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과 나훈아
"‘울긴 왜 울어’라는 내 노래를 마이클 잭슨이 저보다 더 잘 부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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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밤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 한 편을 봤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명작을 쓴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삶을 그린 영화였다. 그는 평생 글쓰기에 미쳐서 살았다. 전쟁에 나가서도 참호 속에서 그는 공책 위에 연필로 글을 썼다.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그는 연필을 잡고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퇴원하고 나서 그는 숲 속의 창고에 자기만의 작업실을 차려놓고 글을 썼다.
  
  그가 문학적 성공을 이루자 출판사는 홍보와 마케팅에 그를 이끌었다. 책을 읽은 수많은 팬들이 그의 작업실 근처까지 몰려들었다. 마지막에 그는 출판사와 그리고 세상과 단절하고 숲 속의 자기 작업실로 들어갔다. 그는 더 이상 책을 팔아 돈을 벌지 않겠다고 했다. 죽을 때까지 명상과 글쓰기를 하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수도승 같은 한 예술인의 모습 같았다. 그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기도같이 예배같이 또는 즐거운 놀이같이 평생 한다면 그게 어떤 것이든 신의 경지에 갈 수 있지 않을까.
  
  국내에서 트롯 열풍이 불고 있다. 우리가 ‘뽕짝’이라고 과거에 무시하던 장르다. 나도 폭포같이 밀려온 미국의 삼류 팝문화에 젖어서 크면서 가수 나훈아가 부르는 노래들은 술판에서나 불려지는 천한 것 같다는 인식이었다. 그 인식이 잘못됐다는 걸 나훈아씨의 말을 통해서 깨달았다. 우연히 십구년 전 시사잡지 월간조선에 나온 나훈아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인터뷰 전문가인 오효진 씨가 이태원 뒷골목의 허름한 삼층 빌딩 꼭대기의 사무실에 있는 나훈아를 찾아갔다. 화려한 무대와는 달리 가수는 그냥 소박한 보통남자였다.
  
  그는 공연을 앞두고는 아침부터 관중이 없는 빈 무대에서 밴드들이 초죽음이 되도록 리허설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악보를 읽고 멜로디를 연주하는 건 고등학교 밴드부도 할 수 있어요. 멜로디 뒤에 있는 걸 읽어야 프로페셔널입니다. 진정으로 음악 하는 사람들은 멜로디 뒤에 있는 걸 읽고 연습해야 합니다. 제가 삼십오 년간 노래를 하긴 했어도 전에 노래한 건 정말 모르고 한 겁니다. 지금도 제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이제 막 알기 시작한 단계입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합니까?”
  오효진 씨가 물었다.
  
  “전 프로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돈을 받고 노래합니다. 받은 값을 해야죠. 값은 그냥 안 나옵니다. 피나게 연습을 해야만 특별한 게 나옵니다. 우리는 노래를 듣는 분들한테 감동을 줘야 합니다. 노래 한 곡이 대개 삼 분 나가는데 이 삼 분 안에 감동을 주려면 참말 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나라에서 훈장을 준다고 해도 거절하고 정치를 하라고 해도 사양했다는데 왜 그랬죠?”
  “그런 걸 받거나 정치에 나가면 안되요. 그냥 나훈아 하는 것도 어려워요.”
  
  “그냥 나훈아라뇨?”
  “그냥 노래하고 힘들면 술도 한잔 먹고 실수도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훈장 받으면 그 값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받는 건 좋을지 몰라도 그리고 나선 난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여당 당직자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정치를 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면 저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들 앞에 드러나거나 인기 속에 빠져 있으면 제 관리가 안되요. 제가 대전에서 초원이란 식당을 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작업복 입고 뚝딱거리고 그랬어요. 난 그런 게 좋았어요.”
  
  “작곡 작사도 직접 한다면서요? 어렵지 않아요?”
  인터뷰어가 그의 음악에 대해 물었다.
  
  “가사를 만들기가 힘들어요. 가사만 제대로 만들어지면 그 속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와요. 곡에는 꼭 시(詩)가 있어야 하죠. 좋은 시는 그 속에 멜로디가 들어 있어요. 작곡가는 곡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 시 속에 있는 멜로디를 끄집어 내는 거죠. 본능적인 감각이 있어야 해요. 억지로 만들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나훈아는 가수인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인터뷰어인 오효진 씨에게 스스로 이렇게 되물었다.
  
  “한 가지 물어봅시다. ‘울긴 왜 울어’라는 내 노래를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잘 부른다고 생각합니까? 마이클 잭슨이 저보다 ‘울긴 왜 울어’를 더 잘 부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죠. 그거야 나훈아씨가 최고로 잘 부르죠.”
  “그러면 내가 뭘 해야 합니까? 정치를 해야 합니까? 노래를 해야 합니까?”
  
  그는 가수를 넘어 노래하는 철학자였다. 그 이십 년 후 칠십대 중반이 됐다. 노인이 된 그는 흰 눈썹을 휘날리면서 국민들의 마음을 휘잡았다. 그의 가사중에 ‘테스형’이라는 노랫말이 있었다. 소크라테스를 형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다운 가사였다.
  
[ 2021-03-24, 23:1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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