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曺國)과 문병로, 두 서울대 교수의 너무도 다른 모습
자신과 가족의 사익(私益)을 위해 발버둥 對 망국(亡國)의 역사에서 교훈 찾아.

문무대왕(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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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曺國)은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에 적을 둔 교수이고 문병로 교수는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이다. 같은 서울대학교 교수인데도 너무나 대조적이고 시대와 사회를 바라보는 현실과 역사인식이 판이하다.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를 느끼게 한다.
  
  "가족들의 범죄 혐의가 20개, 본인 혐의가 11개, 그래도 자기들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잖아요, 그게 다 검찰이 잘못한 거래요, 자기들은 검찰개혁을 하려다 희생당한 순교자래요. 구치소에 있을 때 정경심 보세요, 자기가 구치소에 있는 이유가 문서위조, 사모편드, 증거인멸 때문이 아니래요, 그게 다 검찰개혁 때문이래요. 아니 대한민국 법률에 '검찰개혁죄'도 있나요? 문재인 정권 사람들이 잘못을 하고도 이렇게 뻔뻔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분들 이미 오래 전에 기득권층이 됐습니다. 정권을 쥔 후에는 과거의 보수층을 제치고 대한민국 제1의 특권층이 됐지요. 이제 그 특권을 2세에 세습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지역구도 세습을 하려다 들키고 조국은 학벌과 재산 세습을 하려 하고…"(진중권, '저들은 왜 저렇게 뻔뻔한가' 인용).
  
  조국은 요즘 회고록 '조국의 시간'을 출간해서 돈방석에 앉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10억 원대의 책이 팔렸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들의 주장일 뿐, 확인 길은 없지만. 가족형범죄 혐의로 재판계류중에 있는 조국이 자신의 과거 혐의에 대해 일방적인 변명을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가족의 피에 펜 끝을 찍어 썼다는 것이 '조국의 시간'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조국의 혈서'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니 조국의 인기가 대통령의 인기를 앞지르고도 남음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조족지혈(鳥足之血)'이 아닌 '조족지혈(曺族之血)'이란 신조어가 나돌고도 있다. '무명지 깨물어서 흘린 붉은 피'가 아닌 얼버무린 혈서(血書)를 진짜 혈서라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각설(却說)하고 문병로 교수 얘기로 넘어가자. 6월4일 '매일경제' 신문 오피니언란에 문 교수가 쓴 '현장의 기록:구한말'이란 칼럼을 게재됐다. 문 교수는 구한말(舊韓末) 외국인의 눈에 비친 망해버린 대한제국의 모습을 소개하며 "130년 전 조선에 태어나지 않았음이 다행"이라 밝히고 있다.
  
  요약하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역사는 생생하지 않다. 교과서나 구전으로 듣는 이야기는 왜곡의 소지가 다분하다. 현장에 있던 분들이 쓴 기록은 덜 왜곡되고 생동감이 있음"을 지적했다. 우리가 생생하게 오늘의 역사를 직접 지켜보며 외국인들이 지적한 망해버린 구한말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역사적 교훈으로 삼자라는 취지의 글을 소개했다.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시기가 1910년부터 36년간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그 시기는 적어도 50년 이상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쓴 당시 기록들을 통해 현장감을 느껴보자고 했다.
  
  선교사 '제임스 게일'은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에서 "…어떤 사건이 터져 양반에게 일을 맡기면 되는 일이 없고 '보이'라고 불리던 상놈이 만능해결사"라고 적고 있다. 유학의 철학적 거품이 절정에 이르러 폐기 처분되기 직전의 사회를 보여 준다.
  
  '우치다 준'의 '제국의 브로커들'은 일본인 시각으로 강점기의 조선을 보고 있다. '착취 식민지'와 '정착 식민지'가 혼재하는 형태였다. 조선은 착취 대상이기도 했지만 일본인들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무대이기도 했다. 소상공인, 노동자, 목수, 장인, 농민, 가정부, 창녀, 낭인 등 온갖 부류의 일본인들이 들어왔다.
  
  오스트리아 작가이자 여행가인 '헤세바르테크'는 '조선 1894년 여름'에서 무장한 일본군기병대가 도로를 순찰하는데도 조선 농부들은 논과 오이밭에서 평화롭게 일하고 있다. 나라를 점령하고 왕이 있는 수도를 향해 행군하고 있는데도 농민들은 식민착취의 숙적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음에 대해 작가는 "농민들은 일본 천황의 군대의 횡포가 조선정부의 악랄한 세금 징수보다 더 심각한 위해(危害:세정문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것"이라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자연의 힘이 이 비참함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탐욕스럽고 양심없는 정부가…"라고 적고 있다.
  
  1890년 조대비(趙大妃)가 사망한 뒤 고종과 왕세자에 대한 추도사와 왕의 칭호 선택 등에 대한 공로를 치하하여 대규모 연회를 베풀고 기쁨의 표시로 서울의 상인들에게 세금을 면제하고 칭호를 고르는 데 기여한 관리들을 승진시키고 봉록을 올려준 한심한 작태를 기록한 관보의 내용까지 기행문에 소개했다.
  
  문 교수는 "130년 전 조선에 태어나지 않았음을 다행"이다라고 썼다. 서울대학 교수도 교수 나름이다. 어떤 교수는 자신과 가족의 사익(私益)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고 어떤 교수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조선왕조의 망해버린 서글픈 역사의 부끄러웠던 시대상을 한탄하고 있다. 권력지향형 관변 교수와 연구지향형 학문 교수의 차이가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 2021-06-06, 21:2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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