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賣國奴 高宗(매국노 고종),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도자>를 읽고 나서
자기 목숨과 권력과 부귀영화를 위해 나라를 버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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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賣國奴 高宗(매국노 고종),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도자>란 책 한 권이 밤잠을 설치게 했다. 고종의 매국(賣國) 행각에 대한 저자의 예리한 통찰과 신랄한 비판이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를 친 뒤 남이 친다고 하였다. 아 슬프도다(國必自伐而後人伐之,噫)”의 의미를 깨닫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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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종인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교를 다닌 소위 386세대 신문기자다.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 뉴질랜드에서 현대사진학을 전공했다. 조선일보에 ‘박종인의 땅 역사’를 연재중이고 TV조선에 같은 제목의 역사 프로그램을 제작 진행하기도 했다. 


박종인이 <賣國奴 高宗(매국노 고종),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도자>를 저술한  것은  “직시하는 사실의 역사만이 미래를 만들수 있다”는 신념으로  조선왕조의 끝자락(26대왕)이자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에 대해 “비운의 개혁군주라는 허상에 감춰진 역사의 진실 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고  집필 동기를 표사(表辭)에서 밝혔다.


<매국노 고종,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도자>는 356쪽의 역저(力著)로 5부(部) 16장(章)으로 구성기술돼 있다. 


1부 장성(長城)(1861~1873) 

: 1장 아버지, 장성을 쌓다. 

: 2장 아들, 장성을 부수다. 

2부 출항하는 유령선(1873~1882)

: 3장 병정놀이

: 4장 돈놀이

: 5장 건달놀이

3부 조선을 고물로 만들다(1882~1891) 

: 6장 이미 주상께 5만냥을 상납하였느니라.

: 7장 이 나라는 내 것이니라.

: 8장 개틀링으로 학살한 백성

4부 잃어버린 태평성대(1895~1901)

: 9장 갑오개혁의 좌절

: 10장 집을 세우다

: 11장 집을 버리다

5부 고물을 팔아 치우다(1901~1910)

: 12장 러일전쟁과 주합루

: 13장 황제가 기댄 그녀, 앨리스

: 14장 늙은 조병세의 죽음과 난파선

: 15장 매국노 고종

: 16장 도쿠주노미야 이태왕


5부 16장의 제목이 밝히듯이 조선왕조가 어떻게 무너지고 역사에서 사라졌으며 국권(國權)과 국민이 식민지 천민으로 왜 전락했는지에 대해 구구절절(句句節節) 공감이 가는 대목들이다.  


고종은 19세기 중반 지구가 360도로 활짝 열리고 온 세상이 정글로 변해가던 그 시간대에 조선(朝鮮)을 이끄는 지도자가 응당 그 정글을 헤쳐나가 비상구를 찾아야 했다. 비상구만 열면 새 세상을 만날 절호의 기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지 않았기에 정글 속 동굴에 숨어 살다가 그 어둠 속에 뚫린 무저갱(無底坑) 속으로 나라를 추락시켜 버렸다. 그게 고종이다. 고종은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것이 아니라  무능과 둔감한 국제정세, 드센 황후의 치맛자락에서 놀아난 못난 지도자가 되어 국권을 일본에 넘겨줬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박종인은  지금까지 밝혀졌거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방대한 사료(史料)를 천착하여 1041편이나 되는 주석(註釋)을 달아가며 고종을 매국노로 단정하는 근거로 제시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요, 허상에 감춰진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데 진력(盡力)한 흔적이 역력했다. 


박종인은 “누가 고종을 개혁군주라고 변호하는가?”를 묻고 있다. 개혁군주가 아니라 외국군대를 끌어들여 백성을 학살하고 온갖 세금으로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자가 고종이다. 국가자원을 팔아 자기 금고를 채우고 혁신을 거부하고 개혁세력을 몰살시킨 자, 전투 한 번 치르지 않고 나라를 일본에 넘긴 자도 바로 고종임을 규탄하고 있다. 


“아니 변호도 모자라 누가 고종을 자주독립을 염원한 개혁군주라고 찬양하는가. 고종 정권은 냉정하게 직시하고 방향을 제대로 잡느냐의 싸움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구한말에 근대화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것도 고종 때문이고 그 근대화에 뒤쳐진 것도 고종 때문이다. 조선을 찾은 외국사람들이 가난해서 불쌍하다고 혀를 찰 정도로 국가경제가 파탄난 것도 고종 때문이다. 고종은 만악(萬惡)의 근원이다”라고 규탄하고 있다. 


조선왕조 400년이 병약하게 흘러왔지만 그 병색을 걷고 그나마 회복될 수 있었던 기회를 고종은 다 발로 차버렸다. 오로지 자기 목숨과 권력과 부귀영화를 위해 나라를 버렸다. 그러니 고종은 매국노(賣國奴)다. 고종이 매국노인 이유를 박종인은 구체적으로, 그리고 소상하게 천착한 사료를 통해 밝히고 있다. “조작된 신화가 신앙으로 변하고 종교로 변해 사실로 굳어지기 전에 조작은 폭로돼야 한다(19쪽)"고도 성토하고 있다. 


방대한 사료와 논리의 근거를 모두 소개하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5부 15장 매국노 고종 편에 기술된 작은제목 몇 편을 소개한다. ‘1905년 을사조약과 뇌물 5만원’, ‘황제가 받은 접대비 2만원’, ‘뇌물 30만엔과 경부선 지분’, ‘떡밥 150만엔’, ‘을사오적의 상소와 고종의 묵묵부답’ 등에서 고종의 무능함과 어리석음을 비롯해서 황족의 입신영달을 위해 몸부림친 고종의 매국적 행각이 소상하게 기록돼 있다.


을사늑약의 경우 조약은 불가하다고 결연히 다짐하며 상소(上疏)하는 대신들에게 고종이 짐(朕)의 뜻대로 잘 조처하라고 조약체결을 허락했다는 것과 거기에는 황실의 안녕과 존엄 보장이라는 고종의 요구가 들어있었다는 자료 공개는 분노를 불러오고도 있다. 고종의 이 같은 나약하고 어리석은 사익추구(私益追求)에 대해 2007년 소장 역사학자 3명은 이렇게 평가했다.  


“갑신정변 주역인 김옥균과 박영호를 죽이기 위해 자객(刺客)을 보냈던 고종은 이완용 등 을사5적을 죽이기 위해 자객을 보낸 적이 없었다. 을사조약과 합방으로 을사오적이 호의호식하는 것보다 더 황실은 편한 일상을 보냈다. 식민지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은 분명하다. 고종이 뛰어난 지략가(智略家)로 외세를  잘  이용하고 나라의 근대화를 위해 절치부심하고 굶주리는 백성을 위해 눈물로 베겟잇을 적셨다고 해도 그 책임은 면할 수 없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그 시대를 이끌어 간 한 군주의 현명함과 어리석음에 따라 크고 다르게 좌우됨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지고 기자혼과 기자정신이 살아 숨쉬는 참다운 기자의 피끓는 절규(絶叫)를 읽으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생각해 봤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  마치 구한말의 형국과 흡사해보인다는 노재봉 전 국무총리의 경고가 강하게 뇌리(腦裡)를 스쳐갔다. 고종 하나로도 나라가 망했으니, 이 땅에 또 다른 경험하지 못한 지도자가 나타난다면 또 한 번의 파멸이 오고 말 것이다 <매국노 고종,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지도자>. 다시 반추해 본다. 

 

[ 2021-05-01, 22:3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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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丁   2021-05-02 오후 9:01
대한민국도 지금 건국 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지도자를 체험하고 있는 중입니다요. 고종이 환생한건가.
  onoda74   2021-05-02 오후 12:59
지금 우리 눈으로 고종이나 당시 지도자를 보면 한심하고 이해가 안 된다.
근데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그들에 대해 큰 착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착각이 뭐냐, 우리는 당시 조선이 독립국이고 조선의 지도자들이 독립국의 지도자로 행동하기를 기대한다는 점이다.
그게 착각이다. 당시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독립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다. 중국의 속방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지도층일수록 그런 의식은 더 강했다. 중국에 기대고 중국을 모시는 일이 그들의 임무고 특권이었다.
지금처럼 중국따로, 한국따로, 일본따로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자신들의 종주국인 청을 전쟁에서 이겼다. 그럼 어떡해?
'우리가 모셔야할 대상을 바꾸면 되지'. 그게 그들의 기본 생각이었다.
일본이라는 새 주인하고 잘 얘기해서 자기 몸 보존하고 왕실 유지하고 종묘 지키고.. 그게 그들의 목적이었다. 그렇게 보면 그게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당시 사람들의 행태가 다 이해가 된다. 그게 조선의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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