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속에 갇힌 청춘들에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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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한 장례식장에 갔었다. 칠십 고개를 바로 앞에 둔 대학 동창들이 상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에는 오십 년 전 법과대학 시절 유일한 여학생이 할머니가 되어 함께 앉아 있었다. 대학 입학생들이 소집됐을 때였다. 여고생 교복을 입고 있던 예쁜 그녀에게서 환한 빛이 주위로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모든 법대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한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하던 게 기억에 떠올랐다.
  
  “대학 면접시험을 보는 날이었어. 면접이 끝나고 가는 그녀를 뒤따라가 우리 집으로 가자고 했지. 같이 집으로 갔는데 엄마와 누나가 마음에 든다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에게 잘 해주더라구. 사귈 마음이 있었는데 같은 대학에서 둘만 다니면서 연애하기가 꺼려지더라구. 그러는 사이에 파랑새는 날아가 버렸지.”
  
  그녀는 법대생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러나 용기 있는 남자는 드물었던 것 같았다. 그 시절이 떠올랐는지 할머니가 된 그녀가 장례식장에서 내게 웃으면서 물었다.
  
  “혹시 저를 선망하지 않았어요?”
  “그건 그렇지만 그 시절 내 사정이…”
  
  나는 늙어도 쑥스러운 마음으로 대답했다. 그 시절 주눅이 들고 용기가 없었다. 암담했었다. 대학 등록금도 융자를 얻어 내고 있었다. 군대를 가야 했고 대기업에의 취직도 힘들 것 같았다. 고시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려웠다. 터널 속 같은 삶이었고 그 터널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주위가 온통 회색인 것 같았다.
  
  그 시절 우리들은 대부분 군대에 끌려가 눈 덮인 최전선에서 병사 노릇을 하고 제대를 하고는 고시공부를 했었다. 그 시절 역시 취직도 쉽지 않았다. 일차시험에 몇 번 떨어진 친구는 하늘이 진짜 노랗게 보인다고 고백했다. 시험에 떨어지자 비가 오는 날 하숙방 안에서 자살을 한 대학 동기도 있었다. 암자의 뒷방에서 고시 준비를 하던 한 선배가 서울을 다녀오더니 이런 말을 했다.
  
  “봄볕이 내려쬐는 종로 거리에 갔다가 대기업에 취직을 한 친구가 가는 걸 봤어. 양복을 입고 예쁜 여자와 데이트를 하고 있더라구. 그걸 보니까 상대적으로 내가 얼마나 초라한 느낌이 들었는지 몰라. 그래서 뒷골목으로 들어가 숨어서 그 친구 커플을 봤어.”
  
  그게 젊은 날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터널의 끝은 있기 마련이다. 시간이 가면서 친구들이 하나씩 둘씩 어두운 터널을 벗어났다. 대기업에 들어가기도 하고 공무원이 되기도 했다. 오랜 굼뱅이 생활을 끝내고 교수가 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나의 터널을 벗어나면 또다른 고갯길이 놓여 있었다. 셋집을 전전하면서 작은 자기 아파트를 얻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직장 속의 또다른 가혹한 경쟁 속에서 상관의 머슴이 되어야 했다. 새벽에 출근하고 퇴근 시간이 없었다. 취하지 않는 약을 먹고 접대 자리에 가서 춤추고 노래해야 하는 친구들을 보았다.
  
  삼십대 시절 나는 이따금씩 교회에 갔다. 목사는 설교 중에 젊음 그 자체만으로도 큰 축복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청춘은 늘 나와 함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 시절 나는 칠십 노인이 된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정상을 차지하는 친구도 있고 산자락 중간에서 주저앉는 친구도 있었다. 알고 보니 각자 타고난 그릇이 다르고 거기에 자기의 몫을 담는 게 인생이었다. 같은 콩깍지에서 나란히 있던 콩이 각자 자기의 땅을 찾아가 달리 자라듯이 인간들도 그랬다.
  
  우리들은 어느새 장년의 강을 지나 바다가 보이는 넓은 강의 하류로 떠내려와 물방울이 되어 맴돌고 있는 나이가 됐다. 칠십의 노인들에겐 성공도 큰 의미가 없었다. 정상에 허무의 깃발만 꽂아둔 채 내려온 느낌밖에 없다. 과거의 장관도 사장도 돈도 성공도 실패도 큰 의미가 없다. 모두들 다시 보통사람이다. 짧은 세월 이룬 것이 모두 시간 속에 풍화되어 버렸다.
  
  우리들은 모이면 바둑을 복기하듯 청년 대학생 시절을 떠올리면서 말한다. 그때 좀더 용기를 가지고 사랑한다고 솔직히 말할 걸. 삶은 순간순간의 즐김인 것 같았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샛노란 개나리가 피고 서늘할 정도로 아름다운 붉은 진달래가 웃음을 던졌다. 그러나 그걸 볼 눈이 없는 사람에게 봄은 없었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취업이나 공무원시험을 치기 위해 공부들을 한다. 합격이라는 열매만 따려고 조급했다. 꾸준히 나무에 물을 주면 열매는 저절로 맺히는 게 삶의 진리였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잘해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각박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모이면 하는 공통된 후회들이 있다. 그때 좀더 사랑할 걸. 좀더 잘해줄 걸. 좀더 그 순간을 즐길 걸.
  
[ 2021-04-13, 10: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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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타임즈   2021-04-13 오후 5:52
군대에 끌려가... 이게 무슨 말인가? 사법연수원 2년동안 국민이 낸 세금으로 무료 공부를 하며 월급까지 받았으니, 국가에 고마움을 잔뜩 품고 살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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