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억 원어치 아이스크림과 소시지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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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육학년 가을 추석 무렵이었다. 동네에서 내 또래 몇 명이 모여 과외공부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옆에 있는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나는 그 아이를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등에 업고 미로 같은 변두리 골목길을 걸어갔다. 도중에 무거워서 잠시 그 아이를 내려놓고 쉬었다. 둥근 보름달이 하얗게 밤의 골목을 비추고 있었다. 의외로 그 행동이 그 아이의 인상에 박혔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한 번도 같이 다니지 않았으면서도 칠십 노인이 된 지금까지 우정을 계속하고 있다. 그 아이는 부자가 됐다. 공장과 회사를 가지고 수십만 평 땅의 소유자였다. 도로변에 주유소도 있고 휴게소도 가지고 있다. 돈복이 있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한번은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다리가 아파서 집에만 있었는데 심심한 거야. 그래서 노트북으로 주식을 사고 팔았지. 그런데 하루에 오억 원씩 버는 거야. 이래도 되는 건지 정신이 없어.”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그의 손은 마이더스의 황금이었다. 그가 사는 땅은 얼마 가지 않아서 수십 배 수백 배로 가격이 뛰었다. 어떤 때 그는 나보고 주식의 종목을 알려주면서 사라고 했다. 나는 주식을 한 주도 사지 않았다. 그런 때면 그는 “에이 내 말을 듣지” 하고 아쉬워했다. 그렇게 부자이면서도 그는 철저히 검소한 모습이었다. 모두가 명품을 찾는 세상에서 그는 길거리 좌판에서 파는 삼천 원짜리 운동화를 사서 신고 싸구려 등산조끼를 입고 다녔다. 그의 사무실에 가 보면 붉게 녹이 슨 낡은 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부자가 되는 그의 길에 내리막이나 큰 위기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수시로 돈을 뜯으려는 인간 모기떼가 있지만 그는 굳건했다. 한번은 그에게 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근본적인 질문을 했었다.
  
  “난 말이지, 돈이 나의 모든 것인 것 같아. 내가 돈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는 거지. 그게 없어 봐 얼마나 무시하겠어? 내가 번듯한 직책이 있어? 아니면 공부를 잘해서 얻는 학위가 있어?”
  
  그의 솔직한 대답이었다. 나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친구인 그에게 돈을 쓰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 무렵 나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후 오갈 데 없는 전과자를 돌보는 단체를 돕고 있었다. 그 단체 안에 있는 예배당 안에 전자 올갠을 기부해 보라고 친구에게 권했다.
  
  “나는 전과자들한테 돈을 내는 건 싫은데…”
  
  친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눈치를 보면서 응했다. 그에게 말로만 권하지 않고 행동으로 시범을 보여야 했다. 나는 한 사회단체에 내 분수로는 거액인 돈을 기부한 적이 있었다.
  
  “나도 당신이 낸 액수만큼 기부할께. 그런데 꼭 돈으로 해야만 하는 거야?”
  그걸 보면서 부자 친구가 되물었다.
  
  “그건 네 마음이고 자유롭게 하는 거지.”
  “내가 아는 사람이 미국에서 유명한 아이스크림하고 소시지를 수입해서 냉동창고에 삼억원어치 보관하고 있어. 그게 팔리지는 않고 창고료는 계속 나가고 있어. 그걸 내가 받아서 기부하고 싶어. 창고료 정도는 내가 부담하고 말이야.”
  
  나는 산더미 같은 아이스크림과 소시지를 받을 수 있는 단체를 알아보았다. 부자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빨리 물건들을 가져가. 벌써 창고료가 오백만 원이나 나왔어.”
  
  “어떤 단체도 그걸 받지 않겠다고 그래.”
  내가 대답했다. 그 친구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묵은 된장같이 오랜 세월 우정을 길러온 친구에게 기부하는 즐거움을 가르쳐 주기가 쉽지 않았다. 성경을 보면 자기 땅을 팔아서 기부하기로 한 아나니아와 삽피라 부부는 그 돈의 일부를 챙기기도 했다. 내남없이 인간은 그런 것이다. 단지 부자라고 인정받는 사회가 아니라 적은 액수의 돈이라도 잘 쓰는 사람이 존경받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 2021-04-14, 22:0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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