인가를 먼저 보고 해야지 자기 식으로만 생각하고 질러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여튼 내가 어르신께 악의로 한 것은 아닐 거라고 변호는 했네.”
  
  그 후 나는 미운 오리새끼가 되면서 소외를 당했었다. 그 대권후보를 보면서 생각했었다. 그의 귀는 불타고 있었다. 그런 귀로는 바로 들을 수 없었다. 자기만 잘났다고 믿는 교만한 마음이 귀를 불태워 다른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하게 했다. 자신을 왕같이 추켜세우는 달콤한 말만 들어가는 것 같았다.
  
  지난해 한 도지사가 수행비서와의 관계가 불거져 인생의 절벽에 떨어지고 감옥으로 갔다. 부산시장이 성추행으로 정치생명이 끊어지고 서울시장이 자살했다. 성인(聖人)같이 받들어지던 이름의 무게를 순간적으로 견디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성경 속의 사도 바울은 자기는 어떻게 해도 몸의 죄를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죄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의 몸은 그 죄를 이기기가 불가능한가 보다.
  
  고교 후배인 박원순 시장은 삼십년 전 건물의 위아래층에서 변호사를 하면서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며칠 전 서울시장의 공관으로 찾아가 가족들을 만나 위로했다. 돌아오면서 시장 밑에 있던 누군가가 쓴소리를 하고 그를 바로잡았으면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 그런 짓을 해서 욕을 먹었지만 바른말을 해 주는 건 순진함이나 어리석음만은 아닌 것 같다.
  
  
  
  
[ 2020-08-17, 14:4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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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20-08-17 오후 5:42
글세요 쓴소리 한사람이 아무도 없었을까요 ?
수많은 주윗사람과 부하직원들 모두 모른채
아무도 쓴소리 허지 않았다면
박원순의 인격이나 수준도 완전 걸래라
말한들 반박이 어려워 보입ㄴ;ㅣ다
  이중건   2020-08-17 오후 3:45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혁명이란 말이 떠오르네요. 진실이지만 말하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뜻이겠지요. 북한세상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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