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나 권력자 앞에서 비굴해지지 않기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사기당한 기분이에요>
  
  가족과 반 지하방에 월세를 살면서 녹즙 배달도 하고 파출부로도 나가는 사십대 초의 여성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남편은 청담동 부자인 고모 집의 기사로 일 년 동안 일해주고 있었다. 갑자기 월세방을 옮기게 되면서 올라간 보증금을 내려면 돈이 더 필요했다.
  
  “기사로 그동안 고모를 모셨으니 돈을 좀 꿔달라고 하면 안될까?”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부자인 고모 댁에 무슨 일이 있을 때면 가서 음식도 하고 청소도 하고 잔심부름들을 했었다.
  
  “부자 고모님 댁은 우리 부부가 가고 싶다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집이 아니야.”
  남편의 대답이었다. 그 사실을 안 고모가 어느 날 그들 부부를 불렀다. 그녀는 희망을 가지고 남편이 기사로 일하는 청담동 고모댁으로 갔다. 궁전 같은 집이었다. 부부는 고모가 부르는 방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고모는 안방 장롱에서 뭔가를 뒤지다가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왔다. 고모가 부부에게 말했다.
  
  “이 집 관리비만 해도 한 달에 오백만 원이 나오고 이것저것 돈 쓸 일이 많아서 아무래도 방 보증금은 내가 해줄 수가 없다.”
  
  잠시 후 그 집을 나오면서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자존심 강한 그녀는 막일을 하더라도 부자인 친척의 신세를 지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었다. 그녀는 스스로 기대를 가졌던 자신에 대해 반성을 했다고 내게 말했었다. 사람들은 재벌이나 부자 근처에 가면 그렇게 기대를 가지면서 주눅이 들고 비굴하게 되는 것 같다.
  
  노태우 정권 시절이 끝나갈 무렵 정치적 거물의 보좌관이 있었다. 그 무렵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사회 명사인 김동길 박사를 찾아가 창당자금을 내놓을 테니 그걸로 당을 만들고 대통령이 되어보라고 했다. 정 회장이 만든 국민당은 정치거물들을 영입하는 작업을 했다. 내가 알고 있던 보좌관이 그가 모시던 정치적 거물을 국민당에 입당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로서 그 일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전쟁 같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정보 수사기관의 현실적인 위협도 있었다. 심복으로 일하던 그의 공이 컸던 것 같다. 정주영 회장이 그의 방으로 공을 세운 보좌관을 불렀다. 주위에서는 그가 상금을 두둑히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부러워했다. 나중에 그 보좌관이 내게 와서 이런 말을 했었다.
  
  “정주영 회장님을 만나 인사드렸더니 그동안 수고했다면서 가보라고 하더라구요. 그 방을 나오니까 사람들이 봉투 받았지? 얼마나 들어 있어?라고 묻는 데 한 마디로 돈 때문에 그 일을 한 건 아니지만 뭔가 사기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구요.”
  
  재벌이나 부자를 만나면 사람들은 기대를 한다. 그리고 그 기대가 어그러지면 피해의식을 느끼는 것 같았다. 김동길 교수는 정 회장이 자기가 먼저 대통령이 되어야 하겠다고 양보를 하라고 하고 약속했던 정치자금도 주지 않았다고 방송에서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역시 사기를 당하는 기분을 느낀 것 같았다.
  
  반대편인 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접근하는 사람마다, 자신을 만나려고 하는 사람마다 돈을 뜯으려고 한다는 공포심이 들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의심하고 경계를 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들의 기대를 이용하기도 했다. 성경을 보면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부자나 권력자 앞에서 비굴해지지 않기 위해서 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 삼십대 중반 권력실세의 보좌관을 잠시 한 적이 있다. 그 일을 시작하면서 아무것도 바라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바라면 섭섭해지고 인연도 끊기게 마련이다. 적절한 시점에 사표를 내고 나의 개인법률사무소로 돌아왔다. 덕분에 삼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가 변호사가 아닌 다른 자리를 추천해도 사양했다. 나는 그런 그릇이 되지 못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 재벌가의 회장이 사건을 맡겼다. 그는 보수는 자기가 알아서 두둑이 주겠다고 했다. 은근한 기대를 가지게 하는 말이었다. 나는 욕망의 늪 속에 빨려드는 걸 차단해야 했다.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나서 그 회장에게 말했다.
  
  “저는 지식 노동자죠. 일을 하고 시간당 품삯을 받으면 되요. 성경을 보면 품꾼의 품삯을 날이 저물기 전에 주라고 했어요. 그렇게나 해요.”
  
  나는 비교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 싶다.
  
[ 2021-05-24, 19: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