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졸리고 얻어맞는 동양인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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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들고 있는 신문에서 자극적인 뉴스 사진을 봤다. 미국에서 아시아계의 사람들이 핍박을 받는 사진이었다. 흑인이 말레이시아인의 목을 조르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또 다른 흑인이 베트남계의 여자를 발로 차고 있었다. 그들 나름의 쌓여왔던 분노가 그렇게 터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래 전에 들었던 한 얘기가 떠올랐다. 뉴욕의 스탠포드가 곰탕집에서 한국인 동창들 여러 명이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모임을 가졌다. 모임이 끝난 후 가게 앞에 동창들이 모여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였다. 그 중 한 친구가 지나가는 흑인을 보면서 이런 제안을 했다.
  
  “맨날 우리만 당하지 말고 우리도 한번 반대로 해 보지 않을래?”
  “뭘 해 보려구?”
  다른 친구가 물었다.
  
  “거리에서 흑인들이 시뻘건 눈알을 굴리면서 우리보고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잖아? 우리는 겁을 먹고 돈을 주고 말이야. 한번 반대로 해 보자구”
  “한번 그렇게 해 보지.”
  
  모두들 동의했다. 그 중 덩치가 큰 한 친구가 지나가는 흑인을 보면서 손을 내밀며 “원 달라 원 달라” 하고 소리쳤다. 그 흑인이 뒤에 있는 여러 명의 한국인을 보면서 눈이 둥그래 지면서 겁을 먹고 도망을 쳤다. 또다른 지나가는 흑인에게 그가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 역시 배경에 있는 여러 명의 한국인을 보고 뛰어서 달아났다. 그 말을 듣고 속이 시원한 면이 있었다. 아무리 세계가 좁아졌다고 하지만 국가적 인종적 편견이 남아 있는 것 같다. 특히 공항을 통해 미국에 입국할 때 이민국 직원들의 마치 시험관 같은 고자세 때문에 다시는 가기 싫다는 생각을 했었다.
  
  유럽인들이 처음 미국에 상륙했을 때 마주친 것은 몽골계통의 인디언이었다. 목사들 중에는 인디언을 악마라고 단정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인디언을 없앴다. 그 다음으로 인디언이 사람인지 아니면 사냥을 해도 되는 동물인지의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천만 명이 넘는 몽골계의 인디언들이 학살된 과거가 있었다. 미국의 백인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노획해온 흑인들을 노예로 삼아 목화 농장을 경영했다. 흑인 노예들의 피와 차별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어제는 중국인 역사가 진순신이 쓴 근대 중국사의 아편전쟁 무렵의 상황을 읽었다. 영국은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가져다 팔았다. 돈이 빠져나가고 전 국민에게 마약이 퍼져나가자 중국은 영국제 아편수입을 금지시켰다. 그에 대한 영국의 보복공격이 시작됐다. 양자강을 거슬러 오르는 영국군 부대는 중국에 공포를 심기로 결정했다. 영국군은 점령하는 성마다 살인과 약탈을 하고 불을 질렀다. 여자들은 보는 대로 강간하고 죽여버렸다. 강간을 피하려고 숨어있다가 굶어죽은 여자들도 많았다고 적고 있었다. 많은 중국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서 대륙횡단 철도를 부설하는데 노예같이 일을 하기도 했다. 흑인 노예들의 대신 역할을 한 것이다. 중국을 점령한 영국은 레스토랑 앞에 중국인과 개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고판들을 세워 놓기도 했었다.
  
  인간에게는 그런 악마성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인종적 편견은 동양인에 대해서만이 아닌 것 같았다. 일차대전 후 히틀러는 당을 만들면서 공약으로 ‘유태인 배척’을 내놓았다. 히틀러의 당은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어 집권당이 됐다.
  
  유태인들 수백만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간 적이 있었다. 독일군에게 유태인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벌레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유태인의 가죽으로 만든 스탠드의 갓과 책의 표지를 보았다. 유태인의 금발로 짠 카페트를 보았다. 유태인의 학살에 독일인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인 등 다른 유럽인들이 가담했다는 데 경악하기도 했었다. 악마는 사람들에게 인종적 편견을 스며들게 해 증오를 부추긴다. 성경을 보면 너희도 이집트에서 이방인이었으니 이방인에게 잘해 주라고 하고 있다. 여행을 하면서 천사같은 마음을 가진 착한 흑인들을 많이 보았다. 사랑이 가득한 백인들을 많이 보았다. 예의 바르고 반듯한 일본인들도 보았다. 선한 사람들이 넘쳐나서 일부 비틀어진 악인을 희석시키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 2021-04-22, 21: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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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21-04-23 오전 7:17
아래 두분의 글도 설득력이 큰거 같습니다
사랑을 떠들며 학살을 하는 종교가 아닌지
그러나 어찌 되었던 좋은 일도 많이 하는 것도 사실이니..
  북한산   2021-04-23 오전 12:45
유럽인이 미국대륙으로 메이플라워호 타고 간 이유중 하나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였는데 정작 원주민은 왜 학살했을까요? 이방인을 잘 해주라는,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읽은 유럽인들이, 상륙초기 자신들의 정착을 도와준 이웃인 원주민을 사랑하기는 커녕 학살한 것은 성경을 실천못한 유럽인들의 잘못이지, 성경의 가르침의 잘못은 아니라고 봐야할런지요? 애굽에서 받은 이방인의 설움을 생각해서 역지사지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지만, 그에 반하는 성경에 기록된 진멸전쟁은 어떻게 봐야할 런지요? 기독교의 성경에서 좋은 말만 고르면 사랑의 종교이지만 동시에 이방인에 대한 진멸, 여호와에게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진멸의 내용을 보면 증오, 차별의 종교입니다. 양면을 함께 봐야하지 않을 까요? 두가지 측면이 성경에 있는데 한쪽면만 보는 것은 올바른 자세일 까요? 술취한 삼촌처럼 여러가지 속성이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는 것이 성경의 여호와입니다. 여러 사람이 제 멋대로 여호와의 속성을 만들어 낸 것이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부의 강탈이라는 욕심이 주요인이고, 성경의 이름으로, 기독교 전도의 이름으로, 기독교인들이 북미와 남미 대륙에서 행한 역사적 살륙을 알면서도 성경의 일부 내용일 뿐인 사랑을 얘기하는 것은 객관적일까요? 살륙을 당한 원주민들에게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까요?
  白丁   2021-04-22 오후 10:17
인디언이 아니고 원주민(原住民)이지요, 저들이 내린 땅이 인디아인 줄 안 멍청한 백인놈들이 멋대로 붙인, 인도인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대륙 원주민. 정작 다들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외쳐야 할 당당한 자격이 있는 원주민들은 가만 있는데, 온지 400년밖에 안된 유럽인들과 강제로 끌려온 흑인들이 그보다 뒤에 온 아시아 이민자들보고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설치는 웃기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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