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대법관에게 받은 카톡-‘에그머니나’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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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왜 그렇게 뻔뻔한 짓을 해 왔는지 솔직히 말해서 몰랐다. 그러다가 우연한 남이 보낸 댓글 하나를 통해 비로소 깨달았다. 중고등학교나 대학 시절은 용돈이 없어서 부잣집 아들인 친구들한테 얻어먹은 적이 많았다. 주눅이 들어 감사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변호사를 하고 형편이 나아지면서도 계속 얻어먹은 적이 많았다. 내가 보답을 해야 하는데도 그런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친하던 부잣집 아들을 몇십 년 만에 만난 적이 있었다. 그의 집은 극장도 둘이나 있었고 재래시장도 가지고 있었다. 어렸던 나의 눈에 그의 기와집은 대궐 같은 느낌이었다. 그 집 정원에서 전쟁놀이를 하면서 뛰놀기도 했다. 중학교 일학년 때도 그가 새로 이사한 양옥집을 찾아가 놀면서 종로의 유명한 제과점이었던 고려당에서 빵을 얻어먹기도 했다.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났다. 그의 집안이 쇠락해져 친구인 그가 단칸방에서 가난하게 산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이참저참에 그에게 연락을 해서 소박한 식당에서 만난 것이다. 옛날에 함께 놀던 얘기를 하면서 뚝배기에 담긴 곰탕을 한 그릇씩 먹고 나서 헤어질 때였다. 그가 얼른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식당 주인에게 건넸다. 내가 내야 하는데 그가 어렸을 때의 버릇같이 밥값을 지불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다가 아차했다. 그게 아닌 것이다. 내가 힘들어진 그 친구를 따뜻하게 해 주어야 하고 밥값도 내야 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가난 속에서 익어진 받아먹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었다.
  
  변호사로 여유가 생겼는데도 무의식 중에 밥을 얻어먹은 경우가 많았다. 같이 변호사를 한 친구는 자기가 밥을 여러 번 샀는데도 내가 사지 않더라고 뒤늦게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내가 그 뻔뻔스러움을 반성하면서도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솔직히 돈이 아까 와서 그런 건 아니었다. 변호사가 되고부터는 오히려 한 끼라도 남에게 밥을 사는 건 즐겁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얻어먹었다. 나는 발가벗듯 나의 뻔뻔한 모습을 글로 써서 블로그에 올려봤다. 왜 그러냐고 하면서 안타까워하는 반응의 댓글이 있었다. 나도 그 글에 속으로 동감했다. 그러다 이런 댓글이 스마트 폰의 화면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엄 변호사님은 뻔뻔해서가 아니라, 다만 행동이 조금 느리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어 모든 오해가 풀렸습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예전의 같은 직장에 있는 어떤 사람도 댓글에서 내가 직장에 있을 때 뒤뚱거리고 느려 터진 것 같았다고 그가 기억했던 나의 모습을 알려준 적이 있었다. 악의가 아니고 그의 눈에 비쳤던 있는 그대로의 나였던 것 같았다. 댓글이라는 거울을 통해 사각지대에 있는 나의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본 것이다.
  
  갑자기 나에게 미국에 사는 한 여성에게서 케잌 선물이 왔다. 카톡의 선물하기 기능을 사용하면 미국에서도 나에게 딸기 크림 케잌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부잣집의 예쁜 딸인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나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나는 쑥스러워서 제대로 말도 붙여보지 못했었다. 변호사가 되어 가벼운 도움을 줬던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부지런 했다.
  
  대뜸 반성을 하고 나도 퇴임한 한 여성 대법관에게 카톡의 ‘선물하기’를 통해 고급제과점의 딸기 생크림 케익을 보냈다. 카톡의 그 기능을 배웠다. 소설가 김훈씨는 나보고 자기 비슷하게 첨단기술에는 장애 수준이라고 했다. 그 여성 대법관에게 감사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퇴임을 하면 밥을 한번 사겠다고 했다가 느려터진 나의 성격 때문에 기회를 잡지 못하고 어영부영했었다. 그러다 마음먹고 크림 케익을 보낸 것이다. 잠시 후 카톡을 통해 그 여성 대법관한테서 이런 대답이 왔다.
  ‘에그머니나’
  
  좋다는 것인지 나쁘다는 것인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 2021-05-14, 23: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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