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 고발의 출판기념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바람에 실린 가을비가 뿌리던 이천팔년 시월 이십사일 오후 여섯 시경이었다. 나는 팔레스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열리는 고교 동기 윤 변호사의 출판기념회장으로 들어섰다. 그는 변호사를 하면서 소설로 법조의 내막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최초의 법조인이었다. 법조 내부에서 그에 대한 뒷말이 많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법조 내부는 성역같이 비밀이 지켜지던 시절이었다. 그가 그 금기를 깬 최초의 인물쯤 됐을 것이다. 그는 꾸준히 그런 활동을 해 왔다.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제국’이란 제목으로 로펌 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소설을 써서 발표했다. 그가 처음 소설을 발표할 때와는 사회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았다. 출판기념식장에는 대한변협 회장부터 시작해서 법조계 여러 인사들이 참석해 주인공을 칭찬해 주고 있었다. 주인공인 작가 윤 변호사가 단 위에 올라 쑥스러운 표정으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젊었을 때에는 남들이 출판기념회를 연다고 하면 그런 걸 왜 하나? 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이제 세월을 보내고 나이가 먹었나 봅니다. 뭔가 이벤트를 만들어 그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는 오래 전 첫 소설을 쓰고 나서 법조계 내부에서 받은 비난과 손가락질을 간단히 언급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나이를 먹으니 모든 게 용서가 되는군요.”
  
  법조계의 완고한 고정관념을 가진 판사들에 대한 얘기 같았다. 그때 파티장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참석한 사람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공손하게 인사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안경을 쓴 둥그런 얼굴에 작달막하고 뚱뚱한 남자였다. 그의 인사를 받는 사람마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굳어지면서 의아해 하는 표정이었다. 내 옆에 서 있던 변호사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옆에 서 있는 변호사에게 물었다.
  
  “저 사람 혹시 법원장을 하던 이 판사 아닙니까?”
  “아닐걸요, 법원장을 하던 이 판사 그 사람 얼마나 교만하고 권위적이었는데요? 변호사치고 그 사람한테 혼이 안 난 사람이 없을 거에요. 그 사람일 리가 없어요.”
  
  그 변호사는 머리를 흔들면서 부인했다. 내가 인사를 하고 다니는 작달막하고 뚱뚱한 남자를 자세히 보았다. 법원장을 하던 이 판사가 틀림없었다. 나 역시 법정에서 그에게 받은 모멸감으로 가슴에 깊은 상처가 나고 피가 흘렀었다. 그 얼굴이 잊혀질 수가 없었다. 그런 그가 저렇게 공손하고 겸손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게 기적인 것만 같았다.
  
  그는 판사 중에서도 최고의 엘리트군(群)에 속했다. 그 탁월한 능력으로 어떤 사건도 기록 몇 장을 읽고 오 분 이내에 결론을 낸다는 소문이었다. 엘리트층이나 고위관료, 부자들에게 그의 태도는 매끄러웠다. 항상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가난하거나 힘없는 바닥 사람들에게는 잔인하다는 평가였다. 절규하던 여인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병 속에 넣어 그에게 보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기사에는 그걸 본 그의 반응도 적혀 있었다. 그는 “내가 왜 그걸 선물 받아야 하나요?”라고 되물었다는 것이다. 그는 판사를 할 동안 자신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법조계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 역할을 하는 소설이나 수필들이 나와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출판기념회의 사회자가 단 위의 마이크 앞에서 하는 얘기가 들려오고 있었다.
  
  “요즈음 많은 법정 드라마가 나오고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변호사들의 좌절과 고민 그리고 사랑이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죠.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았던 직업적인 성역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분야든 이왕 무너지는 성역이라면 차라리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진해서 자기 분야를 알렸으면 합니다. 수필로 또 소설로 그 애환과 수고들을 세상에 내놓았으면 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한 윤 변호사님의 소설은 선구자적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나 역시 청부 살해당한 한 여대생의 한맺힌 죽음을 폭로하는 소설을 썼었다. 그리고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기도 했다. 과거 인권변호사들이 자청해서 권력에 대항하고 감옥으로 들어갔다. 장막 속에 숨겨진 범죄와 불의는 비밀이라는 명분으로 보호해야 할 게 아니라 햇빛에 드러내는 일도 변호사의 소명이 아닐까 역설적으로 생각해 봤다.
  
  
  
  
[ 2021-01-19, 13: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