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오탈자(五脫者)'의 슬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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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동의 네거리 빌딩에 있는 선배 변호사의 사무실에 들렀다. 팔십대를 바라보는 노인 변호사 두 분이 있는 곳이다. 고등법원장을 지냈던 한 분은 노인요양 시설에 있으면서 그곳에서 출근을 하는 것 같았다. 부장판사를 했던 다른 한 분은 변호사업은 중단하고 힘들고 어려운 후배 변호사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이제는 본인이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인데도 끝없이 낙오하는 법조 후배들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걱정하고 행동으로 돕고 있는 분이었다.
  
  “요즈음 법조인 사이에 돌아다니는 ‘오탈자’라는 말을 알아요?”
  그가 불쑥 말했다. 탈북자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오탈자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로스쿨 출신이 오년 이내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더 이상 응시 자격을 주지 않고 탈락시켜 버리는 제도를 말하는 거죠. 그래도 로스쿨 들어간 아이들은 대학시절 성적을 올 에이를 받은 우수한 사람들이에요. 그 아이들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로스쿨을 다녔는데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주홍글씨를 가슴에 박아 아예 법조의 절벽 아래로 쓸어버리는 거지. 너무 잔인한 것 같아. 그 탈락자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다른 직장에 취직을 할 때 로스쿨 나왔다는 건 경력에 쓸 수도 없어요. 인생을 출발하는 한창 나이에 이것도 저것도 될 수 없이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되어 버릴 수 있어요. 본인들도 절망하고 말이죠.”
  
  선배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계속했다.
  
  “우리 때도 고시 낭인이 많았죠. 그렇지만 고시에서 떨어진 많은 친구들이 대기업에 들어가 다시 도전해서 사장이 되고 회장이 된 경우도 많아요. 사회적으로는 오랫동안 판사를 한 나보다 훨씬 세상에 기여를 많이 했죠. 그런데 로스쿨에서 변호사시험에 탈락한 아이들에게 그렇게 잔인한 주홍글씨를 박아주면 안 되지. 며칠 전 그 아이들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례를 읽어보니까 너무 얼음장 같이 차고 잔인하더구만. 나도 젊은 시절 폐병을 앓고 고시에 떨어진 경험이 있어서 마음이 짠한 거야.
  그래서 로스쿨에 연락해서 그런 아이들 몇 명의 연락처를 달라고 했지. 그 말을 듣고 화를 냈어요. 로스쿨 아이들 반 이상이 그렇게 낙오하고 절망을 하는데 학교에서 그 연락처 정도도 몰라서 되겠느냐고 했어요. 가르친 아이들의 관리를 그렇게 하면 안되요. 그렇게 해서 한두 명을 만나봤는데 모자를 푹 눌러쓰고 혼이 다 빠져나간 것 같더라구요. 그 아이들을 되살려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패자들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어떤 제도적 대안도 마련되야 할 것 같아요.”
  
  나는 그런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인간이란 그렇게 둔감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밤 열 시경 지하철 2호선 안이었다. 칠십대 중반의 노숙자 차림을 한 노인이 드문드문 앉아있는 승객들을 향해 칫솔 셋트를 들고 사달라고 외마디 소리를 치고 있었다. 하얀 얼굴에 두꺼운 안경을 쓴 지적인 인상이었다.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나온 경주(慶州)의 천재였다. 고시 공부를 하다가 낭인이 된 사람이었다. 비참한 모습에 가슴이 짠했다.
  
  다음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고시 공부를 하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꿈 속의 나는 고시 낭인으로 십 년 세월을 허송하고 있었다. 일차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렀다. 자신만만했다. 당연히 합격할 것 같았다. 행복이 곧 다가올 것 같았다.
  
  나는 전화로 합격 여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내게 합격자 명부에 나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이 시험을 친 친구들은 다 합격을 했는데 나만 탈락한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확인해 달라고 간절히 사정했다. 이차 시험장에 갈 자격조차 없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했다. 모든 게 끝이었다. 더 이상은 시험을 칠 수 없게 된 것이다. 가슴 아파하는 늙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독서실에서 열심히 형법책을 보던 지난 세월이 파노라마같이 떠올랐다. 그 모든 게 물거품 같이 공허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깊은 물속에 빠진 것 같이 허둥댔다. 그러다가 깼다. 꿈이었다. 현실의 나는 실패한 청년이 아니고 인생 칠십고개까지 살아온 노인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오탈자’라는 청년들의 아픈 마음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2021-03-01, 14:3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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