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전야(入營前夜)에 쓴 '맺지 못할 운명'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51)님:창살 없는 감옥(차경철 작사, 한복남 작곡, 박재란 노래, 1963년)

김장실(前 국회의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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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나 만날 수도 없고, 결국 이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만나면 정말 괴롭다. 이 경우 당사자들은 아마도 ‘창살 없는 감옥’에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를 두고 불교에서는 애별리고(愛別離苦)라 하여 사람이 살아가면서 당면하는 여덟 가지 고통 중의 하나로 친다.
  
  <님:창살 없는 감옥>이란 노래는 작사가 차익준(예명 차경철)의 개인적 경험의 소산이다. 경남 울주군(지금의 울산시) 온양면 운화리 출신인 그는 한 동네 사는 김윤희와 소꿉친구로 시오리 솔밭 길을 같이 걸어 다니면서 정(情)을 쌓으며 소학교를 다녔다. 소학교 졸업 후 차익준은 직물기술자인 아버지를 따라 부산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을 하고, 김윤희는 울산에 있는 중학교로 가면서 둘은 갈라졌다.
  
  매일같이 만나던 사이였던 두 사람이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더욱 그리워하였다. 그래서 방학 때 만나게 되면 울산 태화강변과 칠암포 바닷가를 거닐며 서로 사랑의 감정을 키워 나갔다. 문학을 좋아하던 차익준은 김윤희에게 러시아 문호 푸쉬킨의 시(詩)를 읊어주면서 청춘의 낭만을 구가(歐歌)하였다.
  
  6년제 중학을 졸업한 차익준은 문학에 뜻을 두고 서울대 국문과에 원서를 냈으나 3대 독자인 할아버지가 손자를 고향에 데리고 있고 싶어 하여 그의 서울 진학을 막았다. 또한 가문의 대를 빨리 잇고 싶어 한 그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친구 손녀를 익준의 신부로 점지해 두었다. 이 일로 김윤희와의 사랑전선에 이상이 생기자 두 사람은 같이 죽고자 수면제를 술에 타서 먹었으나 미수에 그쳤다. 이제 할아버지가 억지로 추진하는 결혼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군(軍)에 자원입대하기로 하였다.
  
  군에 가기 하루 전날 그는 밤을 새워 술을 마시며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그의 친구이자 애인인 윤희와의 애절하고 쓰라린 사랑을 노래시로 썼다. 그 이튿날 그는 부산시 서구 아미동에 있는 도미도레코드사 한복남 사장에게 그 가사를 우송하였다. 이 노래시를 한복남이 작곡을 하여 박재란이 불렀는데 크게 히트하였다.
  
  한편 전방부대 위문공연을 하던 인기가수 박재란은 자신의 히트곡인 <님>을 부르기 전에 이 노래의 작사가인 차경철은 입대한 지 2년이 되어 아마 상등병이 되었을 것이라며, 그를 꼭 찾아달라고 말한 후에 노래를 불렀다. 연병장에 모인 군인들은 이 노래의 작사가가 같은 군인이라는 사실에 더욱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때 차익준은 보초를 서면서 자신이 작사한 박재란의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이 노래의 인기에 힘입어 1963년 강범구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이향, 황해, 이경희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창살 없는 감옥>이 제작되었다. 본의 아니게 살인을 한 주인공이 군 유격대에 도피하는 심정으로 입대를 하여 한 여인을 사랑하나 전직 형사의 끈질긴 추적으로 늘 불안하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창살이 없어도 이런 불안과 초조가 바로 감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특수임무를 수행하다가 장렬하게 죽어 속죄를 한다는 것을 이 영화의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박재란이 부른 <님>이 주제곡으로 사용되었다.
  
  이 노래를 작사한 차경철은 군에서 제대한 뒤 부산에서 아버지가 하던 직물사업을 이어받아 부산에서 사업을 하였다. 2001년에는 그의 고향인 울주군 대운산 입구에 <님>의 노래비가 세워졌다.
  
  뛰어난 가창력과 외모 등으로 1960년대 전반을 대표하는 가수인 박재란(본명 이영숙)은 1938년 충남 천안 출신이다. 그녀는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초등학교 졸업 후 쇼단에 들어갔다가 부유한 집안의 양녀(養女)가 되었다. 1957년 대구 애호레코드사에서 작곡가 김학송을 만나 <코스모스 사랑>이라는 노래로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그녀는 <푸른 날개>, <럭키모닝>, <강화도령>, <산 너머 남촌에는>,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 <님>, <진주조개> 등 많은 곡을 히트시켰다.
  
  작곡가 한복남은 1919년 평남 안주 출신이다. 본명이 한영순인 그는 1943년 <빈대떡 신사>로 가요계에 데뷔한 후, 1950년대 도미도레코드사를 창립하였다. 그는 <엽전 열닷냥>, <처녀 뱃사공>, <한 많은 대동강>, <백마강> 등 많은 인기곡을 작곡하였다.
  
  <님:창살 없는 감옥>
  
  목숨보다 더 귀한 사랑이건만
  창살 없는 감옥인가 만날 길 없네
  왜 이리 그리운지 보고 싶은지
  못 맺을 운명 속에 몸부림치는
  병들은 내 가슴에 비가 내린다
  
  서로 만나 헤어진 이별이건만
  맺지 못할 운명인 걸 어이 하려나
  쓰라린 내 가슴은 눈물에 젖어
  애달피 울어봐도 맺지 못할 걸
  차라리 잊어야지 잊어야 하나
  
[ 2021-05-10, 03:5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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