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山寺)에서 무쇠솥 사다 사골을 고아먹는 땡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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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십대 중반에 공부하던 절이 있었다. 합천의 산골 마을에 있는 퇴락해 가는 절이었다. 서까래가 내려앉고 기와가 흘러내려도 신도가 없는 절은 고칠 수가 없었다. 아궁이에서 낙엽을 태우면 방구들의 균열 사이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곤 했었다. 나는 중도 없는 그 절의 구석방 남포불 아래서 몇 달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친구의 어머니인 보살이 아침이면 낡은 법당에서 염불을 하곤 했다. 그 시아버지가 지은 절이라고 했다. 세상을 떠돌던 친구의 형이 그 절로 들어와 중이 됐다. 그리고 무너진 절을 다시 일으켰다. 옛날을 돌이켜 볼 겸 한번 그 절을 찾아갔었다. 그 절의 주지 스님이 된 친구의 형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뮤지션으로 연주를 하면서 떠돌아다녔어요. 그러다가 모든 걸 다 버리고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와 중이 됐죠. 무너져서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이 절에 혼자 묵으면서 내 손으로 절을 일으켰어요. 한겨울에 지게를 지고 눈 덮인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서 내려오다가 눈구덩이에 거꾸로 처박힌 적이 있어요. 허공에 매달린 채 발이 대롱거렸죠. 혼자 사니까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거에요. 나 혼자 거꾸로 처박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되풀이했죠.”
  
  그의 노력에 절은 기름기가 도는 반듯한 명소가 된 것 같았다. 뮤지션이었던 그는 ‘산사(山寺) 음악회’도 개최하고 여러 문화활동을 한다고 했다.
  
  “이 절에 혼자 살면 무섭지 않아요? 귀신이 안 나와요?”
  내가 반쯤은 놀리는 말같이 물었다.
  
  “귀신은 안 무서운데 사람이 더 무서워요. 한밤중에 절의 주차장에 헤드라이트 빛이 비치고 그 속에 젊은 사람 몇 명이 있으면 혹시 강도라도 아닌가 하고 등골이 서늘하죠. 나는 혼자니까.”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절을 다녀온 지 일년쯤 지난 후였다. 그 절의 주지 스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법률상담을 했다.
  
  “우리 절에 수호지의 노지심 같은 중놈이 들어와 나를 괴롭히는데 법적으로 쫓아내 줄 수 없나요?”
  “어떤 내용입니까?”
  내가 물었다.
  
  “어느 날 지나가던 중 하나가 우리 절을 찾아와서 이곳에 묵으면 안 되겠느냐는 거에요. 나는 환영했죠.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하고 같이 경전을 공부하고 일을 하자고 했죠. 그런데 며칠 후부터 당장 그게 아닌 거에요. 내가 지어 바치는 밥을 먹으면서 ‘이게 반찬이냐?’고 투정을 부리는 겁니다. 너무 화가 났어요. 혼자 밥을 해 먹으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 땡초 놈이 읍내에 가서 무쇠솥을 사다가 사골을 고아 먹는 겁니다. 소송을 해서 그 땡추 놈을 좀 쫓아주세요.”
  
  산 속의 한적한 절에도 공포가 있고 복잡한 세상이 들어와 들끓고 있었다. 깊은 산 속에 오두막을 지어놓고 평생 살던 법정스님이 쓴 수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느 날 서울에 갔다 왔더니 누군가 창호문을 다 뜯어놓고 방안의 물건들을 흐트려 놓았더라는 것이다. 인근 마을의 심술궂은 청년의 짓이었다. 애써 참는 스님의 분노가 행간 속에서 그대로 전해져 왔다. 고요한 산 속도 고요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기독교계에서 유명한 성자(聖者)로 알려진 고영근 목사가 살아있을 때 그가 사는 까치산 역 부근의 언덕 위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아들이 사는 개인 주택의 대문 옆 주차공간을 개조해 혼자 살고 있었다.그 삶의 여정은 가시밭길이었다. 성경 속의 세례요한처럼 독재에 대해 바른 말을 하다가 재판을 받고 독한 감옥살이도 여러 해 했다. 그는 어둠침침한 방에서 성경을 읽고 글을 쓰고 있었다. 도심 속의 은자(隱者)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마음의 고요함이 전해져 왔다. 온갖 말썽 속에서 여과된 고요함 같았다.
  
  소박한 방 안의 벽에는 작은 철제 캐비닛이 보였고 그 안에 그가 썼다는 마흔네 권의 책이 겸손하게 서 있었다. 그는 세상의 험한 물결을 그대로 받고 다가온 십자가를 지고 험한 세상의 마지막까지 거의 다 온 것 같았다. 사람들은 번잡한 세상을 피해 깊은 산 속을 찾아간다. 그곳도 고요하지만은 않다. 마음속에 세상의 일을 그대로 품고 있으면 조용한 산이라도 산이 아니다. 현인들은 고요한 속에서 고요함은 참다운 고요함이 아니라고 했다. 소요(消遙)한 가운데서 고요함을 지녀야 비로소 심성의 참 경지를 얻은 것이라고 했다. 쓰나미 같은 세상의 비난과 저주 속에서 고요함을 가지려고 기도해 본다.
  
[ 2020-08-30, 17:0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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