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주례사
“대한민국이 나오는 주례사는 처음 듣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분홍색 꽃비가 난분분 떨어져 내리던 봄날이었다. 내가 알고 지내던 젊은 기자의 결혼식장으로 조금 늦게 들어섰다. 주례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신랑 신부의 등이 보이고 그 사이에 주례의 얼굴이 보였다. 하얀 머리 아래 사자 같은 고집 센 턱이 보이는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이었다.
  
  “일곱째, 우리는 천재들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천재들은 성격이 괴팍한 경우가 많고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죠. 그들의 삶은 불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몇 명의 천재 덕으로 우리는 오늘날 잘 살고 있습니다.”
  
  주례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천재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선물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여덟째 우리는 혼자만 행복하면 안됩니다. 지금 북한은 우리보다 평균신장이 십센티나 부족한 사람들이 짓밟힌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태어난 신랑 신부는 진정으로 행운아입니다. 대한민국이 불행하면 결코 신랑 신부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신랑은 기자로서 국가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대한민국이 나오는 주례사는 처음 듣네” 하고 내뱉으면서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례사가 계속되고 있었다.
  
  “아홉째 아침에 일어나면 나가서 막 싸워야 합니다. 얻어맞고 넘어지면 일어나서 덤비고 다시 복수해야 합니다. 패배가 두려워서 또 시행착오가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가 경험한 인생철학을 결혼을 하는 기자에게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열째 신랑은 기자입니다. 그건 글 쓰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좋은 글을 쓰려고 하지 마십시오. 많은 글을 쓰기를 권합니다. 틈틈이 고전을 읽으십시오. 문학은 인간의 본질을 알게 해 줍니다. 철학은 깊이 있는 사람을 만들어 줍니다. 인문학은 우리에게 지혜를 줍니다.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독서를 많이해야 합니다.”
  
  독특한 체험과 인생관이 담긴 주례사였다. 좋은 글을 쓰기보다는 많은 글을 쓰라고 했다. 불가마 앞에서 자신이 만든 그릇들을 살피면서 망치로 깨어 버리는 도공의 모습이 떠올랐다. 많은 그릇을 빚고 그 중에서 좋은 작품만 남기는 방법이었다. 글도 많은 걸 쓰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의 손길이 들어온 게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단번에 명작을 만들려고 하다가는 평생 아무 작품도 못 쓰고 죽을 수가 있다.
  
  주례사에는 이례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렇다. 모두 입으로는 ‘민족과 국가’를 말하지만 마음 속에 대한민국을 간직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한 정치드라마를 보다가 귀중한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다. 드라마 속의 대통령 후보는 한 사람으로부터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으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 대사 한마디가 나의 가슴속에 깊숙이 박혔었다. 모두들 대통령이 되는 데만 온 신경이 집중이 되지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로 만들고 싶다는 소망은 그 다음이었다.
  
  나는 대통령 꿈을 꾸던 문재인 변호사와 개인적으로 단 둘이 만난 적이 있었다. 그에게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으냐고 물었었다. 형식적인 구호 말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진짜를 한나라고 솔직히 얘기해 보라고 했었다. 그는 ‘검찰개혁’과 ‘경제민주화’라고 했다. 오만하게 남용되는 국가권력은 억제되어야 한다. 나는 검찰개혁의 본질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경제민주화도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를 줄여야 하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연설문에서 이렇게 정리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정말 좋은 말이었다.
  
  조갑제의 주례사는 기자들이 가져야 할 정신과 투지 그리고 국가관에서 정진을 위해 쌓아야 할 개인 수행방법들이 응축되어 있었다. 나는 법대에 입학하고 헌법 시간에 개개인의 인간이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는 헌법 조문을 보았다. 개개의 인간이 귀중하다는 선언이 헌법에서 가장 중요하고 그걸 위해서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후렴구같이 노래 부르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관념이 아니라 소중한 개인이었다. 국가주의 시대 일회용의 소모품 같은 병사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내 자식이나 손자 그리고 후손을 위해 그런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그게 자유민주주의 아닐까.
  
  결혼식장인 국회후생관을 나왔다. 국회의 뜨락에는 봄이 한창 익어가고 있었다. 정원의 연못 위에는 벚나무의 그림자가 비치고 물 위에 떨어진 벚꽃 잎들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 2020-11-08, 19:1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RedBuster   2020-11-08 오후 10:11
마침 Biden 미 대통령 당선자의 연설을 듣고 난 후인지라 이런 생각이 든다. 조갑제 기자가 일찌기 권력의지를 품고서 지금쯤은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이 나라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 적어도 네편 내편 온 국민을 '갈라 치기' 당하여 '대깨문'과 같은 부류가 창궐하는 나라가 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