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새마을 편물점'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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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다섯 살 무렵이다. 매일 저녁이면 큰 길가의 버스정류장 앞에 가서 엄마를 기다렸다. 서른세 살의 엄마는 시내의 편물학원에 다니면서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손뜨개질을 잘했다. 겨울이 되면 어린 나의 옷은 모두 엄마의 뜨개질 작품이었다. 엄마는 휴대용 피아노 건반 같은 간이편물기 한 대를 사서 주문을 받아 스웨터를 짜주는 일을 시작했다. 안방에서 일을 하다가 주문이 늘어나자 동네 길가에 작은 가게를 얻어 편물점 간판을 달았다. 양철에 페인트로 ‘새마을 편물점’이라고 썼다. 나는 더러 엄마의 옆에서 일을 보조했다. 오래된 스웨터를 가져와서 새 걸로 만들어달라는 손님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 실들을 풀어 초를 먹이는 일을 내가 했다. 초를 먹여야만 낡은 실들이 기계의 바늘 사이를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육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난 어머니가 가게에서 속칭 ‘시야게’를 하던, 작업을 보조하는 사람에게 하던 소리들을 기억하고 있다.
  
  “재료를 절대 속이지 말고 세타 하나하나를 정성을 들여 촘촘히 짜줘야 해. 손님에게 거짓말을 하면 마음이 편치 않은 법이야.”
  어머니는 그렇게 하면서 입버릇 같이 털실 제품들의 특징을 말하고 있었다.
  
  “장미표 털실은 순모(純毛)가 백 프로인 최상품이야. 낙타표는 화학사가 조금 섞였는데 시간이 지나면 옷에 보풀이 일어나고 나중에 옷이 늘어져. 그리고 505라는 상품은 화학사가 많이 섞였어. 값이 싼 중품이나 화학사가 섞인 하품을 쓰더라도 손님은 그걸 구별할 능력이 없어. 그렇지만 약간 돈을 더 벌려고 나쁜 재료를 쓰면 안 되지. 그리고 헐겁고 느슨하게 짜면 그만큼 자투리 실이 남아. 그렇게 실을 남기면 안돼. 그건 털실 도둑이 되는 거니까.”
  
  그게 어머니의 장사 철학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헌 스웨터를 가지고 온 어떤 사람은 중간에서 실을 떼먹었다고 시비를 걸기도 했다. 최상품 재료를 썼는데도 모르면서 하품이라고 트집을 잡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때면 함경도 출신의 다혈질 어머니는 참지 않고 멱살잡이를 하고 소리치며 싸웠다. 솜씨가 나쁘다고 하는 사람에게 어머니는 공들여 짠 스웨터를 내주지 않았다. 동네에 당시 허장강이라는 유명한 영화배우가 살았다. 그 집에서는 주문한 스웨터를 찾아가지 않았다. 내가 대신 그 스웨터를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입었었다.
  
  속고 속이는 세상은 어머니의 성실과 정직성 그리고 개결한 자존심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속에서 어머니의 삶은 각박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어머니가 번 돈으로 대학까지 공부를 하고 변호사가 됐다.
  
  어머니의 편물점처럼 나도 작은 개인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살아왔다. 나에게 들어온 사건마다 어머니처럼 정직하고 성실하고 싶었다. 법률규정을 뒤지고 판례를 꼼꼼하게 찾고 현장확인을 하고 다녔다. 상당수의 의뢰인은 변호사가 당연히 거짓말을 대신 해줄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변호사를 해도 절대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범죄를 은폐하거나 증거를 인멸하는 게 변호사가 아니었다. 억울한 모략에 빠진 사람의 진실을 밝혀주거나 변호를 할 만한 정상자료를 찾아 글을 만들어 법관에게 제출하는 게 변호사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세상과 험하게 싸웠듯이 나 역시 그런 험난한 세월을 건너왔다. 상대하는 대상이 이미 저급의 범죄인들이었다. 밀수범인 사장이 자기의 모든 죄를 자재부장에게 씌워달라고 부탁을 한 적도 있었다. 그 사장과 대판 싸우고 사건을 그만두었다. 뇌물을 받은 고위직 공무원이 상대방과 은밀히 사건의 내용을 조작하는 걸 보고 분노하기도 했다. 고문을 당해 뼈가 부러진 사람을 법관에게 보였는데도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는 모습을 보고 냉랭하고 무심한 세상을 한탄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악다구니를 하고 싸웠듯이 소송에 걸리기도 하고 그 반대로 소송을 걸기도 했다. 사람이란 성격이 운명을 만드는 것 같다. 좋지 않은 일을 봐도 적당히 외면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데 엉뚱한 분노로 문제를 일으키면서 살았다. 적당히 타협하고 침묵을 하면 그럭저럭 편한 세상인데 피곤하게 살았다. 타고난 고슴도치 같은 성격 때문인 것 같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피가 지금 내 속에서도 계속 흐르는 것 같다.
  
[ 2021-05-03, 21:1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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