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삼십 주년 대학동창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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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시절 학교도서관은 공부하는 학생들로 항상 꽉 차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들고 햇빛이 내려쬐는 잔디밭에 모여 함께 먹으면서 장래 펼쳐질 화려한 꿈을 꾸기도 했다. 생기와 희망이 넘친 이십대였다. 세월의 강물은 우리를 청년에서 장년으로 데려갔고 대학입학 삼십 주년이 되는 총동창회가 열렸었다.
  
  둥근 달이 걸려있는 밤하늘 아래 우리가 공부하던 중세의 성채 같은 석조건물 앞 광장에 놓인 테이블들에 동창들이 모였었다. 나이들이 오십대였다. 몸에 달라붙는 청바지와 빨간 티셔츠를 입고 학교 잔디에서 웃음짓던 예쁜 여학생들이 어느새 중후한 여사님들의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활기찬 남학생들은 대부분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되고 배가 나온 중년의 신사들이 되어 있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의 꿈을 이루고 인생의 전반부를 성공으로 장식한 많은 동창들이 참석했다.
  
  모래시계의 검사로 세상에 알려진 홍준표 의원이 앞으로 나가 인사를 했다. 얼마 전 해양수산부 근무를 마친 최낙정 장관이 보이고 연합신문 편집국장이 보였다. 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 기업가 등 많은 동창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인생으로 치면 그 무렵은 온갖 아름다운 색깔의 낙엽으로 물든 가을쯤이었을 것이다.
  
  세월의 바람이 불면서 낙엽들이 하나씩 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윤기가 있을 때 부드러운 바람 속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천천히 하강하는 낙엽이 있었고 그 옆에 다른 낙엽이 조용히 또 내려앉는 모습이었다. 정년퇴직을 한 친구들은 인생 이막을 충실히 살아보려고 꿈을 꾸었다. 젊어서 하지 못했던 피아노를 배우고 텃밭을 가꾸고 서예를 하고 춤을 추러 다니는 것 같았다.
  
  다시 시간이 흘러 우리들은 칠십 고개를 바로 코앞에 두고 있다. 오래된 자동차의 내부 부품들이 하나씩 둘씩 탈을 일으키듯 몸들이 녹이 슬고 붉은 물이 속에서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대학 동창 모임에 성실하게 나오는 신문사 편집국장을 했던 친구가 있었다. 볼 때마다 얼굴에서 병색이 돌고 부어 있었다. 어디 아프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했다. 얼마 후 그 친구가 죽었다는 부고가 전해져 왔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암을 앓고 있으면서 그 내색을 하지 않고 모임에 참석했던 것이다. 죽기 전까지 평소에 하던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다가 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은 죽음에의 초대장인 것 같다. 건강검진을 무심히 받았는데 의사가 다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암 선고를 하더라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이제는 그런 경우를 당해도 남들이 애석해 하지 않는 나이가 된 것 같다. 마지막 삶의 이동들이 시작되는 것 같다. 더 이상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친구 중에는 지방으로 집을 옮기는 경우도 더러 보였다.
  
  오늘은 이십 년 전쯤의 대학입학 삼십 주년을 기념하는 총동창회에 갔던 일을 내가 써놓았던 일기에서 보았다. 돌이켜 보면 그때도 젊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항상 지금이 가장 젊은 때인데 늙었다고 여겨 왔다. 앞으로 십년이 흐른 후 지금을 생각하면 참 젊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잘 살아온 것일까? 내게 주어진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까. 문득 도서관에 가서 읽었던 조병화 시인의 두툼한 노년(老年)의 시들이 뇌리에 떠오른다. 노년의 시인은 고독에 떨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혼자 살면서 병으로 먼저 죽은 아내의 방에서 공허를 느끼고 있었다. 데려가실 때가 언제냐고 그분께 수시로 묻고 있었다. 한겨울 공중에 매달린 쭉정이처럼 죽을 때 죽어지지 않을까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시인은 수액이 빠진 고목이 어느 날 툭 쓰러지듯이 세상을 떠난 것 같다. 만약 그가 그 순간을 시로 썼다면 ‘아가야 어서 오너라 수고했다’라고 하면서 안아주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리지는 않았을까.
  
  남은 시간 누군가를 더 사랑해야 하겠다. 이제야 새로 깨달은 부분이 있다. 주님은 사랑하라고 했지 사랑 받으라고 하지 않았다. 이번 주말은 강가의 낡은 집에 혼자 살면서 경전을 읽고 있는 몸이 불편한 친구를 찾아가 밥을 해 먹으면서 진리가 무엇인지 삶이 무엇이었던지를 진지하게 토론해봐야겠다. 다정한 이웃 낙엽인 동창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 2021-02-28, 12:2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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