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개개인의 신비한 영적(靈的) 체험"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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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江)가 두 노인의 선문답(禪問答)>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검은 강물에 인근의 집들에서 흘러 나오는 불빛이 투영되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강가의 퇴락한 집 안에서 친구와 둘이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집의 탁자 위에는 친구가 모시는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상이 놓여 있었다. 헬만 헤세가 쓴 ‘싯타르다’를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강가의 움막에 두 노인이 살고 있었다. 노인들은 무심히 흐르는 저녁 강물이 가르쳐 주는 여러 소리를 들으면서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나이 칠십을 바라보는 우리 두 명이 그 노인들의 삶과 겹쳐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 집 유리장 안에 목탁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저 목탁은 얻어온 장식인가?”
  내가 무심히 물었다.
  
  “아니야 대학 시절부터 불교학생회에서 예불 때면 내가 직접 목탁을 치고 경문을 읊었지.”
  “그러면 한번 해 보게”
  
  내가 권했다. 친구가 벽에 있는 유리장 안에서 목탁을 꺼내더니 목탁을 치면서 구성지게 반야심경과 예불가를 했다. 그가 목탁을 상 위에 놓은 후 말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청정(淸淨)한 절이 좋았고 향내가 좋았어. 대학 때도 불교학생회에서 용맹정진(勇猛精進)도 하고 그랬지. 부처님의 설법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줘. 부처님의 말씀은 납득이 되는 최고의 철학이야. 그런데 자네가 믿는다는 기독교는 어떤 거야?”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믿는다는 기독교라는 게 뭐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소화되지도 못한 이론을 앵무새같이 전할 순간이 아니었다. 진지하게 묻는 친구에게 나의 최선을 다해 솔직하게 내 생각과 경험을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성경을 누구보다도 많이 읽었다고 생각해. 관련되는 책도 꽤 읽었어. 그런데 성경의 그 많은 내용 중에 단 한 절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지금도 가지고 있어. 그러면 그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면서 왜 신화나 전설 같은 내용이 담긴 그 책을 읽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봐. 세상에서 재미를 주는 수많은 오락이 있는데도 말이야. 그 자체가 신비인 거야. 내가 읽은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가 나의 마음에 들어와 그걸 읽게 한 것 같아. 그게 나의 체험이야.”
  
  “어떻게?”
  친구가 물었다.
  
  “삼십대 중반쯤이었지. 직장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성경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뭐 현대인으로 교양상으로도 필요하니까 나중에 한 권 사서 읽어보자 하는 게 나의 이성이었지. 그런데 삼십 분쯤이나 흘렀을까 갑자기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마음이 밀물같이 마음으로 넘쳐드는 거야. 나는 속으로 그래 미루지 말고 퇴근 때 한 권 사가지고 들어가자 하고 결정했어.
  다시 조금 시간이 흘렀어. 갑자기 뭔가가 앉아 있는 나의 등을 물리적으로 확 밀어내는 거야. 진짜 그렇게 느꼈어. 그리고 마음에 불이 붙더라고. 일 분 일 초가 타는 것 같았어. 빨리 성경을 사서 읽으라고 하는 거야. 정신없이 사무실 빌딩 일층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몰고 광화문의 교보문고로 갔지. 얼마나 마음이 급한지 길거리에 차를 내팽개친 채 지하의 성경코너로 뛰어 내려갔어.
  서가에 두툼한 노란 책 한 권이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서 있는 거야. 미국 성경협회에서 발간한 신약 성경이더라구. 표지 뒷장에는 누군가 볼펜으로 ‘브로드 웨이 62번가’라고 써 놓았더라구. 그걸 사가지고 가서 다음날부터 미친 듯 읽었지. 남이 보건 말건 직장 사무실에서 읽었어. 고시 공부할 때보다 더 집중했어. 그렇게 서른두 번을 읽었을 때였어. 어떤 존재가 내 마음으로 들어와 희미한 목소리로 명령하는 것 같았어. 직장을 그만두라고. 사표를 내라고 말이야. 그래서 갑자기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그 기관을 그만두게 된 거지. 하여튼 난 그랬어. 논리나 이성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어.”
  
  “성경 안에 뭐가 들어있어?”
  친구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나는 그에게 신학이론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교회의 일반적인 설교내용을 전하고 싶지도 않았다. 친구에게 순수하게 내가 체험하고 생각한 것만 전하고 싶었다.
  
  “내가 느낀 것만 말할게. 서른 살의 젊은 목수 예수에게 하늘에서 영(靈)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와 들어간 거야. 그 다음부터 그는 평범한 목수인 인간이 아니었지. 예수는 부처처럼 도통한 스승을 찾았던 것도 아니고 수도 생활을 한 것도 아니야. 그냥 하나님의 영에 이끌리고 직관적으로 모든 걸 알아버린 것 같아. 기독교를 만들었다는 사도 바울도 그래.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목에서 번쩍하는 빛을 보고 나가 떨어졌어. 그때 영이 들어온 거야.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 영에 이끌려 다녔어. 예수의 나머지 제자들도 불같이 내리는 영을 맞이한 후 질적인 변화를 일으켰지.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하는 그 신기한 영의 존재가 뭔지 나는 지금도 궁금해. 무당들이 귀신 들리듯 성령(聖靈)에 씌워 사는 게 크리스찬 아닌가 싶어. 그래서 나는 기독교는 개개인의 신비한 영적 체험이라고 생각해. 이성이나 과학을 중요시하는 똑똑한 사람들은 증명하라고 하고 모두 비웃지. 그렇지만 나 개인적으로 그렇게 느껴.”
  
  어느새 시계가 밤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 옆에서 두 노인의 얘기는 끝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 2021-01-10, 10: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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