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의 가출(家出) 체험記
“해를 넘기지 말고 집으로 들어가. 더 버티면 들어가려고 해도 머쓱하고 어색해지기 마련이야."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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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사랑방 같이 서너 명의 고등학교 동기가 모인 자리였다. 그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직장에서 퇴직을 한 후 나는 가출을 하고 싶었어. 평생을 직장에 가정에 묶여서 숨도 쉬지 못하고 기계같이 살아온 것 같았어. 그래서 집을 나가기로 결심을 했지. 내가 처음 생각한 건 가톨릭의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修士)가 되거나 절에 가서 중이 되는 거였지. 그래서 알아봤어.”
  
  “그랬더니?”
  내가 되물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수도원에서 작은 방이나 하나 얻어 일을 하고 살아보려고 했더니 나같이 이미 결혼을 했던 적이 있는 사람은 자격이 없다는 거야. 그래서 포기했지. 절을 알아봤는데 정식으로는 이미 나이상으로 승려가 되기가 불가능했지. 대신 돈을 많이 기부하면 승적(僧籍)을 얻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였어. 그래서 그 다음으로 내가 생각한 건 고시원을 얻어 사는 거였어. 그래서 그렇게 했지.”
  
  “집은 어떻게 말하고 나갔어?”
  “내가 받는 연금이나 그밖에 통장 같은 걸 전부 집사람에게 줬어.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말이야. 그리고 나 혼자 나갔지. 그렇게 해도 완전히 모든 것과의 연결은 끊을 수 없었어.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도 가고 해야 하니까 말이야. 그런대로 시간이 일 년쯤 흐르니까 차차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더라구. 전에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앞에 다가오는 거야. 그렇게 살다가 다시 집에 들어가게 됐어. 집에서는 시간이 제법 흐르니까 오해를 하더라구. 내가 혹시 다른 여자라도 생겨서 그렇게 하나 의심을 하더라구.”
  
  나이를 먹으면서 그동안 묶여있던 끈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퇴직을 한 남편이 집에 있으면 심리적으로 불편해 하는 아내들도 많은 것 같았다. 어떤 친구는 혼자 오피스텔을 얻어 살고 있다. 또 다른 친구는 아내와 황혼이혼을 하고 서울 근교의 강가에서 혼자 살고 있기도 했다.
  
  나도 지난해 연말 아내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간단히 짐을 챙겨서 집을 나간 적이 있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적어도 몇 달은 견딜 작정이었다. 양수리와 양평 지역의 월세방을 알아보았다. 그렇게 집이 많은데도 의외로 셋방이 없었다. 방을 얻으려면 한두 달은 기다려야 한다는게 부동산 중개사무실들의 말이었다. 푸르고 차갑게 흐르는 겨울 강가에 혼자 서서 생각해 보았다. 마음 속으로 서늘한 바람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는 것 같았다.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이혼을 하고 강가에 혼자 사는 친구를 찾아갔다. 첫날은 그 친구의 침대에서 함께 잤다. 그 친구의 방만 보일러를 틀어놓아 따뜻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그 친구의 불평이 대단했다. 내가 코를 고는 소리 때문에 한숨도 자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다음날 저녁 무렵 그 친구는 혼자 집에서 담근 과일주를 내 앞에서 홀짝홀짝 마시다가 제법 취한 것 같았다. 취중에 이 소리 저 소리 하면서 눈물까지 보이더니 침대에 올라가 스마트폰의 음악을 틀어놓고 잠이 들어버렸다. 그 옆에 함께 누웠다.
  
  시계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빛이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술을 마신 그 친구가 푸푸하고 깊은 숨을 내뱉으며 몸을 뒤척거렸다. 그가 틀어놓고 끄지 않은 스마트폰에서는 ‘이제 가면 언제 오나’하고 상여가 나갈 때 하는 청승스러운 소리만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날 보일러와 수도를 고치고 그 친구의 집 다른 방 하나로 잠자리를 옮겼다. 차를 타고 나가 이불과 요를 사고 냄비와 젓가락 숟가락을 사왔다. 장기체류할 각오였다. 혼자 사는 친구의 옆방은 군대를 간 아들이 쓰던 방이라고 했다. 한밤중이 되니까 방바닥에 깐 요 쪽으로 서늘한 냉기가 물같이 바닥으로 밀려 들어왔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갑자기 허리가 아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며칠 사이에 탈이 난 것이다. 근처 시골병원에 가서 불친절한 의사를 만나 진통제 주사 한 대를 맞았다. 며칠 사이에 초라한 노인의 꼴이 되어 버렸다. 어느새 연말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혼자 사는 친구가 뭔가 생각한 게 있는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해를 넘기지 말고 집으로 들어가. 집으로 들어갈 적절한 타임이야. 더 버티면 들어가려고 해도 머쓱하고 어색해지기 마련이야. 내가 집까지 내 차로 데려다 줄 테니까 잠시 동네 나갔다 들어오는 것처럼 당당하게 들어가 알았지.”
  
  다음날 친구는 내 짐을 차에 싣고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까지 데려다 주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 방에 들어가 침대 위의 이불을 덮고 잠 속에 빠져 들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까 아내가 식탁 앞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잘 다녀 오셨수?”
  “그렇지 뭐.”
  
  내가 멋쩍게 대답을 했다. 훈련이 되지 않은 약한 놈은 가출도 쉽지 않은 것 같았다.
  
[ 2021-03-08, 15:1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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