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이 이끈 '어둠 속의 커다란 눈'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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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로 한 종교단체의 사건을 맡아 처리하다가 이상한 체험을 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데 네비게이션에 갑자기 엉뚱한 지명이 나타났다. 전혀 모르는 동네였다. 찍지도 않았는데 기계는 우리에게 어딘가로 가자고 요구하고 있었다. 혹시 착오가 있나 싶어 네비게이션을 확인해 보고 아내에게 그 동네를 찍었던 적이 없는지 물었다. 아내도 의아해했다. 구체적인 번지도 없이 기계의 화면에는 막연히 처음 듣는 동네 이름만 찍혀 있었다.
  
  “신기하다. 한번 따라가 보자.”
  
  강렬한 충동이 마음 속에서 일어났다. 문득 그 종교단체의 교주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상한 존재에 끌려서 태백산의 동굴까지 간 적도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매일 새벽이면 어떤 존재가 나타나 자신에게 계시를 하는 바람에 마음에도 없이 교주가 되어 버렸다고 고백했다.
  
  수십만 명의 신도를 가진 종교 단체였다. 불교가 아니면서 그들이 믿는 존재를 미륵불이라고도 하고 상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교주는 상제님이 변호사인 나를 알고 있다고 한다고 말을 해 주기도 했다. 내비게이션에 나타난 현상이 혹시 그 상제라는 존재의 영적(靈的)인 작용이 아닐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기계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계속 갔다. 어느 새 차는 도심을 벗어나 숲이 우거진 어둠 속의 산 속 도로를 가고 있었다. 네비게이션의 화면이 갑자기 번쩍 하더니 이번에는 어떤 절의 이름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죽은 소설가 최인호씨의 글에서 들어본 이름의 절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네이버에서 그 절을 찾아보았다. 거대한 와불이 존치된 사찰이라는 설명이 나와 있었다.
  
  나와 아내는 계속 차를 몰아 기계가 가리키는 마지막까지 갔다. 처음 가보는 절의 주차장이었다. 주위가 먹물 같은 어둠으로 새까맸다.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그냥 돌아갈까 하는데 높은 돌계단 위에서 남녀가 내려오고 있었다. 사람을 보니까 마음이 놓이고 한번 대웅전 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와 아내가 절의 돌계단 맨 위에 도착했을 때였다. 어둠 속의 검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궁전의 대문짝만한 거대한 눈알이 보였다. 흰자위의 가운데 있는 검은 눈동자가 우리 부부를 보고 있었다. 얼핏 조금전에 네이버에서 검색했던 게 머리에 떠올랐다. 거대한 누워있는 부처의 조각상이 있다고 했는데 그 눈 부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절의 입구에 있는 신장들의 퉁방울 같은 눈이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와 며칠이 흘렀는데도 그날 본 눈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진짜 와불의 눈이었을까? 그런데 그 와불의 모습은 그날 보지를 못했다. 며칠 후 낮에 아내와 함께 그 절을 다시 찾아갔다. 절의 한쪽 켠에 있는 와불을 확인했다. 팔각의 기단 위에 화강암으로 조각을 한 작은 부처가 누워있었다. 눈은 졸린 듯한 거의 감은 상태였다.
  
  “우리가 그날 밤 본 대문짝 만한 큰 눈하고 다르잖아?”
  내가 아내에게 물었다.
  
  “정말 그러네. 우리가 그날 밤 뭔가에 홀린 것 같아.”
  아내의 대답이었다. 나 혼자 봤다면 착각했다고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내와 나의 기억이 정확히 일치됐다. 우리 부부가 보았던 그 큰 정체가 뭔가 궁금했다. 내가 사건을 처리한 그 종교단체가 믿는 신(神)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안개같이 피어올랐다.
  
  나는 그 종교단체의 신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다. 상제라고 불리는 그 신은 천팔백칠십일년 정읍 쪽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머슴살이도 하고 산판에 가서 나무를 찍는 벌목공 노릇을 하기도 한 그는 모악산에서 수도 생활을 하고 종교를 창시했다. 그는 일본 경찰이 장악한 고창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나와 서른아홉 살의 나이에 죽었다. 그가 죽은 다음 해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고 그를 신으로 섬기는 종교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미래를 보는 예지력도 있었고 스스로를 귀신을 움직이는 조선 최고의 무당이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날 밤 우리 부부가 보았던 커다란 눈이 아무래도 그의 영(靈)과 관련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 년이 흘렀다. 이상하게 보았던 그 큰 눈에 대한 호기심이 마음속에서 없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 아내에게 말했다.
  
  “삼세판이다. 다시 그 절에 가서 확인하자.”
  
  나는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시 그 절로 갔다. 우리가 차를 세웠던 주차장도 그대로였고 돌계단도 역시 그곳에 있었다. 절의 오른켠에 있는 와불 쪽으로 갔을 때였다. 거대한 돌 축대가 보이고 그 위에 찬란한 금빛을 한 거대한 불상이 누워있었다. 금박을 한 자갈로 만든 부처상이었다. 분명 처음 보는 조각상이었다. 눈을 보았다. 우리 부부가 어둠 속에서 보았던 그 눈이 아니었다. 반쯤 감겨진 눈이었다.
  
  “지난 번에 우리가 왔을 때는 화강암으로 만든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누워있는 작은 돌부처였잖아? 그러면 그건 뭐였지?”
  내가 놀라서 아내에게 물었다.
  
  “맞아 두 번을 왔을 때 왜 이 금빛 나는 거대한 부처를 보지 못했지? 이상하네. 그리고 우리가 처음에 봤던 건물 사이에 있던 그 큰 눈은 말이 되지를 않아. 그 자리는 그냥 높은 축대일 뿐이잖아? 도대체 이게 뭐지? 우리가 환각 속에 있었나?”
  
  정말 신비한 체험이었다. 나 혼자 겪었다면 누구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아내가 함께 보고 느꼈다. 그렇지만 아마도 세상에서 이런 체험을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나의 체험은 체험이었다. 두 번째 갔을 때 보았던 눈을 감고 누워있던 작은 부처가 그 종교단체에서 믿고 있는 ‘상제’라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다.
  
  성경을 보면 이 세상에는 무수한 정령(精靈)이나 귀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그 정령들을 따라 사는 사람도 있고 예수의 영을 따라 사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우연히 그런 정령이 나와 마주친 것인지도 모른다. 성경 속의 사도 바울은 길을 가다가 예수의 영과 만났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평생 그 사실을 말하고 다니면서 기독교를 탄생시켰다. 사도 바울은 예수는 죽지 않고 영으로 영원히 살아있다고 했다. 예수가 죽은 사람에 불과하다면 자기는 믿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 얼마 후였다. 십여 년 전에 부동산 소송을 할 때 성공보수로 약정한 땅을 주겠다고 사건을 맡겼던 사람들한테서 연락이 왔다. 칠 년이나 시간을 끌면서 성공보수를 주지 않으려고 하던 보이던 사람들이었다. 두 필지의 땅을 받고 그 주소를 보고 놀랐다. 하나는 그 종교단체의 신이 벌목공을 할 때 일을 했던 땅의 지명이고 다른 한 필지는 일제강점기 그 종교단체의 본부가 있던 마을의 이름과 같았다. ‘혹시 그 분이 내게 준 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믿거나 말거나 나의 소중한 체험을 꼭 글로 남겨 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21-04-29, 01:4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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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 날개   2021-04-29 오후 3:13
전반적인 글내용이 어째 특정종교를 홍보하고
믿으라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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