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로 스트레스 푼다는 은행원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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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작은 글 하나를 본 게 계속 마음에 남아있다. 은행원인 필자는 기계적이고 소극적인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퇴근 후 집에서 밤에 소설을 쓰는 것으로 극복했다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그는 등단을 한 것 같았다. 아마도 그의 앞날은 은행지점장이나 은행장보다는 소설가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문학대담에서 소설가 조정래 씨는 글을 쓰다 어느 순간 희열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런 종류의 기쁨은 종교뿐만 아니라 예술에서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런 기쁨을 알았는지도 모른다.
  
   ‘변신’이라는 소설을 쓴 세계적 작가인 카프카는 보험회사에 다니면서 오후에 퇴근해서 소설을 썼다. 사람들마다 그가 가진 외형적 직업보다 그의 정체성이라고 할까 소명이라고 할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그런 일이 따로 있는 것 같다. 해마다 정초가 되면 내가 인사를 드리러 가서 점심 한 끼를 대접하고 약간의 용돈을 드리는 아저씨가 있다. 팔십대 중반의 그 아저씨는 어머니의 친척 동생이자 시조 시인이었다. 금년 초에 만나 인사를 할 때 눈썹까지 하얗게 바랜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팔십대 중반을 넘었는데 나는 꼭 백 살까지 살 거야. 그리고 우리나라 최고의 시조를 남긴 시인이 되고 말 거야.”
  
  그 아저씨는 이미 우리나라 시조 문학계에서는 최고의 원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문학적 열정이 꺼지지를 않고 있었다. 그는 삼십대 중반 무렵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할 때부터 시조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생을 소가 뚜벅뚜벅 걷듯이 꾸준히 시조를 지어왔다. 그가 아직도 열정이 가득한 얼굴로 이렇게 말을 계속했다.
  
  “이제야 언어의 아름다움이나 시조 속에 흐르는 어떤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지금도 내 방에서 말을 갈고 닦아서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어. 그게 그냥 즐거워.”
  
  그는 언어의 보석을 갈고 닦는 세공장이였다. 소설가들의 평상시 글 작업장을 종종 보았다. 오래 묵은 책들의 냄새가 가득 밴 소설가 이문열의 작업장을 여러 번 간 적이 있었다. 책상 가득히 여러 곳에서 보내온 책들이 쌓여 있었다. 그것만 보아도 여생이 다 지나갈 것 같았다. 삼국지 수호지 그리고 그가 썼던 소설들을 다시 만드는지 교정쇄들이 보이기도 했다. 한번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소설을 쓴 그의 방대한 기독교의 지식을 어디서 얻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의 작업장 서재 아래 칸을 거의 차지하고 있는 책중의 하나를 꺼내 내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천 년이 넘는 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엄청난 결과물들이 ‘기독교 대사전’에 상당부분 수록되어 있어요. 그런 걸 참조한 거죠.”
  
  그는 그 책들을 읽으면서 엄청나게 공부한 것 같았다. 어떤 목사도 어떤 성직자도 어떤 신학자도 쉽게 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닌 것 같았다. 일산에 있는 ‘칼의 노래’라는 소설을 쓴 작가 김훈 씨의 집필실에 놀러가 이런저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의 작업장 벽을 따라 선반을 붙여놓고 그 위에 여러 권의 역사학 자료집들이 펼쳐져 있었다. 작업실 바닥에는 요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이불이 막 접어놓은 종이처럼 구겨져 있었다. 나는 글에 신들린 장인들의 작업장을 있는 그대로 보는 행운을 가진 셈이다. 서초동의 주택에서 혼자 사는 소설가 김홍신 씨의 집에 가서 그가 차려주는 저녁을 얻어먹은 적이 있다. 그가 ‘대 발해’라는 역사소설을 막 탈고했을 무렵이었다. 그가 내게 작업의 뒷이야기를 해 주었다.
  
  “원고를 시작해서 마감하는 삼년 동안 방에 빛이 들어오지 않게 두꺼운 커튼을 치고 이 방에서만 지냈어요. 글을 쓰다가 잠시 눈을 붙이면 꿈 속에서 나는 한 병사가 되어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거야. 깨서 그 장면을 연상하고 소설을 써 나갔죠. 그 원고를 다 쓰고서야 밖으로 나가 근처 야산을 산책했다니까요.”
  
  김홍신 씨도 글귀신이 씌운 사람 같았다. 재능만이 다는 아닌 것 같았다. 예전에 일본 문학의 근원지라고 할 수 있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후배 소설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에게 쓴 편지를 읽은 적이 있다. 소설가의 태도에 대해 조언을 한 내용이었다. 나쓰메 소세키는 천재는 잠시 불타다 재가 되어 잊혀지는 존재라고 했다. 그는 인내하며 끈질기게 노력한 작가를 세상은 기억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 소설가가 된 은행원이 좋은 작품을 남겼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 2021-03-12, 13:1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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